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유일한 문화 공간, 안남배바우작은도서관
여기는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아이들 돌보는 공간이에요. 학교 끝나면 다 여기로 와요. 안남에는 아이들이 다닐만한 학원이나 PC방이 없거든요.”
안남면은 옥천군에서 가장 작은 면으로 1천5백여 명 남짓한 주민이 산다. 안남배바우작은도서관은 안남면 청소년의 유일한 놀 곳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책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수다도 떨고, 모임도 하고, 영화도 본다.
안남에서 뮤지컬 한 번 보려면 대전까지 한 시간은 나가야 해요. 그러다보니 대부분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해외에 나가는 경험은 안남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봄길민들레 씨는 옥천의 시민단체 활동가이다. 그녀 역시 옥천에서 나고 자랐기에 지역 청소년에게 여행이라는 풍부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녀가 이번 <청소년 자발적 여행>의 멘토로 동행을 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동네 청년이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마을 사람들의 의견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랑 잡지사 <월간옥이네>서 일하는 예림 씨가 같이 갔죠. 안남은 옥천에서도 인구가 제일 적은 작은 마을이지만, 어디보다 주민자치가 활발해요.”
안남에는 대청댐이 만들어지며 고향이 수몰된 아픈 역사를 가진 사람이 많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아픔을 서로를 돌보며 극복해갔다. 도시에서 매년 내는 물 부담금을 개개인이 나눠 갖지 않고, 거동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무료로 마을버스를 운영하거나 도서관을 만들어왔다. 이번 여행도 그런 마을 사람들의 지지와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성수기를 피하느라 학기 중에 떠나야 했어요. 문제는 전교생이 18명인 안남중 학생 중 6명이 떠나야 했다는 사실이죠. 학교 선생님과 마을 어른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여행 가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낯선 베트남에서 만난 새로운 나
이번 여행에 참여한 청소년은 모두 8명이다. 처음에는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이봄길민들레 씨는 ‘자발적 여행’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직접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스스로 여행을 준비하겠다고 마음 낸 8명이 최종적으로 팀을 이뤘다. 이들은 어디를 갈지 직접 회의를 하고, 갈 곳을 조사하고, 한 조씩 돌아가며 직접 여행 안내를 했다.
여행지로 선택한 베트남은 이번 여행의 참여자 한솔이(14)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미 베트남에 여러 차례 다녀온 경험이 있다. 하지만 부모님이 아닌 친구들과 떠난 여행은 달랐다. 그녀는 이번 여행에서 ‘베트남 사람과 베트남어로 얘기하기’란 미션을 실행했다. 낯선 사람과 대화는 부모님과 함께일 때는 꿈도 못 꾸던 일이었다.
성호((14)는 이번 여행 내내 베트남 참전 군인이었던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베트남에서 일어난 전쟁의 실상을 알았고, 미안함을 느꼈다. 잘 몰랐던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기회였다.
원래 베트남에 궁금한 게 많았는데 그런 부분이 해소돼서 좋았어요. 베트남전쟁박물관을 갔거든요. 거기 가서 그때 저희가 베트남에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어요.”
시은이(16)는 이번 여행에서 꿈꾸던 거리 공연을 했다. 그녀는 어른들의 도움 없이 여행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일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다른 위치에 서니 전혀 다른 내가 보였다.
크루즈 3층에 가서 연달아 세 곡을 불렀어요. 다 한국 노래였는데도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짜릿했죠.”
스스로 하는 힘을 발견한 여행
이번 여행은 이들에게 “부모님 없이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정해진 코스대로 따라갔던 여행과 달라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친구들과 함께했기에 더 기억에 남는다. 경희(16) 역시 이번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마지막 날 친구들하고 서로 선물을 사줬어요. 한 번도 친구에게 선물한 적이 없는데 뭔가 뿌듯했어요.”
떠나기 전, 이봄길민들레 씨는 사실 걱정이 많았다. 시험 기간과 겹쳐 준비 자체에 어려움이 많았고, 준비해오기로 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을 때는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베트남에 도착하는 순간 모든 걱정이 사그라졌다.
아이들이 실전에 강하더라고요. 현지에서 음식 주문하고, 화장실 찾아가는 거 다 스스로 했어요. 마지막 날에는 시장에 가서 기념품을 샀거든요. 시장이니까 흥정을 해야 한다고 가르쳐줬는데 아이들이 저보다 싸게 사더라고요. (웃음) 어느 날은 새벽 네 시에 일어나야 했는데, 그날 가이드를 맡은 친구들이 밤샘을 해서 다 깨운 거예요. 아, 애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있구나. 저에게는 아이들이 스스로 할 힘이 있다는 걸 발견하는 여행이었어요.”
안남배바우도서관에 모인 여덟 명의 청소년들은 여행은 고됐지만 언제든 다시 떠날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여행이 새로운 나와의 만남을 선물해준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어디로 떠나든 이번 자발적 여행은 그들의 여행의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다.
글 ㅣ 우민정
사진 ㅣ 임다윤, 김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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