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마라톤의 구조를 찾아보다가, 국내 마라톤의 숙제까지 만났다?
며칠 전 동료가 물었습니다. “요즘 러닝 기부 행사 많잖아요. 그거 대체 어떻게 기부가 되는 구조예요? 진짜 몰라서 그래요.”
러닝 7년차, 여행을 가면 러닝코스부터 찾고 퇴근런을 즐기는 저도 정확히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찾아보니 생각보다 쓸 말이 많아졌습니다. 구조를 알아보러 시작한 일이 국내 마라톤이 지금 마주한 숙제까지 이어졌거든요. 순서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주말 아침 한강 다리와 도심 광장은 러너들의 것이 됐습니다. 인기 대회는 신청 개시 몇 분 만에 마감되고, 이제는 추첨제(래플)가 기본입니다. 그 옆에서 커지는 흐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러닝 참가비 등을 기부하는 ‘기부마라톤’입니다.
올해 8월 열린 기부 마라톤 ‘815런’은 26억 482만 원을 모았습니다. 2020년 첫 대회부터 7년간 누적 모금액은 100억 원을 넘겼고, 참가자는 약 7만 명, 함께한 기업은 385곳입니다. 모인 돈은 독립유공자 후손 가정의 집을 고치고 새로 짓는 데 쓰입니다. 지금까지 23가구에 새 집이 전달됐습니다.
반가운 소식입니다. 다만 이런 방식의 기부는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뤄지고 있습니다.
해외 메이저 러닝 대회들의 공통참여 옵션 ‘기부’
세계 7대 메이저 마라톤(런던·보스턴·시카고·뉴욕·베를린·시드니·도쿄)에는 공통된 참가 경로가 있습니다. 기록도, 추첨도 아닌 ‘채리티 러너(charity runner)’ 제도입니다. 동료의 질문에 대한 답이 여기 있었습니다. 채리티 러너 3단계를 소개해봅니다.

첫째, 대회 조직위가 비영리단체를 공식 파트너로 선정하고 참가권을 배정합니다.
런던 마라톤은 ‘골든본드·실버본드’라는 이름으로 비영리단체에 참가권을 4년 단위로 배정합니다. 골든본드 하나당 참가권 4장, 실버본드는 2장입니다. 지금은 2029년까지 배정이 모두 끝나 신규 신청조차 받지 못합니다. 보스턴 마라톤은 조직위(B.A.A.)가 비영리단체에 ‘초청 참가권’을 주고, 단체가 러너를 모집합니다. 선정 기준에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활동인지’, ‘코스가 지나는 지역에 기여하는지’ 명시돼 있습니다.
둘째, 러너가 기부하고 싶은 단체를 직접 고릅니다.
마라톤은 일반 추첨을 통해서도 신청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신청자가 워낙 많아 당첨될 확률이 낮습니다. 2026년 런던 마라톤은 113만 3,813명이 신청했고, 완주자는 5만 6,640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추첨에 떨어진 사람에게는 채리티 러너는 확실한 대안이 됩니다. (처음부터 추첨에 응모하지 않고 채리티 러너로 바로 신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회 홈페이지에는 조직위가 1번 단계에서 참가권을 배정한 파트너 단체 목록이 공개됩니다. 시카고는 217개, 뉴욕은 1,000개 이상, 보스턴은 193개, 베를린은 100개 이상, 시드니는 50개 이상, 도쿄는 37개 단체의 39개 사업이 올라와 있습니다. 런던은 약 1,900개 이상의 단체가 참여 중입니다. 러너는 이 목록에서 관심 있는 활동을 골라 그 단체에 신청하고, 단체가 러너를 선발해 배정받은 참가권 한 장을 내줍니다.
셋째, 러너가 최소 기부·모금액을 약정합니다.
시카고 마라톤은 채리티 러너에게 최소 2,200달러(약 300만 원) 모금을 요구합니다. 도쿄 마라톤은 10만 엔(약 90만 원) 이상 기부가 조건이고, 기업 참가는 1인당 20만 엔입니다. 런던은 단체마다 목표액을 정하고 러너 개인에게 모금 페이지를 만들어 줍니다. 친구와 동료, 가족이 그 페이지를 통해 기부합니다.
이 세 번째 단계에서 저는 잠깐 멈췄습니다. 러너 한 명이 기부자 수십 명을 데려오는 구조입니다. 모금관련 실무자로서 부러운 설계였습니다

해외 마라톤대회 모금 규모 및 참여 단체
런던 마라톤은 2025년 하루에 8,730만 파운드를 모아 ‘세계 최대 규모의 1일 모금 행사’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보스턴은 채리티 러너가 전체 참가자의 약 10%를 차지합니다.

이 대회들이 도시의 축제로 남은 이유
숫자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회 기간 도시에는 관광객이 몰리고 숙박과 식당, 상점의 매출이 오릅니다. 여기에 모인 기부금이 그 도시의 병원과 학교, 지역 단체로 흘러갑니다. 보스턴 마라톤은 ‘이 코스가 지나는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단체’를 우선 선정하는 의무 조항을 통해 지역사회가 함께 할 수 있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스턴 마라톤과 같이 해외 메이저 마라톤 대회는 경제적 이익과 공익적 성과가 같은 도시 안에서 순환하는 노력을 합니다. 시민이 며칠의 불편을 감수하는 이유가 여기서 생깁니다. 해외 메이저 마라톤이 러너만의 행사가 아니라 도시의 연중 축제로 정착한 배경입니다.
국내 마라톤 방식은 어떨까?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해외 메이저와 같은 방식, 즉 비영리단체가 참가권을 배정받아 기부자에게 제공하고 참가자가 기부처를 직접 지정하는 대회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서울마라톤, JTBC 서울마라톤, 춘천마라톤, 경주·대구국제마라톤, 서울달리기대회 모두 해당 제도를 운영하지 않습니다.
대신 국내에서는 다른 방식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회 자체가 모금 목적인 자선 러닝입니다. 815런(한국해비타트)과 마인드마라톤은 참가비 전액을 기부합니다. 마인드마라톤은 올해 21개 단체에 5억 8,000만 원을 전달했습니다. ‘SAVE RACE’는 참가비 5만 원 전액을 참가자 명의로 지정된 비영리단체에 기부했습니다. 소아암 환자를 지원하는 서울시민마라톤은 누적 10억 3,500만 원을 모았습니다.
기업이 기록에 비례해 기부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카카오페이 LONG RUN’은 참가자들의 누적 걸음이 목표에 닿을 때마다 기업이 기부했습니다. 최종 225억 걸음, 기부금 20억 원, 온라인 참가자 26만 448명이었습니다.
모두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다만 해외 방식과 다른 점이 두 가지 눈에 띕니다. 참가자가 기부처를 고를 수 없고, 참가자 개인이 주변에 모금을 요청하는 구조가 없습니다. 기부의 주체가 대회와 기업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마라톤 유행이 불러온 다른 문제들, 대안은 없을까?
기분 좋게 마무리하려던 조사였는데, 짚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을 만났습니다. 서울의 마라톤 행사는 매년 늘고 있습니다. (2022년 72건, 2023년 100건, 2024년 120건, 2025년 154건, 2026년 176건 예장) 광역 교통통제는 같은 기간 7건에서 28건으로 네 배가 됐습니다. 동원되는 교통경찰은 1,461명에서 평균 2,712명으로 늘었습니다. 민원은 2023년 498건, 2024년 461건, 2025년에는 9월까지만 350건을 넘겼습니다.

한 언론 보도에서 남대문시장 상인은 “마라톤이 있는 날이면 손님이 훨씬 적다”고 말했습니다. 교통통제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출발 시간을 오전 7시 30분 이전으로 당기고 장소별 인원을 제한하고 있지만, 시가 주최·지원하는 대회에만 적용되는 조치입니다.
이 대목에서 앞서 본 해외 사례가 다시 읽혔습니다. 해외 메이저 대회가 시민의 지지를 얻은 것은 규모가 커서가 아니었습니다. 대회가 지역에 무엇을 남기는지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상인의 매출로, 지역 단체의 지원사업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먼저 할 수 있을까?
기부가 붙는다고 불편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방향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회를 여는 쪽에는 개최 횟수와 코스만큼이나 ‘이 대회가 지역에 무엇을 남기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코스가 지나는 지역의 단체와 상권을 대회 설계에 포함하는 방식입니다.

비영리단체에게는 ‘채리티 러너’ 제도가 열리지 않은 영역입니다. 추첨에서 떨어진 수십만 명의 달리고 싶은 마음은 이미 존재합니다. 대회와 단체가 손을 잡으면 그 마음이 갈 곳이 생깁니다. 저는 여기에 우리가 해볼 일이 있다고 봅니다.
달리는 사람에게도 선택지가 있습니다. 완주 기록 옆에 기부 한 줄을 남기는 일, 코스가 지나는 동네의 가게에 들르는 일. 작지만 대회를 러너만의 것으로 두지 않는 방법입니다.
동료의 질문에서 시작한 조사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러닝 붐은 건강한 사람들이 만든 흐름입니다. 그 건강함이 개인의 기록에서 멈추지 않고 도시와 이웃에게로 이어질 때, 마라톤은 비로소 모두의 축제가 됩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첫 걸음을 어디에 둘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이 지향하는 모두를 위한 변화, 변화를 만드는 연결’은 달리는 길에서도 가능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글 1%나눔팀 최율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