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다시 집을 잃다
학창시절, 모텔, 찜질방, 친구집 등을 전전했던 저는 학교와 지자체 등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부산에 있는 대학을 갔죠. 낯선 타지 생활이었지만, 더 이상 집 없이 전전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습니다. 기숙사에서 1년, 군대에서 2년, 다시 기숙사에서 1년. 그리고 스물넷이 되어서는 조그만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나만의 집도 생겼습니다. 더 이상 집 걱정은 없을 것 같던 제게 다시 한 번 집 없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취업을 하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면서였죠. 열 살을 더 먹었다고 집 문제가 쉬워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서울은 지방보다 더 어려웠죠. 머리 꽤나 아팠던 서울에서 내 집 찾는 이야기. 여러분께서 노숙위기청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 3개월의 여정까지 이 시리즈에 덧대어봅니다.
결국 나는 서울에서 살 집을 구하지 못하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 며칠 동안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보다 고시원 정보 어플에 더 많이 들어갔다. ‘조금 더 나은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에 똑같은 화면을 계속 들여다봤다. 그러다 내 눈에 들어온 탭이 있었다. ‘쉐어하우스’ 탭이었다. 고시원만 생각하다보니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선택지였다. 사진으로만 비교해도 고시원보다 훨씬 시설이 좋아보였다.
서울에 다시 올라와 쉐어하우스를 찾았다. 연신내 근처의 아파트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열었다. 어플로 소통했던 집 주인이었다. 집 주인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같이 쉐어하우스를 둘러보았다.
먼저 내가 쓸 방을 보여주었다. 평범한 방이었지만, 좁은 고시원을 많이 둘러봐서 그런지 정말 넓고 쾌적해보였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창문이 있다는 것이었다. 창문 너머로 북한산이 보였다. 탁 트인 풍경을 보자마자, 여기서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공용 공간도 둘러보고, 쉐어하우스 수칙도 듣고 나서, 곧바로 계약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고시원을 둘러보고도 쉽사리 선택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캐리어 하나, 백팩 하나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3개월 간의 전대차 계약을 했고, 나는 동갑내기 친구이자 집 주인이었던 찬기(가명)을 포함한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나는 쉐어하우스에서 마치 여행 온 사람처럼 캐리어를 펴놓고 지냈다. 3개월이란 짧은 시간만 지내기로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어린 시절 찜질방에서 모르는 아저씨, 아줌마들과 지냈던 기억, 친구집에 얹혀 지냈던 기억 때문이기도 했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불편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쉐어하우스에서의 3개월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나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았다. 친구들은 나의 입주와 첫 출근을 환영하고 축하한다며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고, 어떤 날은 다같이 영화나 스포츠 경기를 보기도 했다.
귀찮을 것만 같았던 대청소 날도 함께하니 즐거웠다. 먼저 서울에서 살았던 선배로서 이런 저런 정보를 주기도,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특히 찬기는 컴퓨터 관련 일을 했는데 내가 새 컴퓨터를 살 때 견적을 내주고 직접 조립도 해주었다.

서울에 올라온 2020년 즈음에는 코로나가 유행하고 있었다. 아마 고시원에서 혼자 지내는 걸 선택했다면, 낯선 서울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고,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생활에 참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 샤워실, 세탁실 등 공용시설을 함께 사용해야 하고, 좁고 밀폐된 공간에 수많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시원 특성상 코로나 감염에도 항상 노출되어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생각보다 길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건 아니었다. 친구들과 편히 지내다보니 3개월은 금방 지나갔다. 쉐어하우스 생활이 즐거워서 여기서 조금 더 지낼까 했지만, 나는 계획대로 쉐어하우스를 나오기로 결정했다. MBTI가 I였던 나는 아무래도 혼자 사는 게 더 편했다. 3개월의 재직기간도 채워 전세대출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들었던 쉐어하우스를 나오는 날, 찬기는 직접 운전해 이삿짐을 날라주었다. “잘 살아.” 찬기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멀어져가는 찬기의 차를 한참 바라봤다. 덕분에 서울에서의 새로운 삶을 잘 시작할 수 있었다고, 고맙다고 속으로 이야기했다.
늘 열려있던 캐리어가 꾹 닫힌 채 내 손에 들려있었고, 내 앞에는 새로운 우리 집이 있었다. 긴 여행을 마친 기분이었다. 찬기의 말처럼 내가 잘 살 수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 주거위기청년 이슈에 대한 김 매니저의 생각
주거위기지원센터 ‘청년, 공간’
낯선 서울에서의 삶, 나에게는 찬기와 그 쉐어하우스가 있었다.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 그리고 이야기뿐만 아니라 마음도 나눈 사람들. 하지만 노숙위기청년들에게는 그런 공간,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 앞선 편에서 얘기했듯이 집 없이 전전한다는 건 단순히 잠잘 곳, 씻을 곳이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등 기댈 사람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름다운재단은 사단법인 희망가치와 함께, 서울 영등포에 청년주거지원센터 ‘청년,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주거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잠시 쉬어가고, 다시 일상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다. 씻을 곳, 옷을 빨 곳이 없어 일자리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청년들에게, 이곳은 사회로 나가는 첫 단추가 되어준다.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면접을 보러 갈 수 있게 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사람을 만난다. 상담을 받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오랫동안 끊겨 있던 사회적 관계를 조금씩 다시 만들어간다. 이곳에서 나누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오랜만에 마주하는 사람의 온기일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후 안정적인 주거를 마련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상담과 동행 지원도 함께 이어진다. 관공서에 제출할 서류를 챙기고, 부동산과 고시원을 함께 둘러보고, 정책을 신청하는 과정까지 동행한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던지, 인재개발원이나 서울시에서 하는 직업 훈련이나 국민 취업 제도를 알려주셨어요. 그러니까 방향성 자체가 청년에 맞춰서 정보 제공을 해주셔서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혼자 막 우울하게 계속 술 먹고 하는 것보다는 단체 생활이 사람들과 사소한 대화라도 되잖아요. 그런 말이라도 주고 받으면서 (우울감이) 조금은 덜 하지 않았나 싶어요.”
“신분증도 해주시고 전입 신고도 같이 가서 해주시고, 지금 다 만들어주신 거예요. 너무 감사하죠. 딱 기본으로 돌아오게 만들어주신 건데 그게 너무 어려웠던거죠. 아무것도 없었을 때 기본으로 가는 게…”
집을 잃었을 뿐인데, 꿈도, 사람도, 보통의 일상도 잃어버린 청년들. 그런 청년들에게 아름다운재단의 주거위기청년 지원사업, 그리고 ‘청년, 공간’은 머무를 곳을 넘어 보통의 일상을 찾아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