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님은 팀장에서 다시 매니저로 일하는 거 괜찮으세요?”
조직에서 동료가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이라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에서는 직책자가 다시 실무자가 되기도 하고, 실무자가 직책자가 되기도 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직책을 맡으면 승진이니 좋은 것이고, 직책을 내려놓으면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직책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재단의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설립 이래, 수평적 문화를 지향해왔고, 실무자-팀장-국장으로 이어지는 구조 또한 단순합니다. 기본적으로 직책은 그 역할을 수행할 역량과 준비가 된 사람이 맡습니다. 그 위에서 조직의 필요에 따라 새로운 중간관리자의 경험과 성장을 위해 직책을 맡기기도 하고, 안식월이나 업무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이 역할을 이어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직책자 스스로 다시 실무에 집중하기 위해 역할을 바꾸기도 합니다. 저 역시 직책을 맡아 일한 뒤 다시 실무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료의 질문을 계기로 처음으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직책이 바뀌는 조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함께 일해야 할까?

역할이 바뀌면 관계도 다시 만들어진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의 「When a Coworker You Don’t Like Becomes Your Boss」에서는 동료였던 사람이 자신의 상사가 되었을 때 생기는 관계의 변화를 다루면서, 새로운 상황에서 감정과 사실을 구분하고 변화된 관계를 다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재단처럼 역할의 이동이 비교적 자연스러운 곳에서도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입니다. 직책이 바뀌었다고 사람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지금 맡고 있는 책임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직책자가 되면 동료였던 실무자의 업무를 관리, 감독, 평가, 판단해야 할 의무가 생깁니다. 책임 범위 또한 넓어지죠. 그럼에도 서로 업무를 하며 쌓아온 기억과 관계는 그대로이기에, 예전의 관계를 기준으로 서로를 대하게 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관계의 수직도나 수평도가 아니라 서로 나누는 의견의 기준과 근거를 맞추는 것입니다. “누가 더 오래 일했는가”, “누가 예전에 어떤 직책이었는가”가 아니라 “지금 이 업무와 조직을 위해 무엇이 더 좋은가”를 염두하고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죠.
수평적이라는 것은 책임이 모호하다는 뜻이 아니다
비영리조직의 리더십을 다룬 스탠포드소셜이노베이션리뷰 의 「A Reality Check for Nonprofit Co-Leadership」글에서도 리더십을 나누는 조직일수록 역할과 책임, 의사결정 방식을 분명하게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수평적일 수 있지만, 업무의 책임은 오히려 더욱 분명해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에서는 누가 어떤 책임을 맡고 있는가?”가 중요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역할 중심의 조직 운영방식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홀라크러시(Holacracy)라는 조직 체계는 직위보다 역할을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하고, 각 역할의 목적과 책임, 권한의 범위를 구체화합니다. 상황에 따라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을 수도 있고, 조직의 필요에 따라 역할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직책 역시 한 사람이 조직 안에서 획득하고 계속 보유하는 지위라기보다, “어떤 시기에 누군가에게 맡겨진 역할과 책임”에 가까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직책자가 되었을 때는 맡겨진 책임을 충분히 수행하고, 다시 실무자가 되었을 때는 새로운 역할에서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발휘하는 것,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직책이나 연차보다 지금 서로가 맡고 있는 역할과 책임을 존중하는 것.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직책이 바뀌는 조직이라면 이런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누가 어떤 직책을 맡았는지를 중요하게 보기보다, 지금 맡은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서로 그것을 존중하는 문화. 역할이 바뀌더라도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서로 신뢰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문화가 개인의 태도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역할이 바뀔 때마다 책임과 권한의 범위, 의사결정 방식, 역할 간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새로운 역할을 맡은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의 체계와 구조도 함께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역할은 유연하게 바뀔 수 있지만, 그 역할에 따르는 책임과 권한까지 모호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조직의 체계와 문화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일하는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일 것입니다.
앞으로 조직에서 일하는 동안 저 역시 지금과 다른 역할과 업무를 맡게 될 수 있습니다. 직책을 맡을 때도, 다시 실무자로 일할 때도 그때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보다 “지금 나에게 맡겨진 역할은 무엇이며, 그 역할에 따르는 책임을 어떻게 다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그때그때 주어진 역할의 의미와 책임을 살피며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참고자료>
Kelli Thompson (2024), When a Coworker You Don’t Like Becomes Your Boss, Harvard Business Review.
Ashley Lanfer & Kelly Mangiardi (2025), A Reality Check for Nonprofit Co-Leadership, 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
Holacracy, Holacracy Constitution v5.0 – Organizational Structure: Role Definition. https://www.holacracy.org/constitution/5-0/?utm_source=chatgpt.com
글 연구사업팀 이영주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