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산업재해 이후의 치료와 생계를 돕기 위해 산재노동자 176명을 지원했습니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에 걸린 뒤 어떤 일을 겪었을까요? 2021년 12월, 176명의 노동자 한 분 한 분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 중 연락이 닿은 총 61명에게 생계비 지원 이후의 이야기를 전화인터뷰를 통해 들어봤습니다. 

아주 예전에 본 광고 하나가 기억납니다. 일하다 종이에 손이 베인 사무원이 “이거 산재야”라고 말하며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광고였습니다.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산재노동자 전화 인터뷰를 하게 되었을 때 제가 생각했던 ‘산재’에 대한 생각은 딱 이 정도였습니다. 미리 준비된 질문지에는 요즘에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생활에 생긴 변화는 어떤 것인지와 같은 근황을 묻는 내용부터, 어떤 일을 하다가 어디를 다쳤는지, 산재 보험 신청할 때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와 같은 사고 당시에 관한 질문, 마지막으로 산재 보험이 변했으면 하는 점, 생활 지원금이 도움이 됐는지 등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2021년 산재노동자 생계비 지원 포스터

질문지를 받아 들고 앞으로 인터뷰하게 될 분들의 리스트를 살펴보았습니다. 직업, 나이, 성별 모두 다양했습니다. 저를 당황하게 한 건 부상, 질병의 정도였습니다. 인대 파열, 복합 골절, 절단, 마비, 암, 우울증 등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심각한 것이었기에 걱정이 됐습니다. 사고 당시에 대해 물어보는 건 괜찮은 건지부터,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근황에 대해 물어야 할지, 왜 전화인터뷰를 한다고 했지 까지 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목록 가장 위에 있는 분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 인터뷰를 통해 산재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산재노동자가 겪은 멀고 먼 산재보상의 길

전화인터뷰를 하며 산재노동자가 겪는 다양한 산재보상 사각지대 문제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일 하다 다쳤다는 것을 증명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산재보험을 신청하기까지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가 신청 절차입니다. 산재 당사자가 직접 피해 상황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입증에 필요한 서류를 꾸려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해야 했습니다. 필요한 서류를 한 번에 제출해서 끝나면 좋으련만 꼭 여러 번 방문해야 했습니다.


한 인터뷰이의 말을 빌리자면 ‘일부러 절차를 어렵게 해서 신청 못 하게 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험난한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한글을 잘 모르시거나 문서를 챙기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신청 할 엄두를 못 내는 경우도 더러 있었고, 비용을 내고 산재보험 신청 대리인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지원 받는 것이 마땅한 산재보험을 받는 것인데 신청을 못 하는 분이 있고, 때로는 신청 대리인 비용까지 내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했습니다.

일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산재보험

사실 절차 자체만 놓고 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일하다 다쳤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피해 당사자는 많은 증빙자료를 스스로 준비해야 합니다. 때로는 부상 전 모습이 담긴 엑스레이 사진이 필요하거나, 회사 내부의 cctv 녹화기록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이를 구하기 위해 회사와 갈등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산재 신청을 하겠다고 하는 순간부터 회사와 싸워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애초에 회사와 불편한 관계가 되고 싶지 않아 산재 신청을 포기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산재를 신청하고 보험금 지급까지 완료되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 산재 후유증은 몸에 깊게 새겨져 평생을 함께 해야 합니다. 후유증을 안고 다시 업무에 복귀하더라도 함께 일 하는 동료들과 회사의 시선이 따가워 마음의 병을 얻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산재 후유증은 오래 남는 경우가 많다

서럽고 억울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준 산재노동자 생계비 지원

산재 당시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생계비 지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모든 분이 입을 모아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하고 잘 썼다.”, “큰 돈은 아니지만 아주 유용하게 썼다. 감사하다.” 란 말을 연신 들으니 저는 인터뷰를 할 뿐인데 괜히 뿌듯하기까지 했습니다. 적은 금액의 생계비 지원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약간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인터뷰 후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인터뷰에 기꺼이 응해주신 분들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해서 인터뷰에 응해요.”, “산재보험이 개선돼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지원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많은 분들이 산재 후유증과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소송 등의 절차로 힘든 상황임에도 지원받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혹은 또 다른 산재노동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성심성의껏 인터뷰에 응해 주셨습니다. 이 글을 빌어 인터뷰에 응해주신 61명의 노동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산재노동자분들의 마음이 모여 산재보상 사각지대 걱정 없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 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에서 나온 답변을 모아 만든 워드클라우드

글. 배경진(서교인문사회연구실 수습회원) ㅣ 이미지. 산재보상사각지대해소지원사업 성과보고서(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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