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아동․청소년에 대한 시의적 이슈들을 검토하던 중, 재단 사무국과 배분위원들은 사각지대 청소년을 주목하게 됩니다. ‘사각(死角)’은 ‘어느 각도에서도 보이지 아니하는 범위’를 뜻하며 ‘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범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응당 사회의 관심과 보호 속에 성장해야 할 아이들이 시야 밖에 존재한다는 것, ‘사각지대 청소년’이란 용어는 곱씹어볼수록 아찔합니다.
문헌조사와 관련 기관 및 단체 미팅을 통해 사각지대 청소년에 대한 접근을 고민하던 와중, 거리청소년을 대상으로 지원사업을 진행하는 단체 두 곳과 만나게 됩니다. 버스를 개조한 의료특화형 이동쉼터를 운영하는 포텐, 캠핑카 이동상담소를 운영하는 한빛청소년대안센터로, 각각 경기도 의정부시와 서울 송파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단체들입니다.
2015년 1월, 두 단체를 지원대상으로 선정한 이래 3년이 훌쩍 흘러, 어느덧 ‘사각지대 청소년 단체 지원사업’의 종료 시점을 맞았습니다. 이에, 해당 사업의 초기 자문부터 매해 연속지원심사와 연중 1회 중간공유회에 참여해온 ‘꿈꾸는 다음세대’ 영역의 배분위원들을 한 자리에 모셨습니다. ‘사각지대 청소년 단체 지원사업’의 지난 여정과 함께 그 가치를 톺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밝히고자 마련된 이 자리엔 김경옥(민들레 대표), 김민(순천향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교수), 김지수(인생나자작업장 상임이사), 임종화(좋은교사운동 대표/영신간호비즈니스고등학교 교사) 배분위원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사각지대 청소년 단체 지원사업의 시작 배경
김지수 : 청소년쉼터, 청소년지원센터와 같이 ‘청소년’을 앞에 내건 특정 공간에서도 만날 수 없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시설조차 알지 못하는, 오기 싫어하는 아이들이죠. 그런 친구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 거리였어요. 하여 사각지대청소년, 거리청소년이라 개념을 잡았지만 그 아이들을 어떤 범주 안에 넣거나 규정짓진 말자 생각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일 수도 있고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일 수도 있겠죠. 단지 놀러 나온 아이일 수도 있고, 갈 곳 없는 아이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디에도 기대지 못하는 친구들이 거리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자기 이야기도 털어놓고 놀다 갈 수 있는, 열려있는 사업이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임종화 : 가령, 자퇴하려는 학생이 있다면 교사는 그 아이를 위해 엄청나게 애를 쓸 겁니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는 순간, 관심은 거기서 툭 끊어지죠. 다수의 청소년 지원사업이 학교에 적을 둔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시야에 들어오는 아이들만 지원하는 거죠. 물론 학교를 그만두더라도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와 같은 공적영역을 통해 연결됩니다. 학교를 중심에 놓고 안과 밖으로 구분되는 아이들은 학교밖일지라도 그나마 집계되죠. 한데 학교밖으로도 잡히지 않는, 시야를 완전히 벗어난 제3의 영역이 있습니다.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방치된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딱히 답이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아이들을 위해 애쓰고 있는 단체가 있다면 그들을 돕자, 실험적으로라도 시작해보자는데 뜻을 모았습니다.
김경옥 : 대한민국청소년 모두가 위기상황에 놓여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일정한 안전망을 갖춘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안전망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아이들도 있지요. 아름다운재단은 늘 우리 사회가 더 들여다봐야 할 곳이 어디인가에 대해 빠른 촉을 가지고 그쪽으로 조명을 비추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보다 촘촘한 안전망을 던지는 거죠. 가정․학교․지자체, 그 어떤 곳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아이들을 발굴하고 돌보는 이들이 있다면 그런 이들을 재단에서 지원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거리청소년 의료지원에 초점을 맞춘 포텐과 캠핑카라는 흥미로운 아이템으로 거리청소년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한빛을 주목하게 됐습니다. 사각지대 청소년을 지원하는 일종의 마중물 사업으로 두 단체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 거죠.
해당 사업을 기획․자문하며 고민한 지점
임종화 : 꼭 필요한 사업이란 확신과는 별개로 투입 대비 산출에 대한 걱정을 좀 했습니다.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거나 영향력을 가지려면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와야 할 텐데, 쉽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은 아니라서요. 아름다운재단의 다양한 청소년 지원사업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업은 ‘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 지원사업’입니다. ‘사각지대 청소년 단체 지원사업’과는 극과 극인 셈인데, 언젠가는 거리청소년을 위한 사업도 자발적 여행까지 진척되길 바랍니다. 그러자면 먼저 몇 단계를 거쳐야할 겁니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 채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건강을 찾아주고, 성장할 수 있도록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것. 그 다음엔 이 아이들과 자발적 여행도 꿈꿀 수 있겠죠. 갈 길이 멉니다.
김민 : 경계선상에 있는 아이들은 오픈 마인드가 힘든데, 과연 소통이 가능할지 그 또한 의문이었습니다. 중간 공유회 때 두 단체 활동가분들로부터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그 방면으로 다년간의 경험을 가진 분들이라 소통에 대한 부분은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김경옥 : 왜 이 사업이 시작되었을까, 이 사업의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현장의 활동가들과 이런 고민들을 얼마나 공유하고 있을까, 때때로 돌아보곤 했습니다. 사실 현장은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바쁘잖아요. 당장 눈앞의 일이 버거울수록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하고 멀리 바라보기도 해야 자신이 발 딛고 서있는 자리가 선명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들이 가고자 하는 데가 저기라고, 충분히 갈 수 있다고 격려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지난 3년, 지원 단체 내에서 주목해야 할 변화와 발전
김민 : 사람의 변화와 지역 및 기관의 변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사람의 변화로는 아이들의 변화와 그 아이들을 지원하는 단체에 참여한 어른들의 변화를 들 수 있겠죠. 아이들의 변화만큼이나 중요한 게 어른들의 변화인데, 포텐의 경우 의료진은 물론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시민들의 변화가 분명 있었다고 봅니다. 사람에 비해 지역의 변화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립니다. 제가 팔레스타인에서 진행하는 지역교육 네트워크사업에 참여한지 9년째인데, 지역의 변화를 야기하는데 8~9년의 시간은 족히 걸리더라고요. 포텐이나 한빛은 이제 3년차라 지역의 변화까진 기대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두 단체를 통해 지원받은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잘 성장하고, 아름다운재단으로부터 지원받은 활동가, 자원봉사자, 시민 중 누구 한사람이라도 지역을 변화시키는 맹아가 된다면, 간과할 수 없는 성과를 가져오리라 봅니다.
임종화 : 한빛은 송파구청과 연결돼 지역 내 기반을 이미 갖춘 곳이었죠. 지속성을 가지려면 이처럼 지자체 차원의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포텐의 경우 이번 사업을 통해 선한 마음을 가진 지역사람들을 연결하는 계기가 됐을 겁니다. 의료진,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등 사각지대 청소년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던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한 포텐이란 구심체를 통해 이런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게 주요한 성과라고 봅니다.
지원사업 종료 이후 두 단체에 바라는 점
김민 : 한국의 지역교육운동은 외부 자원의 투입을 통해 사람의 변화와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때문에 지원이 끊어지면 내부 동력을 확보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간에 현격한 편차가 발생하죠. 두 단체 모두 내적인 동력을 확보해 지속적으로 사업을 유지해나가길 바랍니다.
임종화 : 성공 만큼이나 실패의 기록을 숨김없이 공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봅니다. 시범사업의 흔한 폐해를 예로 들어보자면, 가령 어떤 시범학교도 실패한 적은 없습니다만 그 성공사례가 확산된 적도 없습니다. 본인은 열심히 잘했다고 하지만 확산되지도 지속되지도 못하는, 일회적인 성공일 뿐이죠. 사업을 진행하며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실패의 역사까지 솔직히 공유한다면, 같은 지향점을 가진 후발 주자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김지수 : 사업이 축소될 수도 있을 거예요. 어떤 사업이든 예산이 끊기면 힘들거든요. 공적지원 없인 지속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포텐의 의료지원사업을 공적인 영역에서 진행한다면, 병원 다 열어줄 테니 가서 검사받으라고 하면 돼요. 간단하죠. 하지만 그런다고 아이들이 스스로 병원에 갈까요? 안가죠. 의료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을 발굴해 데려가줘야 해요. 허브 기능이 필요한 거죠. 공적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겁니다. 성과에 집착하고 사업의 덩치를 키우기 보다는 허브 기능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들을 키워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하고 있는 일이 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끊임없이 격려해야 해요. 결국엔 돈으로 해결해내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을 이 사람들이 해결해낼 겁니다.
사업 종료 이후 재단의 후속 사업에 대한 제언
김지수 : 우선 지난 3년 동안 지원한 단체들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꼼꼼히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할 거라고 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사업에 외부 지원이 제로화 됐을 때와 외부 지원이 1, 2년이라도 더 유지됐을 때 달라지는 점을 확인하고, 예산이 조금 더 뒷받침될 경우 사업의 안정화를 도모할 가능성이 높다면, 이를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것도 새로운 단체를 발굴하는 것 만큼 중요하지 않을까요?
임종화 : 새로운 단체를 발굴한다면, 기존 단체가 신규 단체를 컨설팅하는 방식도 시도해볼만 하겠죠. 어쩌면 성과보다 여론을 이끌어내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데, 아름다운재단의 특화된 장점 역시 이 부분에 있다고 봅니다. 당장의 변화를 이끌어내진 못하더라도 가려진 존재를 드러내고 그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것. 한 단체나 한 아이를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고민을 이끌어내는 시도를 이어가길 바랍니다.
김민 : 면 단위 지방 소도시의 사각지대 청소년은 정말 사각지대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을 주목했으면 합니다. 정신보건센터, 다문화지원센터, 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같은 그 많은 센터들이 면소재지엔 없더라고요. 향후 재단이 이와 같은 지원사업을 중장기적으로 진행한다면 공적 영역의 기관이 전무한 농어촌 지역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경옥 : 시각지대 청소년에 대한 지원이 새 정부 들어 꽤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아름다운재단은 재단이 추구하는 가치와 역할에 맞게끔, 사각지대 청소년에 대한 개념과 범주를 새로운 시각으로 돌아보면 좋겠어요. 얼핏 별 문제없어 보이지만 더 심각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안전한 그물망 안에 있는 듯 하나 이면으론 더 아픈 아이들, 더 소수의 친구들을 찾아 지원할 방법은 없을까요? 공공의 영역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문제들을 발굴해내길 바랍니다.
글 고우정ㅣ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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