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아픔과 차별의 역사를 간직한 땅 ‘우토로’

일본 교토 군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모인 이 곳, 우토로. 전쟁 이후 비행장 건설이 중단되면서 조선인들은 오갈 데가 없어졌습니다. 일하면서 받은 돈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조선인들은 일본 땅에서 살아가는 내내 차별의 역사를 겪어야 했습니다.

저지대에 하수도 시설이 없는 우토로 마을 모습

저지대에 하수도 시설이 없는 우토로 마을 모습

그 세월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건, 강제퇴거였습니다. 2005년, 아름다운재단과 우토로국제대책회의는 한겨레21 등 언론사와 함께 우토로 마을을 지키기 위한 모금캠페인을 진행했고 이후, 시민들과 정부, 한일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토로 주민들이 거주하게 된 시영주택

우토로 주민들이 거주하게 된 시영주택

우토로의 마을 풍경이 고스란히 담긴 ‘디지털 역사지도’가 완성되었어요!

우토로 주민들의 강제 퇴거는 막아냈지만, 우토로 마을은 예정대로 철거를 앞두고 있었어요. 우토로 마을 벽화도, 역사가 담긴 ‘함바집’도, 주민들의 구심점이었던 마을회관 ‘에루화’도 사라지고 있었죠. 아름다운재단은 우토로의 사라져가는 우토로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기억할게 우토로>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이미지를 클릭해주세요!

<기억할게 우토로> 배지[기억할게 우토로] 우토로 51번지를 지켜낸 시민의 기록

 

 

많은 기부자님들께서 마음을 전해주신 덕분에 우토로 마을을 그대로 담은 ‘디지털 역사 지도’를 구축할 수 있었어요. 헬리캠, 드론, VR 등 다양한 방법으로 촬영한 마을 풍경 영상과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시대별 마을 지도, 가구별 실측 평면도 및 주민 구술 기록 등이 담겨있어요. 디지털 역사지도는 아름다운재단과 지구촌동포연대가 구축한 디지털 아카이브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는데요. 우토로 마을 소개 및 주민 1세대 故 강경남 할머니 영상 등도 아카이브 사이트에 업로드 되어있습니다.

우토로 디지털 역사지도 보러가기

 

2022년 4월, 우리 곁에 찾아올 ‘우토로 평화 기념관’을 소개해요!

우토로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낼 ‘우토로 평화기념관’도 우리 곁에 찾아옵니다. 지난 6월 26일 우토로민간기금재단에서 발표된 평화기념관 구상안에 따르면 총 3층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며, 1층에는 로비와 각종 행사를 위한 다목적 홀, 2층에는 상설전시관, 3층 수장고와 특별전시공간, 루프탑에는 야외 휴게시설 및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다고 합니다.

우토로 평화기념관 조감도

우토로 평화기념관 조감도

 

우토로 마을의 상징, ‘함바집’도 평화기념관 옆으로 이전합니다.

평화기념관 건립 구상을 발표한 이후에는 우토로의 상징인 함바 해체식도 함께 이뤄졌는데요. ‘함바’라는 말이 낯선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함바는 한자 그대로 밥을 먹는 교토 비행장 건설 당시 지어진 노동자들의 식당이자 숙소입니다. 건설공사가 끝나면서 함바가 비었고, 그 곳에 조선인들이 들어오면서 우토로 마을이 형성되었어요. 우토로의 역사를 증언해주는, 꼭 보존해야 할 유물인 거죠.

우토로 함바집(출처 : 우토로 디지털 아카이브)

우토로 함바집(출처 : 우토로 디지털 아카이브)

우토로 마을에 남아있는 마지막 함바는 얇은 나무판과 시멘트로 만들어졌습니다. 1980년까지도 사람이 실제로 거주했다고 합니다. 함바를 기억하는 우토로 주민의 이야기, 들어볼까요?

우토로 주민, 문광자(1920~2008)님의 증언

1943년쯤, 우토로에 함바가 생겼습니다. 오토리조 소속 인부들은 3, 40명 되었는데, 어머니와 나는 그 인부들 밥을 해주었습니다. 우토로에서 둘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일하는 사람들 중 반은 독신이었고 반은 가족이 있었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하루에 3엔 정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함바 한 채에 앞뒤로 6칸씩 그러니까 12칸의 방이 있었습니다. 방은 3평에 그 절반만한 크기의 토간이 있었습니다. 토간에 적토로 아궁이를 만들고 부엌을 꾸렸었습니다. 가족이 몇 명이 있든지 방은 3평짜리 하나만 할당되었습니다. 추우니까 거적을 깔고 잤습니다. 지붕은 처음에는 삼목껍질이었습니다. 천정은 따로 없었고 나무껍질 지붕안쪽이 바로 천정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비가 새지 않았었는데 수개월이 지나자 삼목껍질이 날아가 버려 별을 보면서 지냈습니다.

비가 올 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비가 새서 대야로 받고 뭐로 받고, 아이들 머리에 떨어지지 않도록 아이를 꼭 안고 이쪽에 누웠다가 저쪽에 누웠다가…… 겨울은 말할 수 없이 추웠습니다. 눈보라가 들이쳤습니다. 판자를 기우고 기워서 만들었으니 바람이 숭숭 들어왔습니다. 공사현장에 가서 시멘트를 받아서 바르고 신문지가 있으면 그걸로 좀 가리고 했습니다. 여름은 또 말도 못 하게 더웠습니다. 창문도 없고 공기가 통하는 곳은 입구뿐이니까 함바 안에서는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모두 밤마다 좀 선선해질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내일 일찍 일 나가야 하는데, 나가야 하는데 하면서도 너무 더워 참기 어려우니까 12시가 넘어서까지 밖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중간 생략)

함바는 집이 아닙니다. 사람 사는 집이 아닙니다. 조선인을 인간으로서 취급하지 않았던 겁니다. 우토로에 오기 전에는 굉장히 좋은 조건이라고 선전했지만, 와보니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래도 불만을 말할 처지는 못 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인 다 그런 취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군대로 끌고 가지 않겠다는 약속만은 지켜졌습니다.

우토로의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함바집은 부분 해체 후 평화기념관 옆으로 이전할 예정인데요. 함바 해체식에서는 통국사 주지 최무애(崔無愛) 스님의 독경과 덕담을 통해 함바의 생활을 시작으로 우토로 마을을 이루고, 지켜낸 1세대에 대한 위안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소중한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우토로 함바 해체식 단체사진

우토로 함바 해체식 단체사진

오랜시간 마음을 더해주신 한일 양국 시민들의 노력 덕분에 우토로의 역사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변함없이 관심과 응원을 전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우토로 소식, 꾸준히 전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사진, 자료제공 : 지구촌동포연대

댓글 4

  1. 신은솔

    고등학생 때 우토로 이야기를 처음 접했었어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고생하셔서 우토로의 역사를 지켜내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앞으로 우토로와 관련된 활동들 응원하고, 함께 지지하겠습니다.

    • 아름다운재단

      안녕하세요, 아름다운재단입니다. 우토로의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 관심가져주신 덕분에 가능한 변화였습니다. 우토로 마을의 미래도 꾸준히 함께 지켜봐주세요. 고맙습니다.

  2. 김충태

    역사란 기억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것의 모든것을 역사라 하겠죠. 역사를 기억하고 의미를 잊지않아야 오늘을 지혜롭게 내일을 평화롭게 살아갈 힘이 생길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연대가 역사를 지켰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아름다운재단

      안녕하세요, 아름다운재단입니다. 우토로의 역사를 기억해주시고, 함께 연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겨주신 말씀 잊지 않고, 변화를 만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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