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단체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은 시민사회의 성장을 돕기 위해 2012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는 사업입니다. 해마다 공모를 통해 예비 공익 단체를 선정하고 이후 3년 동안 비영리단체 설립 과정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주체와 방식이 계속 등장할 수 있도록 사업의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기존에 보기 어려웠던 독특한 영역에서 활동하거나 정체성이 뚜렷한 단체의 활동에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변화의시나리오 인큐베이팅 총서’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단체들의 다채로운 성장기를 기록하고 지원사업의 성과와 가능성을 점검해보는 기획입니다.  그 첫 번째 책인 『사람 마을 세계를 잇다』는 2013년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조금씩 서서히, 그러나 선명히 다가오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서 내려다 본 지리산 자락. 안개와 미세먼지에 쌓여 뿌옇게 보이는 풍경을 글쓴이가 바라보고 있다

천왕봉에서 내려오는 길. 뿌연 게 마치 서울 하늘 같다

재단 지역사업팀에 들어오기 한 달 전, 지리산에 다녀왔었다. 우연이지만 어쩐지 필연 같은 그 여행은 그러나 뭔가 아쉬움 많은 여행이었다. 힘들게 올라간 천왕봉에서 미세먼지 때문에 섬진강 코빼기도 보지 못했고, 봄철 되면 가득 핀다는 매화는 너무 이르게 찾아간 탓에 구경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책가 아름다운재단의 씨앗나무와 나란히 놓여있다

책 <사람 마을 세계를 잇다>(아모르문디,2019)

아쉬움이 남았기에 언젠가 꼭 오겠다던 지리산을 한 달 뒤, 아름다운재단 출근과 동시에 다시 찾게 되었다. (초짜 간사의 지리산 첫 출장기)한 달만에 다시 만난 지리산은 여행에서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가깝고 정겨운 곳이었다. 어떻게 여행보다 출장이 더 좋을 수 있었을까? 가만 생각해보면, 그건 아마 이 책의 주인공, 지리산이음을 출장길에 만났기 때문일 게다.

그리고 출장이 끝나고 돌아온 서울에서 <사람 마을 세계를 잇다>(아모르문디,2019)로 지리산이음을 다시 만났다. 이 책은 2012년부터 아름다운재단에서 시작한 변화의시나리오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이하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으로 탄생한 단체들의 성장기를 담은 인큐베이팅 지원사업 총서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은 아름다운재단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시민사회운동의 성장을 돕기 위해 2012년부터 시작한 사업이다. 매년 공모를 통해 예비 공익 단체를 선정하고, 이후 3년 동안 설립 과정을 다각도로 지원한다. 이번 책은 지난 13년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쉬웠던 지리산 여행이 출장으로 풀어졌던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며 출장길에 낯설게 만났던 지리산이음 사람들을 훨씬 더 가깝고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지리산은 조금씩 서서히, 그러나 선명히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여기는 왜 다 낯가리는 사람들뿐이래?”

마을카페 토닥 공사 중인 임현택 님 사진.

현장감과 동시에 한없는 낯가림이 묻어난다. (출처 : 책 <사람 마을 세계를 잇다>)

책은 지리산이음을 처음 시작한 이들의 이야기, 이후 이들과 함께 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어서 지리산이음이 마주한 고민과 현재, 그리고 앞으로를 상상해 보는 이야기가 실려있고, 마지막에는 앞서 말한 개별의 이야기가 하나로 모여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책 초반 장상미 작가가 지리산 사람들과 인터뷰하며 느낀 낯섦과 생소함이 제법 등장하는데, 뒤로 갈수록 그런 감각들이 서서히 풀어지고 더 깊이 있는 고민과 생각들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과정이 마치 지리산을 실제 만났던 경험과 닮아 책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괜한 걱정을 했던 모양인지, 이야기는 생각보다 술술 풀렸다. 그날 토닥에서, 뱀사골 앞 식당에서,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몇 차례에 걸쳐 만남을 이어나가는 사이, 나는 점차 이 미지의 인물이 걸어온 길을 예상보다 꽤 많이 알게 되었다.
− 제1장 <시작하는 마음, 진짜 마음이 가는 일은 시작이 가볍더라> 오현택 인터뷰 중

그러나 이는 지리산이음을 실제로 만나본 경험이 있어서 가능한 감정일 것이다. 지리산이음을 이 책에서 처음 만난 독자는 책에 등장한 활동과 맺고 있는 관계들의 얼개가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지리산 포럼, 시골살이학교, 마을카페 토닥, 두꺼비모임 등 직접 만나 경험하지 않으면 선명하게 그리기 힘든 활동과 관계들을 글로만 읽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지리산이음 홈페이지에 있는 사업 소개(더 나은 사회를 위한 지혜를 모으고 연결하고 공유하는 기반을 만듭ㅂ니다, 지리산권의 사회적경제와 커뮤니티, 새로운 사회적 실험을 지원합니다, 도시와 시골의 경계를 허무는 대안적 삶의 문화를 나눕니다, 공익적 자산과 기금을 관리하고 운영합니다)

지리산이음 소식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 제목이 말하듯 이들 활동과 관계는 사람, 마을, 세계를 ‘잇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줄기이자 매듭들이다. 이런 유연한 눈으로 지리산이음을 바라보면, 그들의 활동과 관계를 이해하기가 조금 더 수월해진다.

일주일 살아본다고 시골 와서 살겠다고 결심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궁금하면 누구나 가볍게 두드려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죠. 시골살이학교가 그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요. 재밌기도 하고.
−제2장 함께하는 마음, 누군가에게 고향을 만들어주는 일. 시골살이학교 류순영 인터뷰 중


토닥 문 열고 조금 지나서 연락을 받았어요. (중략)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계획이 허무맹랑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해나가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길면 한 3년만 해보자 생각했죠.
− 제2장 함께하는 마음, 무언가 시도하도록 자극하는 공간. 마을 카페 토닥 나비 인터뷰 중

목적과 방향성이 분명하게 있어 잔뜩 힘이 들어간 게 아니라 ‘서로 인사하고 맥주 좀 마시다’가 같이 해보겠냐는 제안에 ‘재밌겠다’도 함께 만든 토닥처럼, 자연스레 흘러 맺어지고 풀어지는 과정에서 활동과 관계들이 생겨난 지리산이음. 그러니 책을 읽을 때도 그에 맞게 유연한 사고(!)와 여유를 발휘해야 한다.

내 ‘맥락’으로 다시 읽는 지리산이음의 기록

지리산이음의 발자취를 따라오는 동안 나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성과가 아닌 공감으로, 위계가 아닌 관계로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의 시도가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과 감동을 주었는지를 익히 들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운동이란 게 어디 있겠나. 마음은 먹었으나 하지 못한 일들, 미처 생각하지 못해 저지른 실수와 실패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 제3장 단절 또는 확장, 그 사이에서. 들어가는 글

지리산이음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른 봄 그곳에서 만난 풍경과 소리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글에 드러난 고민과 생각들은 거기가 어디가 됐건 한국 시민사회가 동일하게 겪고 있는 고민들을 불러 낸다. 세대, 운동, 지역, 마을, 삶, 쉼, 속도, 젠더처럼 우리가 가깝게 경험하고 고민하는 주제들이 이 책 곳곳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3장에 정상순(지리산이음 활동 초기, 지역 내 커뮤니티 조사를 진행했었다)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 여성주의로 다시 만나기’는 한 단체가 성장하고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과 방법 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또한 지리산이음에서 함께 하고 있는 하무의 인터뷰 글 ‘불안에 잠기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은 지리산이음을 설립한 세대와는 다른 지금 세대의 목소리로 활동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왼쪽은 지리산이음이 있는 산내면 전경, 오른쪽은 아름다운재단이 있는 서촌의 전경이다. 산내면 사진에는 물이 찬 논에 지리산에 비춰 보이고, 서촌 사진에는 컴퓨터와 서류 더미 사이로 나무가 바라다보인다.

지리산이음이 있는 산내면과 아름다운재단이 있는 서촌의 전경. 어디에 있든 현실은 현실이다.

젠더와 세대뿐 아니라 삶의 속도감, 함께 일하기, 지역살이, 도시와의 교류, 주민들과 함께 하기 등 인큐베이팅 과정에서 겪은 지리산이음의 다채로운 경험과 고민을 이 책은 비교적 고르게 다루고 있다. 때문에 읽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그리고 지금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냐에 따라 지리산이음의 기억들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참고로 ‘세대와 같이 일하기’가 개인적 화두인지라 나에게는 그 대목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사람 마을 세계를 잇다>에 적힌 지리산이음의 지난 3년은 지역에 뿌리 내려 성장해 가고 있는 선배 세대의 단체 설립 성공담이 아니다. 반대로 단체를 만들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은 성취와 실패, 고민과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한국 시민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동료의 이야기일 뿐이다. 지리산이음은 여전히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그들의 마침표로서 적은 기록이 아니다. 더 성장하고 단단해 질 지리산이음의 앞으로를 상상하기 위한 ‘연결점’의 기록이다. 이제 3년의 인큐베이팅 과정을 끝내고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라는 새로운 흐름과 연결된 지리산이음. 이들이 지리산에서 만들어 나갈 앞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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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시나리오 인큐베이팅 총서 1 –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 『사람 마을 세계를 잇다』 출간 안내
지리산이음 홈페이지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 홈페이지  

‘아름다운재단’과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함께 설립, 운영하고 있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지리산권(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 지역사회 안에서 공익을 위한 활동이 확산되고, 시민사회 생태계가 성장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활동 주체를 발굴하고 다양한 활동을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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