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5일. 높고 푸른 하늘에 구름만 평온히 흘렀습니다. 전날까지 이어진 폭염과 장마가 무색할 만큼 맑은 날.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함께 할 사람들을 걱정하신 김군자 할머니의 마음인 것 같아 자꾸만 하늘을 올려봅니다.
마지막 배웅
오전 7시 40분. 김군자 할머니의 발인식이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장례식장을 찾은 추모객들은 조용히 자리해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지켰습니다.
김군자 할머니를 처음으로 뵌 것은 아름다운재단에 입사한 첫해였습니다. 90세 생신을 축하하는 조촐한 생일파티, 신입 간사를 대표해 감사의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준비했습니다. 할머님 옆에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편지를 읽기 시작하자 조금 더 곁에 다가와 귀를 기울여 주셨습니다. 고맙다며 따뜻하게 잡아주신 손.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군자 씨, 우리가 왜 이렇게 당하고 울어야 합니까. 너무 억울하고 분하지만 이제 편안하게 웃으면서 잘 가세요“
이용수 할머니의 마지막 인사에 애써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추모객들도 울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열일곱 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김군자 할머니. 그 모진 세월을 버텨내신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니 고운 미소를 띤 할머니의 영정 사진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진행된 노제에는 김군자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각계 인사와 멀리서 찾은 시민, 학생들이 자리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공식 사죄하고 법적 배상 해야 한다는 평소의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반드시 당신의 명예를 회복하겠습니다. 올바른 역사와 인권을 알리기 위해 당당하고 용감하게 증언을 한 당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인권 활동가로 기억하겠습니다.”
원행 스님의 추모사에 고개가 떨궈졌습니다. 진정성 있는 일본 정부의 사과. 그토록 소망하셨던 김군자 할머니의 바람은 이제 무거운 숙제로 우리에게 남았습니다.
장학생들의 마지막 인사
평소 할머님이 다니셨던 수원교구 퇴촌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 성당을 가득 채운 신자들과 추모객들은 두 손을 모아 김군자 요안나의 평화로운 영면을 기도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날 성당에서는 김군자할머니기금의 장학생들이 할머니를 모셨습니다. 김군자할머니기금은 자신처럼 부모가 없는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싶다는 할머니의 바람으로 조성된 아름다운재단 1호 기금입니다. 할머님이 기부하신 총 1억원의 돈에 약 700여 명의 기부자가 힘을 보탰고, 이 기금으로 지금까지 약 250여 명의 학생들이 학업의 꿈을 이어갔습니다.
장학생들이 선물한 손편지를 보며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다던 김군자 할머니. 학업을 잘 마치고 직장인이 되어서, 결혼해서 가족들과 함께 찾아오는 자식 같은 장학생들은 할머니의 큰 자랑이었습니다. 야간 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올라와 장례미사에 참석한 학생처럼, 할머니의 애틋한 마음이 감사하고 그리운 것은 모든 장학생의 마음일 것 같습니다.
마지막 미사 후 서울추모공원으로 떠난 할머니는 늦은 오후가 되어 다시 나눔의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법당에 고이 놓인 할머니의 유골함은 여전히 따뜻했습니다. 이용주 할머니는 불편한 걸음으로 3층 법당을 찾아 말없이 유골함을 쓰다듬으셨습니다.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추모객들은 김군자 할머니와의 추억들로 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할머니의 방
누구보다 멋쟁이였던 젊은 시절의 모습부터 세례받던 날, 나눔의 집 할머님들과 여행 사진들. 한쪽 벽에 걸린 할머니의 사진들을 오랫동안 살펴봅니다. 방문 옆에는 지난 해 할머니의 구순을 맞아 재단 간사들이 축하 메시지를 담은 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침대 밑에 고이 놓인 할머니의 실내화, 테이블 빼곡한 작은 소품과 선물, 편지들까지, 아쉬운 마음에 할머니의 손길이 닿았던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눈에 담았습니다.
아픔과 눈물로 한 맺힌 김군자 할머니의 삶.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앞장선 용기, 포기하지 않는 희망, 가진 것 모두를 아낌없이 내어준 소중한 나눔으로 그 아픔을 뛰어넘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할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그 용기와 희망을, 소중한 나눔을 떠올리겠습니다. 할머니, 이제 편히 쉬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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