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

(왼쪽부터) 거리청소년 맞춤형 건강검진 문진표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포텐의 전종수 소장과 가정의학전문의 이승필 원장

(왼쪽부터) 거리청소년 맞춤형 건강검진 문진표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포텐의 전종수 소장과 가정의학전문의 이승필 원장


거리청소년 밀집지역을 찾아 자리를 튼 파란 버스는 밤늦도록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을 기다린다. 구급상자와 간식거리를 비치한 버스엔 청소년 상담가 외에 전문 의료진이 함께 한다. 가정의학과, 산부인과, 정신과, 비뇨기과, 피부과 등 진료영역도 다양하다. 의정부시이동청소년쉼터 포텐은 전국에 단 3곳(의정부, 부산, 청주) 뿐인 의료특화형 청소년 쉼터 중 하나다. 오랜 방임, 가출, 위기상황 등으로 질병에 노출돼도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거리청소년들에게 의료서비스 및 보건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아름다운재단의 사각지대 청소년단체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2015년부터 연속 지원을 받으며 의료서비스 기능을 더욱 강화중인 포텐은 거리청소년 맞춤형 건강검진 문진표를 개발하고 있다. 포텐을 이끄는 전종수 소장과 문진표 개발에 참여한 가정의학전문의 이승필 원장(무지개연합의원)을 만나 거리청소년을 위한 건강검진 문진표의 필요성과 그 개발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거리청소년 맞춤형 건강검진 문진표 개발 프로젝트

건강검진 문진표는 검진 대상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대상자의 생활 패턴을 감안한 문항이어야 한다

정확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질문부터 정교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어로서 질문의 중요성을 종종 체감한다. 같은 상황을 묻는다 해도 아이에게 던지는 질문과 어른에게 던지는 질문은 사용할 수 있는 단어와 문법이 다르다. 또한 인터뷰 대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묻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답변의 차이가 크기에 질문을 준비하기 전, 대상에 대한 기본적인 학습도 필요하다.

거리청소년을 위한 건강검진 문진표가 필요한 이유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를 돌아보게 한다. 건강검진 문진표는 검진 대상자의 평소 생활습관이나 병력 등을 확인하기 위한 문항들로 채워지며, 이에 대한 대상자의 답변은 효율적인 진찰을 위한 기초자료가 된다. 정확한 자료(답변)를 얻자면, 그것을 이끌어낼 질문부터 정교해야 할 것이다. 검진 대상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대상자의 생활 패턴을 감안한 문항이어야 한다.

같은 10대라 해도 보호자의 보살핌 속에 있는 청소년과 오랜 방임 속에 가출과, 노숙, 배회를 일삼는 거리청소년은 생활패턴이 다르다는 점, 이것이 문진표의 문항이 달라야 하는 이유다

오랜 방임 속에 가출과, 노숙, 배회를 일삼는 거리청소년은 생활패턴이 다르다는 점, 문진표의 문항이 달라야 하는 이유다


거리청소년 맞춤형 건강검진 문진표 개발에 참여한 무지개연합의원 이승필 원장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가령 식생활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 일반 청소년이라면 ‘아침을 규칙적으로 먹니?’ ‘음식을 골고루 먹니?’ 라고 물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거리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면 ‘식사를 할 수 있니?’ ‘밥을 먹고 있니?’ 라고 물어야 해요. 가지고 있는 문제가 워낙 달라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질병의 양상이 다르고, 문진표의 문항도 달라질 수밖에 없죠.”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인 아이에게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느냐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낮과 밤이 바뀐 아이에게 아침식사를 챙기는지 묻는 것도, 거리를 하릴없이 배회하는 아이에게 하루에 30분 이상 운동을 하는지 묻는 것도 마찬가지다. 같은 10대라 해도 보호자의 보살핌 안에 있는 청소년과 오랜 방임 속에 가출과 노숙, 배회를 일삼는 거리청소년은 생활 패턴이 엄연히 다르다. 질문이 달라야 하는 이유, 문진표의 문항이 달라야 하는 이유다.

이승필 원장은 비근한 예로 감기를 들었다. 일반 청소년과 거리청소년에게 감기는 다른 무게를 지닌다. 제때 바로 처방받는다면 대수롭지 않은 질병이지만 방치된 감기는 폐렴과 결핵으로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은 거리생활로 쉽게 질병에 노출되고 신속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거리청소년들이 실제 겪는 일이기도 하다.

“주거불안으로 건강상태가 취약한 와중에 감기, 외상, 성병 등을 방치해 큰 병으로 확산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가출 후 이틀 동안 길거리에서 비 맞고 노숙을 하다가 열이 40도까지 올라 입원한 친구도 있었고요, 가출팸 생활 중 성매매를 강요당하며 골반염을 방치하다가 3차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은 친구도 있었죠. 떼굴떼굴 구를 만큼의 통증이어야 ‘아프다’고 인식하는 아이들입니다. 그러다보니 통증을 호소할 쯤엔 이미 상황이 악화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해요.”

거리청소년은 거리에서, 현장에서, 사각지대 최전방에서 직접 만나 '건강검진 받아볼래?' 묻는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만나는 거리청소년은 어딘가에 적을 두고 있지 않기에 직접 만나 ‘건강검진 받아볼래?’ 묻는 수밖에 없어요

포텐 전종수 소장이 전하는 현장 경험은 거리청소년이 처한 위기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포텐이 거리청소년을 위한 건강검진 문진표 개발에 착수한 것도 이 때문. 학교밖청소년을 위한 건강검진 문진표가 개발됐지만, 전 소장은 그 문진표가 기존의 일반적인 건강검진문진표와 별 차이가 없다고 지적 한다. 2015년 시행된 ‘학교밖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학교밖청소년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장되었다고는 하지만, 전 소장이 거리에서 만나온 아이들에겐 닿지 않는 지원이었다.

“학교밖청소년만 하더라도 제도권 안에 있는 친구들이에요. ‘학교안’에서 ‘학교밖’으로 구분되었을 뿐, 어딘가에 적을 두고 있죠. 정부가 주도하는 학교밖청소년 지원사업의 건강검진을 신청할 수 있는 공식적인 채널이 충분해요.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거리의 위기 청소년은 어딘가에 적을 두고 있지 않아요. 거리에서, 현장에서, 사각지대 최전방에서 직접 만나 ‘건강검진 받아볼래?’ 묻는 수밖에 없어요.”

통증의 내력은 삶을 읽어내는 지표가 된다

포텐에서 개발 중인 거리청소년 맞춤형 건강검진 문진표는 거리청소년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며, 거리생활과 거리 위험 요소들을 자세히 묻는다

거리청소년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거리생활과 거리 위험 요소들을 자세히 묻기 위해


거리청소년 맞춤형 건강검진 문진표 개발은 3년 계획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다. 먼저 프로젝트 첫 해인 2015년엔 문진표 개발의 기초 작업으로 거리청소년의 건강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는 가정의학과, 산부인과, 정신과 전문의와 간호사로 구성된 전문 의료진에 자문을 구하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과 협업하여 1차 문진표 개발을 마친 후 지속적으로 문항을 수정․보완하는 중이다. 꼭 필요한 항목을 추가하고 불필요한 항목을 뺀다거나, 포괄적이고 뭉뚱그려진 표현 대신 대상자가 즉각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바꾸는 작업이 그것. 포텐에서 개발하고 있는 거리청소년 맞춤형 문진표는 거리청소년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며, 거리생활과 거리위험 요소들을 자세히 묻는다. 완성된 문진표는 거리청소년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즉시 수시로 활용하고, 2017년엔 협력병원과 연계하여 그 실효성을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동의료상담 중, 보다 정밀한 진료와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해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경우가 있어요. 그때 상담 중에 미리 작성한 문진표를 담당의에게 보여준다면, ‘이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구나’ 빠르게 파악하고 그 부분에 보다 집중하여 신속히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문진표가 없다면 처음부터 하나하나 물어야 할 텐데, 직접 대면 시 민감한 질문에 아이들이 답변을 제대로 못할 수도 있고, 또 응급상황일 경우 문진에 필요한 시간만큼 지체되는 것도 손실이고요.”

포텐이 개발 중인 거리청소년 맞춤형 건강검진 문진표는 지금, 거리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을 팩트 그대로 전하는 보고서가 될 것이다

포텐이 개발 중인 건강검진 문진표는 지금, 거리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을 팩트 그대로 전하는 보고서가 될 것이다

이승필 원장의 말마따나 문진표는 응급상황에 대한 빠른 대처에도 매우 유용할 것이다. 실제로 전종수 소장은 배가 아프다는 청소년을 데리고 가정의학과와 비뇨기과, 내과를 전전해야 했던 경험이 있다. 통증이 심각해진 상태에서야 전 소장을 찾아온 아이는 윗배가 아픈지 아랫배가 아픈지 구분하지 못했고, 상황을 알 수 없는 복통만을 호소했을 뿐이다.

전 소장이 만난 아이들은 아픔을 주로 참는다.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못하며, 그나마 포텐을 찾아오면 다행이다. 엄마에게 맞아 부러진 앞니를, 원인 모를 통증을, 그냥 ‘내버려두라’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 전 소장은 ‘제일 어렵다’고 토로한다. 아이들이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지 알고자 하는 어른이 있다는 것을, 질문을 바꿔서라도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기억해주길 바랄 따름이다. 

통증의 내력은 그 통증을 품고 있는 삶을 읽어내는 지표가 된다. 포텐이 개발 중인 건강검진 문진표는 지금, 거리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을 팩트 그대로 전하는 보고서가 될 것이다.
 

글 고우정 ㅣ사진 임다윤

[함께 보면 좋은 글]
[사각지대 청소년 단체지원사업] 거리청소년에게 다가가다
[사각지대 청소년 단체지원사업 _ 한빛] 한빛청소년대안센터, 꿈을 찾아가는 캠핑카 이동상담소
[사각지대 청소년 단체지원사업 _ 포텐] 의정부시이동형쉼터 포텐
[사각지대 청소년 단체지원사업 _ 한빛] 캠핑카 안에서 거리 청소년들의 미래와 만나다
[사각지대 청소년 단체지원사업 _ 포텐] 마음 치유하는 의료상담으로 거리 위의 아이들과 거리를 좁히다

[사각지대 청소년 단체지원사업]은…

아름다운재단 [꿈꾸는 다음세대] 영역의 단체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거리청소년 아웃리치 및 지원이 가능하고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단체를 지원함으로써 거리청소년들이 지역 안에서 생활하고 보호받을수 있는 안전망을 제공합니다. 한편 기존의 사후적이고 단편적인 지원에서 벗어나 청소년의 특성과 욕구를 고려한 예방적,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하여 다양한 거리청소년 지원모델을 개발하고자 합니다. 

본 사업은 미래세대1%기금을 기반으로 ‘거리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단체를 지원합니다.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