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레터 vol.13에 게재된 에이팟코리아 이동환 이사와의 인터뷰입니다. 산불 긴급구호 현장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또 72시간의 골든타임에서 중요한건 무엇인지 전해드릴게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하고 있는 사업 내용도 쏙쏙 담았습니다. 들어볼까요?

삼척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아직 봄을 찾지 못한 산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새까맣게 타버린 나무들과 밑동이 타서 갈색빛으로 변한 나무들이 줄지어 나타났죠. 모든 게 타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보이는 초록 나무들을 지켜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방화선을 만들기 위해 뛰어든 소방관과 군인, 그리고 복구 현장에서 묵묵히 필요한 것들을 살핀 사람들이었죠.

차창 밖으로도 보이는 산불 흔적, 잎이 노랗게 변한 나무는 모두 고사한 상태

차창 밖으로도 보이는 산불 흔적, 잎이 노랗게 변한 나무는 모두 고사한 상태

재난현장에서 신속하게 대응 플랫폼을 구축하고, 긴급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에이팟코리아의 이동환 이사도 산불 발생 직후 바로 현장을 찾았습니다. 불길을 잡는 것도, 피해를 수습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기에 먹고, 마시고, 쉴 수 있는 것들을 당장 찾고, 준비해야했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묻고, 재난대응리더를 찾아 이야기하고, 마트를 향해 뛰고, 지역마다 연락해 필요한 물품을 구하며 눈코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죠.

서서히 잦아든 불과 함께 현장의 분주함도 사라졌지만 끝은 아니었습니다. 산불 발생 직후 대피했던 주민들이 이제서야 다 타버린 집을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일상지원과 회복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죠. 현장에 남아 지원을 이어가고 있는 이동환 이사의 이야기를, 울진에서 직접 듣고 왔습니다.

에이팟코리아 이동환 이사

에이팟코리아 이동환 이사

이동환 이사와 인터뷰를 진행한 곳은 한 주차장이었습니다. 산불 발생 직후 소방대원과 군인들, 의용소방대원*들이 모여있던 본부였죠. 이제는 차량들로 가득차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겹쳐보이는 듯했습니다.
*의용소방대 : 평시에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특별한 화재의 경우에만 출동, 울진 화재현장에서는 소방대원을 지원하는 일을 도맡아 합니다.

소방본부가 있던 주차장이자 인터뷰 장소

소방본부가 있던 주차장이자 인터뷰 장소

울진 산불 진압을 위해 차려진 소방본부 ⓒ에이팟코리아

울진 산불 진압을 위해 차려진 소방본부 ⓒ에이팟코리아


“도착했더니 소방본부가 차려져 있고, 의용 소방대원들이 계시더라고요. 바로 뭐하고 계신지, 또 필요한게 없는지 물었죠. 전날 저녁부터 소방대원들에게 먹거리를 나눠드렸는데 다 떨어졌고 점심부터는 물품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마트로 가서 두유, 컵라면, 물같은 기본적인 것들부터 사기 시작했죠. 일반 마스크가 아닌 방진 마스크도 구입했고요.”

 에이팟코리아가 구매한 식량 배분현장 ⓒ에이팟코리아

에이팟코리아가 구매한 식량 배분현장 ⓒ에이팟코리아

군인들을 위해 준비한 푸드트럭

군인들을 위해 준비한 푸드트럭

먹거리를 배분하고 나니 몰려온 건 추위였습니다. 당장 난로가 없어서 새벽을 보낼 엄두가 나지 않았죠.

“긴급구호는 72시간이 중요해요. 대피소든, 본부든 상황이 여의치않으니 반드시 사각지대가 생깁니다. 저녁부터 너무 추웠는데 난로조차 없었거든요. 편의점 가서 있는 핫팩을 모두 사 왔고, 따뜻한 음료를 사서 나눠드렸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가까운 주유소에 난로가 있으면 돈을 드리고 빌리고 싶다고 연락드렸는데, 알아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죠. 그런데 오만군데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난로 필요하시다면서요?’.”


맛집 단톡방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따스한 온기

주유소에서 전화를 받았던 시민이 울진 맛집 단톡방에 소식을 올리면서 삽시간에 물품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코앞에서 생긴 재난, 그리고 이웃들과 우리가 마주한 재난 앞에서 손 놓고 있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지역에서 재난이 났을 때 당장 어디에 기부해야 할지, 또 어디로 가야할지 애매한데, 지역 시민들에게 미션이 생긴거죠. 난로도 보내주시고, 집에 있는 핫팩을 가져다주기 시작했어요. 소방본부라는게 알려지면서 각종 택배도 도착했죠. 커뮤니티 안에서 뭐가 필요한지 확인하고, 겹치지 않게 서로 조정하면서 물건을 보내는거에요.”

소방쉼터 내에 설치한 삿갓난로 ⓒ에이팟코리아

소방쉼터 내에 설치한 삿갓난로 ⓒ에이팟코리아

시민들의 도움으로 며칠은 버텼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대전의 한 업체에 요청해 삿갓난로를 대여했고, 소방텐트에 배치해 따뜻하게 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습니다.

“현장에 있다보면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저희가 대여 비용이든 구매 비용이든 당연히 정확하게 지불을 합니다. 문화로 정착시키려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물류비를 안 받거나, 3일 빌리는데 반나절이나 하루를 더 대여하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해요.”

긴급 재난에 필요한 건 메인 스피커, 그리고 상황판

이동환 이사는 긴급 구호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건 상황 공유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울진 산불 현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으로 남은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현장에서도 정보를 정확하게 전하는 메인 스피커가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정확한 내용이 전달되기 힘들었죠. 2019년 고성 산불 당시 ‘옷이 없다’는 이재민의 발언이 기사화돼 헌 옷이 전국에서 들어오는 상황이 발생했는데요. 한 번에 많은 지원이 들어오다 보니 둘째날부터는 큰 필요가 없었다고 해요. 기자와 이재민에게 각각 현장 상황을 명확하게 전달해줄 공식적인 스피커가 있다면 혼선도 줄어들고 빠른 대처가 가능할 겁니다.”

대피소는 하루 단위로 사람이 바뀌는 만큼 다음 담당자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도록 상황판 등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합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 공식 브리핑을 통해 우리가 경험한 것이기도 하죠. 공식적인 전달자를 통해 정보를 전달받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해소하고, 어떤 대응책을 세우고 있는지 이해해본 경험이 앞으로의 재난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할 테니까요..

“일상에서 재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이동환 이사가 현장의 코디네이터가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2016년 피스윈즈재팬이라는 일본의 국제구호단체에서 재난 현장 기록자로 활동을 시작했고, 자매단체인 에이팟코리아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2019년 고성 산불, 2020년 코로나를 마주하며 한국에서 재난 현장을 누비게 되었습니다.

“성향과 맞는 일 같아요. 영화를 전공했거든요. 영화 현장에서도 감독이 많은 결정을 하고 분주하게 돌아가요. 그런 현장에 익숙해서인지 지금의 일이 어렵지 않았어요. 사람 관찰하는걸 좋아하고 성격이 섬세한 편이기도 하고요. 일본에서 활동하다 한국에 오니 정서에 맞춰 더 잘 보이는 것도 있어요. 대피소에 가면 뭐가 필요한지 보이더라구요. 이번 대피소에서도 어르신들이 휴대폰 충전하려고 벽에 붙어계시는게 먼저 보이더라고요. 멀티탭을 다 연결해드렸으면 좋을텐데 싶더라고요.”

현장에 있다보니 삶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고 합니다. 2018년 일본 홋카이도 지진으로 38명이 한자리에서 매몰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구조견과 함께 현장에 있던 그는 언제든 ‘내일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통 재난하면 이런 큰 일을 상상하지만, 어디든 삶을 요동치게 하는 재난들은 있어요. 일상에서 겪고 있기도 하고, 앞으로 겪을 수도 있으니까요. 횡단보도에서 한 발 차이로 사고가 나는 것처럼요. 언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현실에 더욱 충실하게 돼요. 약속도 잘 지키려고 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하고요.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더라고요.”

지역의 인력을 키우는 것도 장기적 관점의 재난방재사업입니다.

이동환 이사와 함께 울진의 한 마을에 방문해보니 집은 터만 남아있었고, 곳곳에는 임시주택이 들어온 상태였습니다.

임시주택이 들어선 마을 ⓒ에이팟코리아

임시주택이 들어선 마을 ⓒ에이팟코리아

“아름다운재단 지원사업으로 TV를 놓을수 있는 서랍장이랑 여름이불 지원을 계획하고 있어요. 이후에는 다른 단체와의 일상지원 사업으로 심리치료 지원사업을 진행하려 해요. 전문가와 함께 놀이치료, 원예치료처럼 모여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기획하고 있고요. 혹시 좀 더 깊은 상담이 필요한 분들은 따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실제 주거지로 돌아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만큼 장기적인 지원과 복구가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동환 이사는 그래서 조금 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합니다. 지역 청년들이 주민들과 오래도록 관계를 맺으면서 지원사업을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직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입니다.

“단체나 외부에서 단기 사업만 하고 떠나게 되면 어르신들의 마음에 오히려 헛헛한 마음만 남기는 경우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재난 현장에서 너무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어요. 가장 좋은 것은 지원과 복구 사업들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지역의 사람들이 있는 거죠. 지역 청년들과 교류할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한 이유이고, 멀리보면 그런 사람들을 양성하고, 키우는 것도 재난방재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동환 이사는 주민들과 재난을 이겨내며 ‘좀 더 힘을 내야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아쉬운 점, 보완할 점이 많이 보일 수록 본인이 할 수 있는 일 또한 많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될 재난에서, 발 벗고 뛸 이동환 이사와 같은 전문가가 많아진다면, 그리고 지역 청년들이 더 늘어난다면 우리가 목격한 빈 틈들이 조금씩 메워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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