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석포제련소 맞서 낙동강 모니터링하는 김수동 안동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만약에 (서울의 식수원인) 팔당댐 인근의 일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중금속을 다루는 공장이 있고 거기에서 폐수가 배출된다면, 그래서 물에서 카드뮴이 검출된다면 어땠을까요?”
김수동 안동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낙동강의 상황을 설명하다가 이렇게 반문을 했다. 아연을 제련하는 공장이 그렇게 위험한 것인지, 꼭 공장을 없애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한번 생각해보았다. 만일 팔당댐 근처의 물에서 이런 공장이 있다면? 나무들이 말라 죽고 물에서는 중금속이 나온다면? 시시때때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다면? 바로 반응이 나왔다. “아유, 난리 났겠네요. 그 공장 바로 없어졌겠는데요.“ 김수동 국장이 하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1300만 국민의 젖줄인 낙동강에도 그런 위험한 공장은 없어야 한다는 것. 지금까지 파괴된 환경도 복구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 그는 종횡무진 낙동강 일대의 환경을 모니터링한다. 그 결과를 종합해서 연구조사도 하고 기자회견도 한다. 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서 2년째 진행하는 사업들이다.
50년 만에 첫 ‘조업중지’ 행정 처분 이끌었지만… ‘버티기’ 들어간 제련소
‘낙동강 환경 모니터링 사업’ 안에는 세부 활동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제련소 주변의 상황을 확인하고, 혹시 하천에 영향을 미치는 공사가 없는지도 감시한다. 제련소 인근의 자연 환경 변화도 살펴본다. 나무나 바위의 변화, 인근 하천 서식 동물들의 변화가 모두 환경오염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안동댐에서 수시로 물고기나 새들의 상태를 본다. 물에 오염물질이 없는지도 확인한다.
사업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제보도 부쩍 늘었다. “우리 집 앞에 이상한 게 떠내려온다.”, “물에서 거품이 떠 있다.”, “강가의 바위에 이상한 물질이 묻어있다.”, “비가 오면 배수구에서 검은 색 물이 나온다.” 등등. 그 때마다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조사에 나선다.
모니터링은 모니터링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과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 모니터링한 내용을 보다 정밀하게 분석한 뒤 결과를 발표한다. 언론에 내용을 전달하고 토론회도 연다. 요즘 들어 언론 취재가 많아진 덕분에 김수동 국장은 더 바빠졌다. 안동환경연합의 활동가는 김수동 국장을 포함해서 고작 2명. 그나마 다른 한 명은 반상근이다.
다행히 김 국장 곁에는 모니터링을 함께 하는 열성 시민들이 있다. 임덕자 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안동 시내에서 식당을 하는 시민이다.
임덕자 위원장은 원래 낙동강 상류 청량산 인근에 땅을 사뒀는데, 거기에 식당을 차리려고 했다. 그런데 건물을 하나 짓는데 너무 규제가 많아서 결국 포기했다. 아쉬웠지만 수질 오염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석포제련소에 대해 알게 됐다. 서민은 식당도 못 짓는데, 낙동강 최상류에 중금속을 다루는 공장이 가동된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임 위원장은 석포제련소 문제에 눈을 떴고 어느새 낙동강 곳곳을 누비는 활동가가 되어있었다. 모니터링을 하는 날에는 식당 문을 닫는데, 수시로 현장에 출동하다 보니 “닫는 날이 더 많다”고 전했다. 그는 어지간한 전문가 이상으로 복잡한 과학용어나 법률용어를 꿰고 있었다. 좀더 모니터링 활동을 잘하기 위해서 어려운 관련 용어나 법률도 독학으로 공부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사업 1년째에 벌써 큰 성과가 나왔다. 주민 제보를 받고 석포제련소에 출동해 폐수 배출 정황을 확인한 것. 안동환경운동연합은 석포제련소를 고발했고, 제련소는 ‘조업중지 20일’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이는 1970년대 제련소가 가동되고 나서 처음 내려진 처벌이다. 안동댐과 낙동강 물에서 카드뮴이 검출되고, 지역 주민의 혈중 납 농도가 일반 국민들의 2배 이상 높게 나오고, 제련소 주변 나무들이 말라 죽어서 민둥산이 될 때도 없던 일이다. 제련소가 이 지역에서 얼마나 큰 권력인지, 그리고 안동환경운동연합이 얼마나 큰 일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수동 국장은 행정처분을 이끌어낸 기분이 “좋고도 씁쓸했다”고 말했다. 제련소가 낙동강을 오염시킨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셈이니 당연히 기쁘지만, 동시에 허무하기도 했다. 제련소는 이 처분에 불복해 소송에 나섰다. 이런 대응을 예상 못한 바 아니었지만, 실제의 대응을 지켜보는 마음은 영 편하지가 않다.
김 국장은 “보통 사람들은 노래방에서 술을 팔다가 걸려서 ‘영업정지 1달’이 나오면 아무리 생계가 어려워도 이를 받아들인다”면서 “그런데 50년 동안 1300만명 국민이 먹는 물에 중금속을 배출했는데 영업정지 20일도 못 받아들이냐”고 말했다. 차분하던 그의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
다른 공장보다 노동조건 열악한데도 노동자들이 제련소 비호하는 이유
김수동 국장에게 아름다운재단은 세상 더 없는 우군이다. 사실 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는 그가 처음 해보는 외부 지원사업이다. 이렇게 외부 기관들이 사업을 지원해준다는 것도 잘 몰랐다. 처음이다 보니 서류 작업은 서툴렀고 실수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의논하면서 보다 완성도 있게 사업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올해의 사업도 두 단체가 함께 논의했다. 그 결과 모니터링 만이 아니라 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 문제를 주민에게 알려내서 설득하는 활동도 펼치기로 했다. 더 많은 주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환경 문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주민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산업이 낙후되고 경제적 기반이 약한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환경을 지키자”는 말에 반대할 사람은 없겠지만, 당장의 이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환경을 선택하기란 너무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자연환경만이 아니라 주민 공동체까지 함께 파괴되곤 한다. 새만금 사태, 부안 핵폐기장 사태, 밀양 송전탑 사태, 제주 해군기지 사태 등 수많은 환경 이슈들이 그러했다. 석포제련소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특히 제련소는 오랜 세월 지역 안에서 이해관계를 만들었기에 더욱 문제가 복잡하다. 인근 지역에는 제련소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제련소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는 물론 제련소 주변의 상권이나 제련소의 하청을 받는 업체 등이 모두 한 배에 묶여있다.
아직까지 큰 사고가 없었다는 것도 제련소를 감싸는 이유다. “이때까지 큰 병 없이 살지 않았냐”는 것이다. 물론 중금속은 조금씩 자연과 몸에 쌓이면서 문제를 발생시키기에, 실제 문제가 터지면 때가 이미 너무 늦은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위험은 당장의 생계보다 작아 보이는 법이다.
참 슬픈 사실은, 그렇다고 해서 이 제련소의 노동조건이 대단히 뛰어나지도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다른 지역 공장 노동자들보다 열악한 환경이다. 이를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 곳에서는 최저임금 일자리도 귀하고, 그래서 제련소와 맞서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얘기다. 제련소와 싸우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김 국장은 이미 불가능한 싸움에 자신을 던졌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동참시키는 것은 큰 도전이다. 그 동안 카드뮴 중독이 의심되는 주민이나 노동자들을 몇 명 만났지만, 이들은 모두 산재 신청이나 소송을 꺼렸다. 간혹 함께 하겠다고 말한 경우에도 며칠 뒤에 입장을 바꾸곤 했다. 환경부가 주관하는 ‘낙동강 상류(석포제련소~안동댐) 환경관리협의회’가 제련소 문제 해결을 위해 회의를 열었는데, 석포제련소 노동자들이 회의장을 점거한 일도 있었다.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수동 국장은 그래도 올해 더 열심히 주민들을 설득하려 한다. 그는 석포제련소 폐쇄 이후 복원사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참고할 사례도 있다. 장항제련소는 90년대 폐쇄되었는데 주변 토양 등의 환경을 복원하는 작업을 아직까지 하고 있다. 석포제련소 역시 환경 복원에는 수십년이 걸릴 테고 주민들은 관련 활동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복안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부터 했던 모니터링을 꾸준히 하고, 환경관리협의회를 잘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올해 안동환경운동연합의 주요한 활동이다. 환경부는 지난해부터 환경관리협의회를 구성했는데 안동환경운동연합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환경관리협의회는 석포제련소 문제에서 매우 중요하다. 제련소에 대한 대응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안동환경운동연합은 “공장을 완전 폐쇄해야 하고, 이후 제련소가 책임지고 환경을 복원해야 한다”고 적극 주장하고 있다. 기업이 미워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낙동강이, 그리고 1300만명의 사람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이 참 어렵다. 매번 ‘경제에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마법의 주문처럼 나오기 때문이다. 김 국장은 “미국은 공장에서 쓰는 화학물질을 공개하도록 되어있는데, 우리는 공장 내부 조사조차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에 제련소 내부를 조사할 때도 환경부 측에서는 “사유지인데 들어갈 수 있겠냐”고 걱정을 했다. 다행히 문제 없이 조사를 마쳤지만, 그는 이런 상황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범죄 행위가 의심되는데도 기업의 눈치를 봐가면서 조사하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잘 알기에 김 국장은 쉽게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야 제련소에 스크래치 하나 낸 것”이라면서 “문제가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지금은 꽤 유리하게 상황을 이끌어가고 있지만, 다음을 장담할 수는 없다. 협의회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고 제련소가 소송을 걸면서 버티다 보면, 또 어떻게 상황이 꼬일 지 모른다.
“제가 환경운동 한지 이제 10년쯤 됐는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더. 해야 할지 아닐지를 생각했고, 해야 하면 다른 생각 없이 뛰어들었지요.”
상황이 불리해져도 그는 활동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이 싸움은 이길 수 있어서 하는 싸움이 아니라,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어서 하는 싸움이다. 이 싸움에는 이제 아름다운재단이,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고 있다. 낙동강을 차마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진다면, 끝내 멈추지 않는 우리가 결국 이길 것이다.
글 박효원 | 사진 송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