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집에 대한 4가지 목표
집 공부하다가 알게 됐는데, 예산에 많은 부분이 창문에 들어가더라고요. 창문이 진짜 비싸요. 그런데 저희는 그 비싼 창문을 다 무료로 받았어요. 마을에 사는 공룡한테 받고, 주승쌤한테 받고. 아는 선생님이 연결해 주셔서 김해 사시는 선생님이 창문 하나 새로 주시고, 석고보드도 새 걸로 주시고. 집 안 타일을 기부받아하기로 했는데, 타일이 저 위에 보면 ‘과할 정도로’ 많이 쌓였어요. 그렇게 받은 게 되게 많아요.
작은목수들이 지은 ‘작은집’은 남원 산내면 입석마을 골짜기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아직 열어보지 않은 선물처럼 고이 포장지(!)에 쌓인 작은집에서 작은목수들의 뿌나와 산이를 만났다. 애초 예상했던 일정에 비해 오픈하우스는 조금 지체되긴 했지만, 큰 골격과 내부 인테리어까지 완성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작은목수들은 청년들과 <목금토공방>, <생명평화대학> 학생들이 모여 만든 작은집 모임이다. 대안적인 삶을 찾아 귀농, 귀촌하는 청년이 늘고 있지만, 지역에 기반이 없어 불안정한 주거에 의존해야 하는 청년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보고자 올해 1월 첫 모임을 시작으로 꾸려졌다.
첫 번째 집을 지으면서 저희가 추려낸 목표가 4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재료를 자연에서 빌려와서 짓는다’. 살펴보니까 우리나라 쓰레기 중 70%는 건축쓰레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다면 자연에서 재료를 빌려서 하자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두 번째는 ‘비용이 너무 많으면 안된다’. 개인적으로 500만원은 안 넘었으면 했는데, 처음에 뭣 모르니까 그런 금액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다 보니까 ‘최소 1000만원은 넘지 말자’로 바꿨어요. 청년이 알바해서 모을 수 있는 비용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게 해 보자, 라는 마음으로 적은 비용으로 짓고 싶었어요.
세 번째는 ‘협동하는 방식으로 집을 짓자’. 우리는 지금까지 누구를 이겨야 되는 방식으로 살아왔잖아요. 이 집을 지을 때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과 호흡을 맞추고, 협동하는 방식으로 지어보자고 목표를 잡았어요. 인건비를 줄이되 품앗이로 함께 짓는 거죠.
마지막 네 번째는 ‘같이 시작하고 마무리도 같이함으로써 힘을 한 번 길러보자’. 집을 내 손으로 짓는다는 게 정말 크고 먼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지어서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는 힘을 길러보기를 바랐어요.”
진심 가득한 네 가지 목표가 고스란히 담긴 작은집. 그 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기분이 들었다. 집을 짓지 않은 나도 이런데, 직접 손으로 시멘트를 섞어 기초를 닦고, 뼈대를 세우고, 단열재를 채우고, 창을 낸 작은목수들은 이 집을 보며 얼마나 뿌듯하고 마음이 벅찰까?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마음을 내어주다
작은집을 짓기까지 많은 이들이 ‘마음을 내어주었다’고 작은목수 뿌나와 산이는 말했다. 여러 사람들이 내어준 마음들을 뿌나와 산이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집을 짓는 동안 매일매일 참이 들어왔어요. 심지어 밥을 사주겠다는 분이 너무 많아가지고 ,밥 먹을 순서 예약을 할 정도였죠. 저는 집 지으면서 오히려 살이 쪘어요. (하하)
처음 집 짓는 목표를 세울 때, 작은목수들이 말한 ‘협동’은 집을 짓는 사람 간에 협동에 국한되었다. 하지만 집을 짓다 보니 마음을 내어주고 함께 해주는 사람들도 협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경험을 하고 난 지금, 뿌나는 1년 전 자신과 비교해 지금의 자신이 ‘정말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옛날에는 다 혼자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집도 혼자 살며 누구랑도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 고요하게 숲 속에서 지내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환상 가지고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삶은 혼자 사는 게 아니구나’를 깨달았다. 다른 사람과 갈등을 겪고 조율해 나가는 과정에서 힘이 나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집 짓는 게 기술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란다. 기술뿐 아니라 돈도 있어야 되고, 누군가의 노력도 계속 있어야 된다. 그것들이 한 데 모여 작은집을 지을 수 있었다.
작은목수들이 집을 짓는 데 모인 마음 중에는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 작은변화의시나리오 지원금도 한몫했다.
복잡한 과정 없이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작은변화의시나리오 지원금 200만원을 받았어요. 그 돈으로 집 지을 때 자문드린 강사님들 강사비, 집짓기 워크숍 비용으로 썼죠. 그리고 집 지으려고 여기저기 찾아 탐방 다닐 때 필요한 비용으로도 썼어요. 올해 진짜 집을 지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는데, 지원금도 생기고 하니까 집 지을 힘이 좀 나더라고요.
200만원이란 돈이 많은 돈은 아니지만 적은 돈도 아니다. 충분히 한 기간 동안 청년들이 해보고 싶을 일을 해 볼 수 있을 만큼의 돈이다. 때문에 뿌나는 이 지원금을 청년들이 많이 활용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에 대한 생각의 틀이 깨지다
뿌나와 산이를 만나고 작은집을 실물로 보았는데도 여전히 ‘집을 짓는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집’이라는 단어가 워낙 큰 단어라 와 닿지 않아서인지 집을 생각하면 종종 아득함을 느낀다. 평생 일해도 손에 쥘 수 없는 금액의 집값을 보다 보면, 청년이자 도시생활자인 스스로의 신세가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집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 무력함을 집을 짓고 난 이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까?
저는 작은집을 짓기 전, 다른 지역에서 만난 청년들의 집을 보러 다녔어요. 그 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주거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바뀌더라고요. 이전까지는 집은 내 소유가 아니고, 건축주 소유고, 나는 거기에 잠시 얹혀서 사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다른 청년들 집을 보면서 집이라는 게 그렇게 거대한 게 아니구나. 내가 지어도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더라고요.
뿌나는 그들 청년들을 만났을 때 집에 대한 이야기보다 집을 짓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들 모두 하나같이 집을 지으면서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얘기를 했다고. 그런 성장의 경험이 뿌나도 욕심이 났다.
그때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어요. 내 안에 힘이 없는 것 같은데, 그 힘을 어떻게 길러야 할지는 모르겠더라고요. 나약하다고 느끼고 있었을 때, 집을 한 번 지어보면 집도 얻고 그런 힘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났어요.
작은집을 지으면 얻은 힘을 발판 삼아 작은목수들은 앞으로 작은집을 더 지어나갈 예정이다. 네 가지 목표를 하나도 빠트림 없이 챙긴 게 작은집 1호였다면, 앞으로의 집들은 한 가지 목표에 충실한 집으로 만들어 갈 거라고 했다. 하나의 목표에 집중한 집을 짓겠다는 것 말고도 미래에 지어질 집에 대한 작은목수들의 상상은 무궁무진했다.
작은집을 지속해 나가는 게 쉽진 않겠지만, 함께 머리를 맞대 본다면 다양한 방법이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장년층과 청년이 서로의 필요를 나누며 조화롭게 어울려 집을 짓고 함께 사는 것처럼요. 청년들이 마음을 잘 모으고, 또 필요한 이들과 자원이 결합된다면 앞으로도 집을 계속 지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작은목수들이 만들어가는 커다란 의미
인터뷰를 하면서 한 가지 눈치챈 점이 있었다. 작은집을 이야기하는 작은목수들이 ‘마음을 내어준다’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에서, 마을 어른들이, 그리고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작은집을 위해 보태준 노동, 시간, 음식, 자원, 돈을 그들은 ‘마음을 내어주었다’고 말한다.
처음 마음을 내어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깊어갈수록 마음을 내어준다는 말의 의미를 점점 더 선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뿌나와 산이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 왜 사람들이 작은목수들에게 마음을 내어주었는지는 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예전에는 화려하고 크고 그런 걸 좋아했어요. 어느 부분 아직도 그런 게 있기도 하죠. 커 보이는 사람들, 말을 막 화려하게 하는 사람들,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살면서 보니까 진짜 작게 실천하는 데서 더 많은 의미가 있다는 걸 배웠어요. 저희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집을 지으면서, 뭔가를 하면서 ‘한 발 직접’ 내디뎠잖아요.물론 기존 자본의 방식으로 보면 터무니없이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생명의 움직임으로 보면은 이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비록 저희가 기술이 없고 나이가 어려 작은목수라고 하지만, 상세하게 들어가 ‘생명의 본질’로 바라본다면 우리 개개인 모두 어마 무시한 가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작은’이라는 겸손한 형용사가 담기에 그들이 몸으로 체득한 경험과 실천은 어마어마하다. 그래서인가, 작은목수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 앉은 뿌나와 산이가 나보다 한참 어른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1년간 만끽했을 이웃들의 마음과 성장의 경험이 한없이 부러웠다. 부러우면 진다는 말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그들의 멋짐에 백패를 당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기분좋은 부러움이 서울에 돌아와서도 한참이나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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