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청소년에게 의료서비스 및 보건교육을 지원하고 있는 포텐

거리청소년에게 의료서비스 및 보건교육을 지원하고 있는 포텐

 

아이들은 맛있는 간식도 먹고 핸드폰을 충전하기 위해, 더운 날엔 바람과 그늘을, 추운 날엔 온기를 찾아 포텐 버스를 찾았다고 했다. ‘쌤’들이 착해서, 편해서, 좋아서 아무에게도 꺼내 놓지 못하던 속 이야기를 하고, 숨기고픈 상처를 드러냈다. 부끄러워서, 병원비가 없어서, 심지어 아픈지도 모르고 앓던 질병을 치료했다.

질병의 종류와 경중에 따라 다르긴 하나 성인도 병원에 갈 땐 보호자를 동반한다.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하물며 십대 아이들이다. 진료 예약과 진료비 수납을 처리하고,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함께 들어줄 보호자의 동행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거리청소년에게 보호자를 동반한 병원행은 언감생심,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건강특화형 일시청소년쉼터(이동형)를 표방하는 포텐의 의료지원 활동은 명확하다. 아픈 아이들이 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협력병원을 찾아 진단받고 때로는 수개월이 걸리는 긴 치료과정에 동행하며 병원비를 지불한다. 아이들이 해야 할 것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것 뿐.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포텐 활동가들에겐 가슴 아픈 손가락이다.

행복로의 금요일 밤, 포텐 버스를 기다리는 거리청소년에게 포텐 쌤들은 열에 들뜬 밤, 이마를 짚어주는 손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 날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던 가슴 속 마른 우물에 첨벙, 두레박 긷는 소리가 나기도 했을 것이다.

이젠 입을 가리지 않고도 웃을 수 있어요

작년 겨울 처음 포텐과 만난 윤아(가명, 17세)

작년 겨울 밤 처음 포텐과 인연을 맺은 윤아는 그간 감추고 살았지만 위로받고 싶은 상처를 처음 꺼내 보았다

겨울에 집을 나온 아이에게 배고픔 보다 더 큰 문제는 추위였다. 친구 자취방과 쉼터를 전전하다 건물 화장실에서 쪽잠을 잔 적도 있다는 윤아(가명, 17세)는 작년 겨울 밤, 포텐 버스를 처음 찾았다. 학교 앞에서 받은 홍보물을 통해 포텐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윤아는 가장 춥고 힘든 밤에 포텐을 떠올렸다.

“추위도 피하고 간식도 먹고 상담도 했는데, 쌤이 치과 치료를 받아보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제 치아 상태가 많이 안 좋았거든요. 앞니가 부러져서 말할 때나 웃을 때나 손으로 입을 가렸어요.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요. 애들이 앞니가 왜 그러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잖아요. 엄마한테 맞았다고 할 수도 없고….”   

엄마에게 맞아 부러진 앞니는 1년 째 방치된 상태였다. 앞니가 그럴진대 다른 치아가 멀쩡할 리 없었다. 28개의 치아 중 21개가 썩어있었고, 그중에서도 충치가 가장 심하게 진행된 어금니 3개는 발치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신경치료 및 충치치료와 함께 앞니에 기둥을 세워 겉을 감싸 치아 형태를 만드는 치료가 진행됐고, 윤아는 치과를 다닌 지 수개월 만에 다시 앞니를 갖게 됐다.

“사진 찍을 때 웃을 수 있어 좋아요. 전엔 사진 찍는다 하면 입부터 가리기 바빴는데, 이젠 안 그래요. 친구들도 제가 많이 밝아졌대요.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웃는 게 좀 편해졌어요.” 

매주 받는 치과 치료엔 항상 혜난 쌤이 동행했다. 아이든 어른이든 치과는 멀리하고픈 병원 1순위일 테지만, 윤아는 치과 가는 길이 싫지 않다. 다정한 언니 같은 혜난 쌤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좋다. 관리되지 않은 치아는 방치된 삶을 증거 한다. 애정 어린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아이의 속내와 같다. 내내 감추고 살았지만 누군가에겐 드러내고 위로받고 싶은 상처를, 윤아는 포텐 쌤들 앞에서 처음 꺼내 보였다.

하릴없이 거리를 쏘다니다가도 때때로 시계를 들여다보며 포텐 버스를 기다리던 겨울밤. 윤아는 ‘그때 사고를 하도 많이 쳐서 포텐 쌤들과 친해졌다’며 입을 가리지 않고 웃었다. 그 겨울과 비교하면 지금 윤아는 ‘괜찮다’고 했다. 학교를 그만뒀지만 검정고시와 함께 제과제빵 및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엄마와 같이 살진 않지만 안정된 거처도 생겼다. 취미로 태권도를 배우고, 교회도 열심히 나간다. 최근, 교회에서 워십 팀장을 맡았다고 한 걱정을 늘어놓는 윤아에게 강혜난 간사는 “잘할거야, 윤아 잘하잖아!”하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소소한 응원과 칭찬, 다정한 눈빛. 지난 겨울밤, 윤아가 기다렸던 게 핫초코와 핫팩만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마다 찾아가는 이유

승우의 모든 말과 행동에 더 이상은 표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신의 삶을 지키고 싶은 의지가 묻어있다

아픈데는 없는지 묻는 포텐의 쌤들이 있어 배고프다고, 아프다고 말할 수 있었다는 승우

승우(가명, 20세)가 포텐을 처음 찾은 건 3년 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배고픈 밤이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나온 지도 여러 날 째인 열일곱 살 소년은 날마다, 매 끼니마다 배가 고팠다. 이때, 친구를 통해 밥도 주고 간식도 준다는 ‘신박한’ 버스의 존재를 알게 됐고, 금요일 밤 행복로를 서성이다 드디어 포텐 버스를 만났다.

“간식도 주고, 핸드폰도 충전해주고, 퀴즈 맞추면 문화상품권 같은 걸 주는 이벤트도 하니까 재밌어서 금요일마다 찾아갔죠. 상담하는 선생님이 얘기도 잘 들어주시고, 위로도 해주시고, 제게 도움 되는 말도 해주셨는데, 그런 것도 좋았어요. 배고프면 주로 편의점 음식을 훔쳐 먹었는데, 금요일엔 안 훔쳤어요. 포텐 버스가 오니까, 거기 가서 먹으면 되니까.”

승우는 포텐 프로그램을 줄줄 꿸 만큼 포텐이 거리청소년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두루 이용했다. 심심해서, 배고파서, 추워서, 다정한 사람들이 그리워서, 아파서,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포텐 버스를 찾아갔다. 밥은 먹었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묻는 쌤들이 있어서 배고프다고, 아프다고 말할 수 있었다.

“거의 한 달 동안 매독 치료를 받았는데, 정영민 쌤이 항상 같이 가주셨어요. 병원비도 내주시고요. 항생제 주사가 엄청 아팠는데, 쌤이 있어서 많이 의지가 됐어요. 아프면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하시는데, 저야 항상 고맙죠. 포텐 아니었으면 치료 받기 힘들었을 거예요. 꽤 심각한 상태에서 발견된 거였는데, 전 그때 병원 갈 돈도 없었거든요.”

승우를 데리고 병원을 다녔던 정영민 팀장은 몸집만 어른인 사내아이의 엄살을 잊지 않고 놀려준다.

“주사 맞을 때마다 아프지 않게 놔달라고 애기처럼 꼭 세 번씩 당부하던 네 모습을 난 잊을 수가 없어.”

“얼마나 아팠는데요. 엉덩이 근육이 완전 굳어버리는 줄 알았어요. 근데, 전 좀 걱정돼요. 나중에 불임될까봐.”

“걱정 마, 완치 됐잖아! 이제부터가 중요한 거야.”

승우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친척 형에게 도둑질을 배웠다. 친구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댔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할 만큼 아버지에게 맞은 것도 그 즈음부터다. 아동보호기관과 친척집을 전전하며 초등학교·중학교 내내 숱하게 전학을 다니다보니, 마음을 열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어려웠다.

“제 가정사가 진짜 안 좋아요. 쌤들한테도 이야기 못한 게 엄청 많아요. 사람들은 저 보러 항상 밝다 그러는데, 저 원래 안 밝아요. 밝은 척 하는 거예요. 하지만 요즘은 좋으니까, 밝은 척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밝은 거예요.”

요즘 승우는 예전처럼 포텐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못한다. 포텐 버스가 찾아오는 시간에 일을 하는 까닭이다. 그래도 버스가 행복로에 서는 금요일이면 쌤들을 보기 위해 버스를 기다린다. 마침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가 행복로에 있어, 잠깐 인사 정도는 가능하다. 다음 달 보게 될 검정고시와 병무청 신검, 그리고 이듬해 군 입대까지, 스무 살 승우의 인생 계획은 일단 거기까지다. 길게 잡아봤자 딱히 그려지는 것도, 잡을 것도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일단은 눈앞에 닥친 것들만 생각한다지만 늘 말썽과 사고의 원인이 되었던 술을 멀리하고 은근히 건강을 챙기는 모습이, 소년원에서 공부를 다 하고 나와 검정고시는 문제없다는 귀여운 허세가 미더웠다. 더 이상 표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신의 삶을 지키고 싶은 의지가 승우의 모든 말과 행동에 묻어있었다.

글 고우정ㅣ사진 현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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