영국 중부의 아름다운 고도(古都) York를 여행할 때 숙소를 1박당 40파운드 정도하는 airbnb로 잡았다가 YHA York 유스호스텔로 변경했다. 유스호스텔이 교통도 더 편한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숙박료가 훨씬 저렴해서였다. 평일 기준 숙박료가 10파운드 정도라 당시 환율로 약 17,000원. 이건 뭐 여기가 영국의 유명 관광도시가 맞는지 헷갈리는 수준이다.
큰 저택을 개조해서 지은 숙소는 화장실이 딸린 32개의 숙소와 3개의 콘퍼런스/미팅룸, 공용주방 등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공용 공간이 넓어 이용하기에 편했다. 숙소 곳곳에 흑백 사진과 글이 담긴 안내판 같은 것이 걸려있었는데 영어 난독증으로 인해 처음엔 별 관심 없이 지나다가 우연히 읽게 됐다.
“1842년에 지어진 이 저택은 퀘이커교도이자 초콜릿 제조업자 Rowntree 가문의 가족의 집이었습니다. Rowntree는 Kit Kat(유명초콜렛 브랜드 킷캣), Smarties, Aero, Black Magic과 같은 초콜릿 브랜드들을 가진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이었습니다. 1945년 Joseph Rowntree Village Trust가 이 저택을 YHA(Youth Hostels Association)에 맡겼으며, Rowntree 가문은 이후로도 YHA를 지속해서 지원했습니다.”
기업가였을 뿐 아니라 유명한 사회개혁가였던 Joseph Rowntree는 그의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컸고, ‘빈곤’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조차 없던 시기에 ‘빈곤’이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원인에 근거하고 있음을 지적했다고 한다. 그는 바로 ‘어떻게 하면 공정하고 인정어린 사회를 이룰 수 있을까?’ 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했던 사회개혁가이자 기업사회공헌 책임자 1세대였다.
숙소의 일 층에 세미나룸같은 공간이 하나 있었는데 Seebohm Room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Seebohm은 누구일까?
“Joseph Rowntree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Seebohm Rowntree는 가업(초콜릿 제조업)에 종사하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빈곤선이라는 최저생활비를 정하고, 그 기준 이하의 가정을 빈곤가족으로 보고 빈곤의 원인, 노동자가 그 생애를 통해 겪는 빈곤의 순환을 지적하였다. 저서로 《빈곤과 진보》등 이 있다.”
알고 보니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회활동가뿐 아니라 연구자로서 최저생계비라는 개념을 최초로 학계에 소개한 연구자였다. 부유한 가문의 자손으로 입에 물고 나온 금수저를 누리며 충분히 보장된 삶을 잘 살았을 텐데, 사회의 구석진 곳과 소외된 자들에 대한 대를 이은 관심과 공헌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Rowntree 가문의 활약은 지금도 Rowntree Society, Joseph Rowntree Foundation, Joseph Rowntree Charitable Trust, Joseph Rowntree housing Trust, Joseph Rowntree Reform Trust 등 다양한 단체의 활동을 통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덕분에 3일간의 요크 여행은 아름다운 고성을 거닐며 느꼈던 경외감뿐 아니라 Rowntree 가문의 ‘노블리스오블리주’로 인해 받은 감명까지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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