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은 2019년부터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으로 일을 하다 다치거나 병에 걸렸지만, 사회보장제도의 바깥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연구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노력을 진행했습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을 이어 온 노력과 결실 이야기를 성과보고서 소개와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일하다 다친 사람들과 산재보상제도
2,080명, 122,713명. 2021년 한 해 동안 일을 하다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와 다치거나 병에 걸린 사람들의 숫자입니다. 모두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하지만, 우리 주변 누군가는 일하다 다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일하다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당장 치료비 부담뿐만 아니라 소득이 끊기는 위험에 직면합니다. 일하다 다치는 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그 사람들이 적절한 치료와 보상을 받아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을 하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보험으로써 산재보험제도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산재보상체계 속에서 치료받고, 보상받는 것은 아닙니다. 한 해 100만 명의 일 관련 부상과 질병이 발생하지만, 그중 많은 케이스가 여러 이유로 배제됩니다.
‘산재보험 더 쉬워져야 더 많이 품는다’, 지난 3년의 작은 변화
2019년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은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을 통해 가장 먼저 ‘일하다 다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일하다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산재보험이나 다른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만약 받지 못한다면 왜 그럴까? 사회보장제도의 수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을까? 등 산재보상 사각지대에 처한 사람들이 누구이고, 어떤 도움과 개선이 필요한지 산업재해 노동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 이야기로부터 사회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산재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 3년간 총 176명에게 생계비를 지원했습니다. 특히 산재보험의 제도 밖에 있는 농어업 노동자, 돌봄노동자, 이동노동자 그리고 요식업 노동자와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지원이 갈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생계비 지원을 받은 한 분의 말처럼 이는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함께 ‘인정’하고, 나누는 과정이었습니다.
생계비 지원을 통해 들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작업도 함께했습니다. 변화는 몇 명의 전문가와 정치인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민이 해당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바꿔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산재보상 사각지대’에서 겪는 산재노동자들의 어려움과 현재 산재보험 및 산재보상체계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일하고 있는 사람을 비롯해 일할 예정이거나 일하는 사람을 가족으로 둔 우리 사회 구성원에게 소식을 알릴 수 있도록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언론을 통해 영상, 웹툰, 매거진, 기획보도,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이 해당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유튜브 채널 씨리얼, 인스타그램 웹툰 계정 삼우실, 오세이프 등 다양한 매체들과 협업하기도 했습니다.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사회가 방치한 안전망을 개인이 떠안은 이 끝나지 않는 굴레…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산재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유튜브 영상에 달린 위 댓글처럼 산재보상 사각지대에 처한 산재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이 목소리를 바탕으로 산재보상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시민들의 더 큰 공감대를 이끌어 변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산재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가 180만 회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연구와 정책 개선안 마련도 계속해왔습니다. 2019년에는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 및 형평성 강화를 위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20명의 산재노동자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선안을 마련하였고, 2020년에는 특히 산재보험의 바깥에 있는 어업, 농업, 돌봄, 이동노동자의 현황과 개선안을 담은 〈산재보험의 문밖에 서있는 사람들 : 포용적 산재보험을 위한 과제〉 연구보고서, 21년에는 20년에 이어 산재보험의 가장 바깥에 있는 노동자들의 현황과 구체적인 개선안을 담은 이슈페이퍼와 그간의 연구성과물을 모은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은 생계비 지원, 콘텐츠 제작, 연구 등 지난 3년 동안 그간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산재노동자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변화를 위한 시민들의 공감과 해결을 위한 대안들을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결실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동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못하게 악용되었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업재해보상보험 적용제외 신청 제도’가 폐지되었고, 최근에는 다양한 곳에서 일감을 받아 일하는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을 막았던 ‘전속성 기준(한 사업장에 속한 정도로, 배달업의 경우 한 플랫폼에서 월 93시간 이상의 노동시간 또는 월 115만 원 이상의 소득을 충족해야 함)이 폐지되었습니다. 산재보험 접근성이 높아져 산재보험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2021년 한 해에만 2만 명 넘게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가 당당하게 하나의 과제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산재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시민들의 관심이 있다면, 산재보상사각지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일하다 다쳐도 일상은 무너지지 않도록”
2019년, 처음 지원사업을 시작할 때 누군가는 ‘몇 십 명의 산재노동자에게 생계비를 지원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도출할 수 없다’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크고 작은 변화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하다 다친 고통을 혼자서 부담하고 있는 노동자는 여전히 많습니다. 산재노동자가 다친 이유를 ‘노동자 개인의 불찰’로 짐작하거나, 절단되거나 뼈가 부러지는 등의 ‘중대재해’만 ‘산업재해’로 생각하기도 하고, 건설업 같은 특정 업종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산재노동자들과 함께 해왔던 여정은 일하다 병에 걸리거나 다친 노동자들의 문제를 우리가 같이 해결할 사회문제로 확산시키고, 그들이 겪는 위험과 고통을 우리가 함께 분담하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었습니다. 모든 산재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건 어렵지만, 200여 명의 노동자가 겪는 구체적인 문제를 응시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을 ‘산재보상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시작점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산재보험의 목적은 일터의 위험을 사회 전체가 분담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한 판결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커다란 변화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산업재해를 겪는 노동자들의 고통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 위험과 고통을 함께 분담하고자 노력한다면 변화는 언제든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번 지원사업을 통해 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는 그 믿음이 옳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 사람이 산재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노동건강연대_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_성과보고서(2019-2021)
글. 사진 ㅣ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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