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나눔교육반디>는 2004년 개설 이래 교육 인프라 구축과 보급을 거쳐 실천중심형 교육으로 발전했습니다. 특히 나눔교육 3기(2015-2019년)는 많은 청소년들의 사회참여를 지원하고, 청소년들이 우리의 동료시민이라는 사회 인식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했습니다. 2020년부터 나눔교육은 청소년공익활동지원사업 ‘유스펀치’와 통합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청소년들의 사회참여를 지원합니다. 새로운 도약에 앞서 사업의 성과를 지속시키고, 개선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눔교육 3기를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나눔교육이 만들어낸 고민과 도전, 그리고 변화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2004년, 아름다운재단이 시작할 때만 해도 ‘나눔교육’을 하는 곳이 전무했다. 나눔교육이란 말 자체가 생소한 시절이었다. 해외사례를 연구하고, 교안을 만들고, 교사 교육을 하며 초기 인프라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5년을 꾸준히 연구하고 실천사례를 축적하니, 2010년대에는 나눔교육을 하는 시민사회단체가 늘어났다. 나눔교육이 확산됐다는 의의가 있었지만, 고민은 깊어졌다. 유사한 교육의 홍수 속에서 나눔교육의 본질은 무엇인가 되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눔교육의 철학을 세우다
“모든 결정권은 청소년에게”
아름다운재단의 나눔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10년간 해온 나눔교육의 철학을 정리하고 정체성을 확립했던 2014년, 아름다운재단이 정했던 원칙 중 하나는 ‘나눔을 점수화하거나 등수를 매기지 말자’였다.
나눔의 가치를 점수화하는 건 자발성에서 출발해야 하는 나눔의 본질에 어긋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참여 청소년의 주체성을 부정하는 방식이었다. 청소년은 유인책이 있어야만 움직일 거란 발상, 자발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 두지 않을 거라는 편견이 작동한 결과다. 아름다운재단은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을 바라보는 이러한 편견부터 재검토해야 했다. 2014년 ‘모든 결정권이 청소년에게’ 있는 <나눔교육 반디>가 시작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나눔교육 반디>의 철학은 세 가지이다. 첫째, 나눔교육은 가상이 아닌 실제 사회문제를 다루고 해결하는 실천 중심의 활동이다. 둘째, 프로그램이 아닌 경험을 지향하며, 지역과 시민사회와 연결하는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풀어간다. 셋째,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지 등 과정에서의 모든 결정권은 청소년에게 있다. 가상이 아닌 실제, 프로그램이 아닌 경험과 연결, 모든 결정권은 청소년에게. 이 세 가지가 지금까지 이어온 나눔교육의 철학이자 원칙이다.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자신들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성인 멘토인 반딧불이가 가진 의도가 따로 있을 거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반딧불이 역시 안내자이자 촉진자로서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어디까지가 안내이고, 어디까지가 개입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많았다. 청소년이 모든 결정을 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상호 신뢰부터 쌓아야 했다. 그럴 때마다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을 만나 연결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처음에는 ‘진짜 이거 해요?’라고 묻는 청소년이 많았어요. 결정권이 있다는 말을 불신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경험이 쌓인 거죠. 그러다가도 직접 현장에 가면 생각이 바뀌었어요.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활동을 선택했던 모둠이 기억에 남아요. 처음에는 크게 의욕을 보이지 않았는데 광화문에 가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고 와서는 ‘모금해서 등받이 의자를 사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겨울에 천막 아래 유가족분들이 바닥에 앉아있던 게 안타까웠던 거예요. 미디어에서만 보던 피상적인 문제로서가 아니라 실제 당사자들의 일상에 관심을 두고 공감하기 시작한 거죠.”
사회문제를 내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하다
“나눔교육 이후 학원을 끊었어요”
나눔교육은 필수적으로 활동가나 시민단체를 만나는 과정을 두고 있다. 현장과 만나야 나눔이 ‘시혜’가 아니라 ‘연결’의 과정이라는 걸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눔교육에 참여한 많은 청소년은 점차 타인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와 연결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만들기’의 활동가를 만난 후, 한 청소년이 학원을 모두 끊었다고 힘주어 말했어요. 활동가와 만난 이후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봤다고 해요. 스스로 결정했다며 뿌듯해하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스스로가 변화의 주체이자, 자기 결정권을 가진 존재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 아닐까 해요.”
2015년부터 5년간 아름다운재단은 많은 시민단체, 학교, 복지관을 연결하며 나눔교육을 꾸려왔다(나눔교육 커뮤니티매핑 바로가기). 그 연결 속에서 나눔교육을 통해 모금과 캠페인을 실행했던 청소년은 지난 5년간 2,362명이다. 참정권 운동, 스쿨미투, 제주 4.3을 알리는 일 등 몇몇 활동만 살펴봐도 청소년들이 그간 시민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알 수 있다.
청소년 배분위원회를 시작하다
“미래세대 아닌 지금의 시민으로 권한을 나누다”
나눔교육을 하면서 변한 건 청소년들만이 아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아름다운재단도 청소년을 ‘미래 세대’라고 이야기했어요. 나눔교육을 16년간 지속하면서 깨달았죠. ‘미래 세대’란 표현은 청소년을 지금의 시민이 아니라 유예된 시민이라고 말하는 거구나. 청소년도 이 시대를 사는 동료 시민이구나. 그래서 ‘미래 세대’라는 언어부터 ‘동료 시민’으로 바꿨어요.”
바꾼 건 언어만이 아니었다. 실제 권한도 나눴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청소년배분위원회다. 공모 주제 선정부터 심사와 선발까지 청소년이 직접 한다는 원칙 외에는 아무것도 미리 정하지 않았다. 청소년배분위원회는 정해진 것이 하나 없이 모든 걸 상의하고 논의하며 경험해보지 못한 길을 만들어갔다. “진짜 우리가 다 할 줄은 몰랐다”라는 말이 청소년배분위원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새로운 나눔교육을 위해
지난 16년간 아름다운재단은 나눔교육의 확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청소년을 동료 시민으로 대하는 나눔교육의 철학과 방법론을 배우는 교육의 장을 열고, 나눔교육 활동가의 네트워크 자리도 만들어 역량 강화를 지원해왔다. 초창기부터 진행해온 나눔교육 연구도 지속하여 다수의 자료를 발간했다. 나눔교육의 현장을 언어화해 담은 <실천 중심형 나눔교육 교재>, 한국의 다양한 나눔교육 현장을 발굴했던 <‘한국의 유스 필란트로피를 찾아서’ 보고서>, 해외사례를 소개했던 <나눔교육 해외연수 보고서> 등. 누구나 나눔교육에 접근하고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소중한 연구 자료들이다.
하지만 아름다운재단은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눔교육을 하며 청소년들의 변화는 두드러지게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들을 둘러싼 사회가 발맞추어 변하고 있는지 아직 물음표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길에서 영상 촬영만 해도 와서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거리에서 캠페인을 하면 ‘학생이 공부나 해야지’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요. 청소년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때마다 ‘이건 너네가 할 일이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 사회 환경이다 보니까 청소년들 스스로도 위축되는 거 같아요. 제가 이렇게 해도 되냐고 계속 묻기도 하고, 스스로 ‘우린 아직 미성숙하잖아요’라고 말하기도 해요. 청소년의 공익활동이 활성화되려면 사람들의 이러한 인식도 함께 바뀌어야 해요.”
사회적 인식 변화를 위해 <나눔교육 반디>는 또 한 번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는 청소년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공통의 목적을 가진 두 사업, 즉 활동 중심의 ‘유스펀치’와 교육 중심의 ‘나눔교육 반디’를 통합 운영할 계획이다. 그로써 청소년 공익활동의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고,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일이 당연한 사회를 만들어갈 생각이다. 이를 위해 상호 학습 커뮤니티나 청소년 공익활동 아카이빙 등 새로운 방식들을 고민하고 있다. 2020년 나눔교육의 또 한 번의 전환이 청소년들이 공익활동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씨앗이 되길 기대한다.
글 | 우민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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