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 365일 ⑥ 여기선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공익마케팅팀 김태형 매니저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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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다시 집을 잃다학창시절, 모텔, 찜질방, 친구집 등을 전전했던 저는 학교와 지자체 등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부산에 있는 대학을 갔죠. 낯선 타지 생활이었지만, 더 이상 집 없이 전전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습니다. 기숙사에서 1년, 군대에서 2년, 다시 기숙사에서 1년. 그리고 스물넷이 되어서는 조그만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나만의 집도 생겼습니다. 더 이상 집 걱정은 없을 것 같던 제게 다시 한 번 집 없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취업을 하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면서였죠. 열 살을 더 먹었다고 집 문제가 쉬워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서울은 지방보다 더 어려웠죠. 머리 꽤나 아팠던 서울에서 내 집 찾는 이야기. 여러분께서 노숙위기청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 3개월의 여정까지 이 시리즈에 덧대어봅니다.

‘김태형님,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이 한 문장을 읽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2020년 겨울,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늦은 나이에 얻은 직장. 기쁨도 잠시, 첫 출근일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집이었다. 어린 시절 그때처럼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출퇴근을 할 순 없으니까.

대출 받아서 전세방 하나 구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은행에 다니는 친구에게 연락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돌아온 답은 당장은 어렵다는 답이었다. 청년전세대출을 받기 위해선 3개월 이상의 재직 경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 라는 말. 취업준비생일 때 일한 경력을 꼭 물어보던 면접관에게 하고 싶었던 그 말. 취업을 하고 난 뒤, 집을 구해야 하는 순간에도 하게 될 줄이야.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찜질방이나 모텔에서도 살았는데. 3개월 정도야 고시원 같은데서 살면 되겠지 생각했다. 취업을 했다는 기쁨과 함께, 언젠가 꼭 한 번쯤은 살고 싶었던 서울에서 살게 된다는 기쁨까지. 그 기쁨에 취해 다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 뒤, 고시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량진을 찾아갔다. ‘여기가 말로만 듣던 노량진이구나. 컵밥 맛있겠다. 저렴한 한식뷔페도 많네. 학원도 진짜 많다!’ 벌써 여기서 살아가기로 결정한 사람처럼 마음이 들떴다. 그렇게 신난 채로 처음 찾아간 고시원의 방문을 열었다. 그 방을 보는 순간, 해맑던 내 얼굴은 급격히 굳었다.

위 이미지는 AI로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침대 하나 그리고 책상 하나. 정말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상 무언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다. 창문도 하나 나있지 않았다. 사장님께서는 화장실, 샤워실, 냉장고는 공용이라 밖에 있다고 하셨다. 굳어진 표정을 최대한 풀며 물었다.

“이 방은 얼마에요?”

“달에 55.”

“아…”

내 얼굴이 다시 굳었다. 

부산에서 지내던 원룸이 월세 30만 원이었다. 그 방 크기의 절반 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이 방은 왜 2배 가까이 비싼걸까. 금액을 듣고 망설이는 게 사장님 눈에도 보였나보다. “옆에 방은 방 가운데 기둥이 하나 있어가지고 5만원 싸요. 옆에 방도 볼래요?” 사장님은 망설이는 내게 쐐기를 날렸다. “노량진에서 여기가 제일 싸요!”

다른 고시원을 몇 군데 더 둘러봤다. 사장님 말씀대로 방 크기, 구조, 월세 다 비슷비슷했다. ‘모텔이나 찜질방에서도 살았으니 고시원에서 3개월쯤이야’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틀렸다. 아무리 3개월이어도 여기서는 도저히 못 살 것 같았다. 그러나 수중에 있던 돈을 보증금으로 걸고 들어갈 수 있는 원룸은 월세가 비싸서 부담이 됐고, 애초에 3개월만 계약할 수 있는 집도 거의 없었다. 현실적인 선택지는 애초에 하나밖에 없었다.

서울에 있는 동안 집 없던 어린 시절처럼, 친구집에 하루, 찜질방에 하루, 모텔에 하루 묵었다. 인터넷도 뒤져보고, 다른 동네도 가보면서 어디서 살아야 하나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집 없는 채로도 살아보고, 내 힘으로 집을 구해서도 살아봐서 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도 모르게 느끼고 있었나보다.

결국 나는 서울에서 살 집을 구하지 못하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야했다. 부산으로 가는 버스 안. 고시원을 보러 다니며 마주친 수많은 청년들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이 참 많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놓지 않고 꿈을 좇는 청년. 컵밥을 먹으며 학원에 늦을까봐 달려가는 청년. 면접이 있는지, 출근을 하는 건지 정장을 입고 고시원을 나서는 청년도 있었다. 어쩌면 고시원에서의 삶은 서울 청년들에겐 평범한 삶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시렸다. 버스 창틈으로 새어들어오는 겨울바람 때문은 아니었다.

📽️ 주거위기청년 이슈에 대한 김 매니저의 생각

고시원은 ‘집’이 될 수 있는가

고시원은 애초에 ‘집’으로 설계된 공간이 아니다. 「건축법」상으로도 고시원은 ‘주택’이 아니라 ‘2종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된다. 창문 하나 없는 방, 침대와 책상만으로 꽉 차는 3평 남짓의 공간. 내가 노량진에서 문을 열고 마주했던 그 방은, 법적으로도 처음부터 ‘사람이 사는 곳’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게 아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다. ‘2022년 주택 이외 거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15만여명 정도가 고시원에서 산다고 한다. 노숙위기청년들도 고시원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노숙위기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34.2%가 고시원을 거처로 삼고 있다고 답했다. 아름다운재단이 고시원에 사는 청년들을 노숙위기군으로 분류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름다운재단은 긴급한 상황에 노인 노숙위기청년에게 고시원과 같은 임시 거처의 월세를 약 3개월 간 지원한다. 가장 큰 목적은 ‘주거상향’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주거상향지원 사업은 고시원 등 열악한 환경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한 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긴급지원을 통해 고시원에 거주한 기간이 있다면, 주거상향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셈이다.

고시원이 아무리 열악하다고 해도 어떤 노숙청년들에게 고시원이라는 거처는 소중하다. 거리를 전전하거나, PC방, 찜질방, 24시간 매장 등을 떠도는, 더 심하게는 거처가 없어 주민등록이 말소된 청년들이 그럴 것이다. 무엇보다, 우선 당장 씻고 자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내일을 그릴 수 있다. 실제로, 실직 후 임대료 미납으로 강제퇴거 상황이었던 청년은 긴급주거지원으로 고시원에 들어갔고, 이후 취업하여 안정적으로 일하게 되었다.

다른 청년의 경우 시설에 머물고 있었는데, 특정한 시간에는 시설에 머물 수 없어서 쉬고 싶어도 밖으로 나가야 했다. 해당 청년은 긴급 지원을 통해 편히 쉴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을 얻게 됐고, 공황장애 증상도 줄고 안정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다고 고시원이 청년 주거지의 대안으로 여겨져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폐버스 임대주택’이나 ‘고시원 욕조 허용’ 같은 정책에 청년들이 분노한 것도 같은 이유다. 고시원에 살고 있는 청년들 모두가 고시원이 좋아서 그곳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집 흉내를 내는 버스나 공부방이 아니라 ‘집’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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