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이 뾰족함이 되는 일 – 롱블랙 컨퍼런스를 통해 바라본 재단

모금기획팀 박유진 매니저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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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롱블랙 컨퍼런스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롱블랙은 브랜드와 사람의 서사를 파고드는 콘텐츠 미디어다. 매일 하나의 브랜드, 하나의 인물을 골라 “이들은 왜 이 일을 이렇게까지 했을까”를 집요하게 캐묻는다. 그 롱블랙이 일 년에 한 번, 지면 밖으로 나와 여는 자리가 롱블랙 컨퍼런스다. 코엑스에서 열린 이번 컨퍼런스의 주제는 “의미와 이유”였다. ‘Why가 가장 중요해진 시대’라는 문장이 행사 소개에 붙어 있었다.

이틀간 무대에 오른 열여덟 명의 연사를 관통하는 배경에는 하나의 불안이 깔려 있었다. AI가 콘텐츠를, 디자인을, 심지어 기획까지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시대에 인간의 일이 여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어떤 연사는 이제는 조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정체성으로 움직이는 개인이 기회를 먼저 붙잡는다고 말했다. 기술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그 기술로 무엇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답은 결국 사람 각자의 안에서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무엇이든 빠르게 흉내 낼 수 있는 시대에, 흉내 낼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을 찾아가는 자리가 이번 컨퍼런스였다.

그중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세션은 마르디 메크르디 박화목 대표의 “진정성이 뾰족함이 되는 순간”이었다. 제목부터 눈을 사로잡았다. 진정성은 보통 둥글고 말랑한 단어로 쓰인다. 착한 마음, 좋은 의도, 따뜻한 태도. 그런데 그는 진정성을 정반대의 언어로 설명했다.

뾰족함. 무언가를 뚫고 들어가는 힘.

2010년 첫 창업의 실패를 끝까지 복기한 끝에 다시 시작한 것이 지금의 마르디 메크르디였고, 그가 강조한 것은 자기다움을 끝까지 밀어붙였을 때 비로소 시장에서 구별되는 뾰족함이 생긴다는 사실이었다. 인상 깊었던 무인양품의 오오니시 카츠시, 밍글스의 강민구 쉐프, 스누피가든과 워터밤을 만든 아키텍츠의 임준영, 언어는 저마다 달랐지만 결국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컨퍼런스가 끝난 후 계속 떠오른 곳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재단이었다.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재단은 진정성이 넘친다고 생각한다. 사업을 설계할 때도, 지원을 결정할 때도, 행사 하나 기부 캠페인 하나를 만들 때도 진심을 다하는 동료들을 매일 본다. 다만 그 진심이 밖에서도 또렷하게 읽히고 있는지 자문해 보면, 아직 우리에게 남은 숙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열여덟 어른’ 캠페인이 화제가 되었을 때, 기업 담당자들에게 종종 듣던 말이 떠오른다. ‘자립준비청년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단체인 줄 알았다. 자립준비청년 지원을 연결하는 곳이라 생각하고 연락했다’ 반가운 오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보통 어떤 지원 대상이나 사업 하나를 보고 단체를 기억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한 순간이기도 했다. 

아름다운재단은 특정 대상에 묶여 있지 않다. 모든 대상과 사업에 열려 있다는 것이 재단의 강점이지만, 때로는 그 ‘열려있음’이 오히려 선명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기업이 협업을 결정할 때는 단체의 전문성을 먼저 살피는 경우가 많은데, 재단이 가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폭넓음이 그 순간에는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다른 단체들처럼 운영하는 산하기관이나 시설을 두고 있지 않고, 하나로 정해진 지원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재단이 걸어온 길을 다시 들여다보면, 그 ‘열려있음’이 재단의 진짜 역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재단은 과거 국내 기부문화를 선도했던 것처럼, 다른 단체가 시작하지 않는 일, 하지 않는 일, 아직 이름조차 붙지 않은 사각지대를 발굴하는 일을 느리지만 꾸준히 해왔다.  가족돌봄청년 지원사업도 그런 걸음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낯설었던 이 청년들을 위한 자리를 먼저 만든 것은, 특정 대상에 시선을 고정하지 않고 사회의 빈틈을 계속 살펴온 재단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빠르지 않지만 분명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이 방식 자체가, 사실은 재단만이 가진 뾰족함일 수 있다.

마르디 메크르디 박화목 대표가 실패를 끝까지 복기해서 자기다움의 언어를 찾아냈 듯, 구성원들이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특정 대상 하나에 머무르지 않는가. 왜 사각지대를 찾는 일을 우리의 몫으로 여겨왔는가. 그 질문에 스스로 명확하게 답할 수 있을 때, 진정성은 비로소 마음에, 머리에 박히는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뾰족해진 정체성이, 기부를 한 번의 좋은 일이 아니라 책임 있는 동행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재단의 미션인 ‘모두를 위한 변화, 변화를 만드는 연결’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리는 것도 그래서다. 그 연결은 재단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뾰족하게 인지될 수 있을 때 비로소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모금기획팀 박유진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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