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회에서 타로 워크숍을 연다고?


햇살을 처음 만난 건 올해 4월 초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 작은변화 지원사업 오리엔테이션에서다. 상반기 동안 작은변화의시나리오, 강좌, 조사 지원사업을 진행할 단체, 모임들이 서로 인사 나누는 자리에서 햇살은 산청군농민회라고 소속을 밝히며, 지원사업으로 ‘타로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농민회와 타로카드. 낯선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햇살의 설명을 듣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산청군농민회의 타로 워크숍은 ‘여성회원’을 위한 강좌였다. 시골에 내려와 농사는 물론 직장일까지 해가며 실질적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농민회 여성들의 마음을 돌보고, 쉼을 주기 위해 마련한 강좌였다. 타로 워크숍을 진행하게 된 배경과 앞으로의 진행 계획을 꼼꼼히 설명하는 햇살의 첫인상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지리산 출장길에서 산청군농민회 타로 모임 소식을 전해 들었다. 상반기 강좌 사업에 참여한 타로카드 워크숍 멤버들이 지원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재미나게 모임을 지속해 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절로 미소가 떠오르게 하는 그들의 활동 소식을 들으며 햇살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다.

원래 도시에서는 여성단체 활동을 했었어요. 그런데 여기 산청으로 오고 나서는 활동도 안 하고 사람도 안 만나고, 그냥 조용히 살고 싶더라고요.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한동안 조용히 살다가, 작년 산청군농민회의 자연농법 농사모임(2018년 지리산 작은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 선정)을 하면서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어요.

2018년 지원사업을 받은 산청군농민회 자연농법연구회 (출처:햇살)


눈사람을 만들기 위한 ‘눈 한 주먹’

그때 사회적으로 미투운동도 일어나고, 산내면에 있는 문화기획달 활동도 알게 되었죠. 막연하게 산청에서도 여성 관련 활동을 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산청은 워낙 보수적인 동네여서 여성을 주제로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죠. 그러다가 농민회에서 ‘먼저’ 여성모임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 지원사업도 있으니까 여성모임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거였죠. 저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상반기에 작은변화 강좌사업으로 지원받아 산청군농민회 여성모임을 열게 되었어요.

사회가 아무리 변했다 하더라도 지역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남성 중심의 문화는 여전했다. 가정과 직장, 심지어 농사일 조차 여성이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남성들 뒤에서 부수적 일을 도맡는 현실이 햇살은 늘 마음에 걸렸다. 남성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도록 여성들이 서로 격려하며 힘과 에너지를 길러야겠다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꾸려진 모임이 바로 산청군농민회 여성회원 타로 워크숍이었다.

전업 농부, 반농 반직장인, 농부가 꿈인 직장인, 공공일자리 종사자 , 교사 등 산청 지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40-50대 여성들이 타로 워크숍에 참여했다. 서로 오다가다 만나긴 했어도 속내는 꺼내어 본 적 없는 사이, 또는 같은 지역에 살아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의 여성들이 모여 총 3회 워크숍을 가졌다. 타로카드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내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터놓으며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3번밖에 안 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가까워지는 데는 한순간이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 서로를 돌아봐주는 이런 모임이 모두에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여성모임 제안할 때, 눈사람을 만들기 위한 눈 한 주먹을 만들고자 했어요. 처음에 뭉친 눈이 있어야지 눈사람으로 굴릴 수가 있잖아요. 이 한 주먹을 만드는 게 상반기 강좌 하면서 우리의 목표였어요.

2019년 상반기에 진행한 산청군농민회 여성농민 타로 워크숍 (출처:햇살)

우리의 ‘욕구’를 발견하다


워크숍에서 만난 인연을 3회로 끝마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하반기 작은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을 받아 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타로 워크숍 맨 마지막 수업에서 ‘앞으로 우리가 뭘 해볼 수 있을까?’ 의논을 했었어요. 그러면서 하반기에도 지원사업을 해보자고 의견이 모아졌고, 하반기에는 ‘작은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을 받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시골에 내려와 가장으로, 농부로, 직장인으로 살면서 쉼을 가질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 하반기에 지원사업을 받아 제대로 된 쉼과 힐링을 갖는 모임으로 이어갈 예정이에요.

쉼과 힐링이라 말했지만 계획하고 있는 활동은 정적이기보다는 다이나믹(!) 그 자체다.

지난 8월에 모임을 하면서 각자의 버킷리스트 이야기를 해 봤어요. 어떤 사람은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해보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행글라이더를 타보고 싶다,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각자 적은 버킷리스트를 보면서 40-50대 여성들이 뭔가 모험적이거나 몸을 쓰는 데 욕구가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런 욕구가 있지만, 혼자 하기 힘드니까 ‘같이 해보자’ 하게 됐죠.

9월 모임에 축구를 해보자! 계획했어요. 남편 통해서 풋살장 빌리고, 농민회 회원 중 축구하는 분 통해 심판 섭외도 하고, 다 준비를 했는데, 태풍 오고 비 오면서 아쉽게도 실제 경기를 하지는 못했어요. 미끄러지면 큰일 난다, 이제는 허리 다치면 큰일 난다,고 해서(웃음) 그래도 언젠가 축구도 꼭 해 볼 거예요.

모두가 몸을 쓰는 욕구를 가진 건 물론 아니다. 11명의 모임 구성원 중 누구는 ‘난 축구는 절대 못해, 박수만 칠 거야’, ‘나는 체육하고 정말 거리가 멀어’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다.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응원을 하고, 또 그런 생각을 자유롭게 서로 이야기한다. 누구 하나 강요하거나 억지로 맞추려 들지 않는다. 각자 욕구에 맞게, 자연스럽게 모임은 흘러가고 있다.

이제는 ‘별노래’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진 산청군농민회 여성 농민들 (출처 : 햇살)

도시에서 여성단체 활동가로 있었을 때 활동가는 회원과 무언가를 조직해야 되고, 그래서 뭔가 꼭 해야 된다는 의무감을 가졌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모임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이 모임은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행복하고 싶어서 스스로 만든 모임이거든요. 그래서 내 욕구도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처럼 하고 싶지 않아요. 절대 그렇게 하고 싶지 않고 또 그렇게 하면 안 하죠. 뭐하러 그렇게 또 하겠어요(웃음).

산청군농민회 여성회원 모임은 두 번의 지원사업을 받으면서 스스로 부를 이름도 갖게 됐다. ‘별노래’. 농사 농의 한자를 구성하는 별 진과 노래 곡 자의 뜻을 따 만든 이 이름은 별의 노래라는 뜻으로 농사는 곧 별의 리듬에 맞춰 농부가 하는 일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별노래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 나갈지 아직 구체적으로 그려진 계획은 없다. 다만 지금보다 더 다양한 여성들이 함께 만나고 어울릴 수 있는 모임으로 만들어 갈 생각이다.

지리산 자락,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곳에서


인터뷰가 끝나고, 햇살 뒤로 부드럽게 흐르던 지리산 능선이 서서히 사라지는 게 보였다. 햇살이 들려주는 별노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 다 된 것이다. 나이와 지역, 그리고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이 조금씩 달라도 여성으로서 갖는 고민이 닮았기 때문일까, 햇살의 이야기에는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몸을 움직이고 싶은 욕구, 나를 돌보고 싶은 마음, 스스로가 즐거운 모임을 만들고픈 마음… 그래서 햇살과 별노래의 앞날을 더욱 응원하고 싶어 졌다. 고요하게 꿈꾸고 있는 나와 모두에게 햇살과 별노래의 활동이 응원이 될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 앞으로도 그들이 더 유쾌하고 재미있게 함께 해 나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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