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부터 2박 3일간 아름다운재단은 JTBC 뉴스룸 취재진과 함께 우토로에 다녀왔습니다. 우토로가 시간을 기록하러 가는 길에는 특별한 동행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초등학교 교사이자 매년 학생들의 생일을 기념하여 기부하며 아이들에게 ‘기부선물’을 주는 ‘송한별 기부자’님입니다. 2018년에는 6학년 어린이들과 함께 우토로평화기념관 건립을 위한 기부금을 모아서 전해주시기도 했는데요. 이번에 직접 우토로에 방문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진솔하게 담은 ‘우토로 방문기’를 전해드립니다. 과연, 직접 만난 우토로는 어땠을까요?

직접 만난 우토로, 함께 세워갈 우토로 – 송한별 기부자의 우토로 방문기

이미지와 글로만 만나던 우토로를 직접 만났다. 작은 마을 우토로는 ‘철거 중’이었다. 그러나 우토로의 동백꽃을 보며 생명과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철거 중’인 우토로를 동백꽃을 닮은 사람들과 ‘함께 기억’ 해야겠다.

첫 인상 – ‘철거 중’

택시를 타고 점차 우토로 마을에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마을 입구’를 찾았다. 마을이 무슨 우유병도 아니고 입구가 하나겠냐만, 우리는 ‘우토로 입구’ 이미지를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직접 쓰고 그린 입간판이 세워져 있던 마을 입구. 그 입구 역할을 하던 집은 이미 철거했단다. 당장 공사차량이 진입할 수 있는 도로 확보를 위해 입구부터 철거가 진행 중이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이곳저곳에서 각종 중장비가 굉음을 내며 우토로의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덩달아 내 마음도 쿵-쿵.


2차 시영주택과 평화기념관 및 공원이 들어설 부지는 언제든 공사가 시작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였다. 바꿔 말하면 아무 것도 없는, 휑한 공터. 새롭게 만들어 갈 기대와 설렘보다, 당장의 철거 현장에서 흘러나오는 굉음과 진동의 파편이 내 감각과 정서를 지배했다. 우리는 그나마 지켜낸 3분의 1만큼의 땅에 우토로의 기억과 가치를 잘 담을 수 있을까? 직접 만난 우토로의 첫인상은 ‘공사 중’ 보다는 ‘철거 중’이었다.

동백꽃이 잘 어울리는 마을

그런데, 잿빛 먼지가 흩날려도 우토로는 밝은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동백꽃- 우토로의 집마다 길마다 자라는 동백은, 우토로가 지닌 생명과 평화를 상기시켰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동백꽃은 제주4.3의 상징이다. 가슴 아픈 희생에 그치지 않고, 평화와 상생까지 의미하는 동백꽃. 제주도민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 자리 잡은 오사카에도- 동포들이 차별에 반대하며 연대와 평화를 선보인 우토로에도- 동백꽃은 여지없이 피었다. 우토로 동백을 보며 생각했다. 우토로는 동백이 어울리는 마을이라고.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러한 느낌은 곧 확신이 되었다.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재일동포 4세대인데, 사실 그들에게 우토로는 그저 할머니 세대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김수환 대표님의 역사강연을 진지하게 필기하며 경청했고, 특히 강경남 할머님께서 직접 전하시는 이야기에 몰입하였다. 사실 할머님의 목소리나 발음이 학생들에게 전달되기 힘들어서 집중도가 떨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럴수록 학생들은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듯 할머님께 집중하였다.

무엇보다 압권이었던 장면은- 할머님께서 노래를 부르시다가 자꾸 가사를 까먹으셔서 진행이 안 되자, 학생들이 다같이 수줍게 떼창을 부르며 노래를 완성하는 순간이었다. 비록 4세대일지라도 – 타국에서 이방인 혹 경계인으로서 정체성을 깊이 고민해야 하는 아이들이었겠구나! 소수자였던 학생들에게 이 노래가 주는 위로와 공감이 매우 컸겠구나! 세대를 뛰어넘어 역사를 기억하고 자신의 삶에 새기는 학생들은 추운 겨울마다 다시 피어나는 동백꽃을 닮았다.

하수부 할아버님은 서울에서, 강순악 할머님은 인천에서 뵙고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는데, 두 분 모두 첫 만남을 기억하셨다. 그 당시에도 나이차 따위는 무시한 채 나와 학생들에게 예를 갖춰 고마움을 표현하셨던 분들. 두 번째 만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마을을 지킬 수 있게 나서준 시민들에게 고맙고 더 바랄 것이 없다며 거듭 감사를 표하셨다. 아직도 평화기념관 설립 비용을 비롯해 함바 이전, 구술기록집 제작, 한글 교재 제작 등에 필요한 비용이 턱없이 부족하여 조바심이 나실 만도 한데, 그저 고맙다는 말씀만 하신다. 사실 강순악 할머님께서는 인천에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며 눈물을 흘리시기까지 했다.

한편,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마을주민 한 분은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우리에게 손수 만드신 반찬을 보내셨다. 고맙다고, 이렇게 반찬이라도 해 주고 싶으셨다는 말씀을 김수환 대표님께 전해들으며 눈물이 핑 돌았다. 우토로 문제의 당사자이자 가장 어려운 순간을 살아내셨던 주민분들- 그분들이 그저 고마워하시는 모습에서 동백꽃의 따듯한 빛깔이 느껴졌다. 

수도 시설 없이 살고 있다는 우토로 친구의 말을 듣고 아키코 선생님은 충격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 이후 우토로에 권리를 되찾아주고자 평생을 헌신하신 아키코 선생님을, ‘일본의 양심’이라고 불러드리고 싶다. 아키코 선생님은 인사를 나누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줄곧 수줍어 하시며 몸에 밴 겸양을 보이셨다. 마을 회의를 앞두고 다들 정신이 없을 때, 선생님께서는 주방에서 조용히 설거지를 하시고 회의를 위해 차를 준비하셨다. 분주한 때에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모습은, 그분이 우토로를 위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짐작케 했다. 우토로 위에 선 자가 아니라, 우토로를 섬기시는 일본의 양심 아키코 선생님에게서 동백꽃의 ‘상생’을 발견한다.

‘함께 기억’해야 할 우토로

중장비가 뱉어내는 파열음과 스러져가는 함바들, 고양이도 조심히 지나가는 빈집과 공터 – 우토로는 ‘철거 중’이다. 시민들과 정부가 함께 매입하여 지킨 부지는 아직 썰렁했다. 그러나 강경남 할머님을 비롯한 주민분들은 동백꽃처럼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고 계신다. 덕분에 우토로는 여전히 잿빛 먼지에 깔리지 않고 생명의 빛깔을 내비친다. 낡은 우토로는 사라지지만, ‘함께 기억’함으로써 동백꽃처럼 부활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다다르자, 드디어 비어있는 부지를 보며 설렜다.

때마침 하수부 부회장님께서 마을회의 때 주민분들에게 한 가지를 강조하셨다. 어린 학생들이 직접 ‘기억할게 우토로’ 캠페인을 진행하여 모은 기금은 엔화로 환전하지 않고 원화 그대로 평화기념관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액수의 크고 적음을 떠나, 서로의 마음이 이렇게 이어져서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뭉클했다.

어디 이 기금 뿐일까? 여전히 우토로는 우리가 함께 채워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기다리고 있다. 그들만의 기억이 아닌, 참여하는 모두와 ‘함께 기억’ 할 수 있는 여백이 넉넉한 우토로. 함께 참여하여 우토로를 다시 매만져 나갈 때, 우토로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교과서가 될 것이다. 한국인은 물론 조선학생들과 일본인, 나아가서 세계인이 모여 평화의 역사를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우토로- 생각만 해도 벅차오른다. 

아이들이 졸랐던 대로, 조만간 아이들과 함께 우토로에 수학여행 가기를 꿈꾼다.

 

글ㅣ사진 송한별 기부자

댓글 2

  1. 두두두

    행동하는 기부자시네요. 글을 읽으니 우토로에 다녀온듯 합니다. 평화기념관이 건립되면 꼭 우토로에 갈게요

    • 아름다운재단 공식블로그

      네 멋진 기부자님이시죠!? 우토로 평화기념관이 세워지면 🙂 꼭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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