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물 혹은 마을기록물로 불려지는 작은 기록들이 모이면 해당 동네의 특징을 보여주는 새로운 해석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도시공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지역에서 채집되지 못하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이곳에 무엇인가 있었고 없어졌다 한 줄로 남겨지는 것이 답답함을 넘어 먹먹함을 가져다주었다. 도시공간을 연구하면서 도면으로 흔적을 남기는 것은 선택적 소수에 의해 생산되는 기록물이다. 주최자가 있어야 하고 어떤 분량으로 어느 정도까지 내용을 담아낼 것인지 편집된 기록이 생산된다. 의식적인 기록보다 무의식적인 기록물이 모여 창발적인 기록이 지닌 과학적 기록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
변화의물꼬 사업에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민간기록물의 관리현황을 파악해 보겠다는 주제를 정하게 된 데에는 2022년도 10월 구로구청년의회에서 조례를 제안하게 된 경험이 기반이 되었다. 당시 ‘민간기록물 수집 및 관리 조례의 올바른 접근 방향은?’이라는 주제를 기반으로 민달팽이협동조합 권지웅 이사와 심화토론을 참여하며, ‘민간기록물’이라는 단어에 더 많은 생산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예산 확보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경험했다. 생산활동을 촉진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긴 했지만, 민간기록물을 대하는 내 생각에는 생산보다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그 이전부터 만들어진 기록물을 어떻게 보관하고 연결하고 주민이 다시 꺼내보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을지를 조례에 담아보고 싶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2022년 민간기록물 조례 현황을 조사했을 당시, 서울에서는 서울특별시와 성북구두 군데만 조례안이 있었다. 구로구에 민간기록물 관련 조례안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아파트들이 들어선다. 오래된 주택으로 스쳐지나가며 자료를 찾아 조사해 봐야지 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철거되었다. 개발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라지더라도 그 이전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잘 정리를 해 관리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었다. 조례안에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조항을 넣고 해당 조례를 운영할 기관을 생각해 보았다. 지역 내 도시재생지원센터, 평생학습관, 마을자치센터, 도서관, 학교와 협동조합형태의 주민공동체를 적어보았다. 해당 조례안에 관심을 갖고 제정해보고 싶다고 말씀해주신 두 분의 구로구의원분이 계셨다. 좀 더 세부적인 논의를 거치기 위해 담당기관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도서관을 선정하게 되었다. 앞서 열거한 기관 모두 기록물과 관련된 활동이 생산되는 조직들이었지만, 지속성이라는 측면과 관리 측면에서 도서관이 시스템을 기반으로 자료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기관에 접근하는 방식의 담장 틀이 가장 낮아 모두가 이용하는 곳이라는 생각에 이르러 도서관을 선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생산되고 있는 민간기록 혹은 마을기록등 이미 생산된 주민 참여 기록들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지 확인해 보고자 시작된 2023년 변화의물꼬를 트는 활동이 시작되었다.
1단계 변화의물꼬 사업을 통해 2023년 2월부터 4월까지 당시 구로구 내 작은도서관 15곳을 방문하여 사서들과 자료 정리와 주민참여 행사 내용은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물었고, 구로구의원과 구로구 지역을 기록하는 작가, 작은도서관이 아니지만 주민참여가 가장 활발한 도서관의 관장님과 팀장님을 만났다.
이때 발견했던 특징은 작은도서관의 운영을 자원봉사자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원봉사자는 좋은 마음으로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기록물 관리가 자유롭고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민간기록, 마을기록이라는 단어에 우선 모른다는 답변과 담당 공무원과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답변을 주었다. 또한 구로구는 모든 곳이 공립으로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서관도 민간 위탁 운영을 통해 진행되고 있었다. 이것은 관리체계가 다양하다는 것으로 보여주었고, 도서관마다 기록물을 관리하는 시스템도 모두 다를 것이라는 현실을 마주했다. 작은도서관에서 생산되는 기록물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에 구로구에서 주민참여가 가장 활발했던 도서관 담당자를 만나 관리 현황을 물었다. 관장님과 도서관 팀장님은 해당 내용에 너무 공감하며 다른 지역 도서관에서 일부 마을 기록물을 관리하는 곳이 있다면 내용을 소개해주셨다. 함께 연대하며 해당 문제를 같이 해결해 나가는 대화의 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미 지역에서 민간 기록을 생산해오는 작가들을 섭외하는 경험도 충분한 상황으로 보였다. 생산된 민간기록물의 관리를 위해 도서관에서 정리한 기록물 현황과 특징을 분류해보려고 했으나, 1단계 사업을 통해 마주한 현실은 도서관에서 기록물을 어떻게, 왜 관리해야 하는지 인지하고 함께 논의할 동료를 찾아야 하는 홍보가 먼저 선행될 필요를 느꼈다. 이 내용을 기반으로 구로구에서 민간기록물에 공감할 이해관계자, 타 자치구에서 협력체계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례를 만나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었는지, 운영 중 힘들었거나 지원이 필요했던 사항은 없는지 등을 묻는 자리를 마련하는 2단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구로구는 1단계를 통해 협의할 네트워크를 갖추었지만, 타 자치구에 적합한 사례와 논의할 구조를 마련하는 게 2단계 항해하기에서 가장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어떻게 이야기하면 라운드테이블에 섭외하고 1단계 활동을 설명하고 설득할지 막막했다.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도서관과 관련된 사람들이 경험 한 이야기를 대화를 통해 공유할 수 있어야 했는데, 갑작스러운 다른 자치구 섭외에 해당 자치구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하는 미션이 따랐다. 출퇴근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1단계에서 도서관 팀장님이 제안해 주신 은평구의 도서관을 찾던 중, 은평 마을 기록을 진행하는 사업을 마주치게 되었다. 참여하며 은평구의 마을 기록물이 어떻게 생산되고 도서관에서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더 깊이 논의해 보고자 참여하며 라포를 형성해 나갔다. 그렇게 만나뵙게 된 은평구의 구산동도서관마을 마을자료실 담당 선생님과 주민참여로 만들어진 구산동도서관마을만들기 마스터 플래너, 은평구의 기록을 생산하고 있는 민간기록생산자를 섭외하여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을 열게 되었다.
해당 라운드 테이블을 통해 은평구라는 지역이 마을에 애착을 갔고 커뮤니티를 오래 형성해 온 곳이라는 사실과 도서관이 지역사회에서 자리 잡아 미치는 사회적 역할을 다시 한번 발견할 수 있었다. 구산동 도서관마을은 OO도서관으로 끝나지 않고 마을이 모여 촌락을 이루 마을 형태의 도서관을 의미하듯 ‘구산동도서관마을’로 불린다. 은평구의 도서관은 구로구와 달리 100% 민간위탁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민간위탁 형태가 종교재단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유일하게 종교재단이 아닌 그간 협동조합과 마을 동아리 모임으로 네트워크를 맺어온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낸 도서관이었다. 이들이 도서관의 형태를 만들기까지 여정에는 도서관이 지니는 열린 환대 정신이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이번 사업을 진행하기 전까지 몰랐던 여성의 배움과 끊임없는 사회활동과 교육활동을 담아내는 곳이 도서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민간기록물을 오랜 기간 발굴하고 구술로 채록해 온 페이퍼백 아카이브의 허나윤 대표는 개인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기록되지 못한 누군가의 이야기도 인정받고 존중해줄 수 있는 태도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종종 민간기록물 혹은 마을기록물, 마을의 이야기, 주민의 이야기를 왜 기록하느냐 혹은 중요하지 않은데 왜 이런 활동을 하느냐는 물음에 하나의 답변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또한 마을자료실을 담당하는 나혜수 사서의 마을 자료집을 수집하고 관리하기 위한 개인의 열정과 애정을 혼자만의 결과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로 끌어올려 보여주려는 박애(?)주의로 민간기록물을 관리해야하는 현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동료가 지치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하는 주민 참여 활동을 기획하는 박정아 전 MP의 숨은 노력에서도 이들의 활동이 기록되고 다시 공유되고 폐쇄된 마을 모임이 아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대표적인 색깔을 지우고 공정한 관리 체계를 수립하려는 이들의 노력에서 민간기록물의 조례 수립 시 꼭 발현되어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두 번째 라운드테이블은 구로구 민간기록물 조례를 위해 오랜 기간 이야기 해온 구로 기적의도서관 강연주 팀장과 구로구 가리봉동 이야기를 발굴해 책으로 엮어온 조하연 팀장,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사업으로 구로구의 문화예술 차원의 기록물을 생산하고 지원해온 구로문화재단의 백정호 대리가 함께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 당시 구로 기적의도서관 팀장님이 방문하여 은평의 이야기를 함께 들었다.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이 마무리되고 구로구에서 도서관이 마을기록물을 관리하는데 어떤 도움이나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 라운드테이블을 들었지만, 도서관이 기록물을 관리하는데 드는 한계와 어려움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두 번째 라운드 테이블 때에도 이렇게 한계점만 많은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을 내비치던 그에게 오히려 잘한 것보다 못한 것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포기하지 말자는 독려를 계속 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두 번째 라운드테이블에서는 공공에서는 한번 해당 논의를 추진하던 문화재단 팀장님이 있었지만 순환보직 등 담당자의 교체와 부재로 인해 구로 민간기록 사업이 홀딩되었다며 밝은 장밋빛 이야기가 없음을 용기있게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오히려 허심탄회한 이야기 덕분이었을까. 소수로 모인 이야기였지만, 민간기록 혹은 마을기록이 지니는 가치가 이렇게 중요하고 매력이 있다는 점에 모두 공감하였고, 내가 아닌 동료의 활동을 응원해 주기 위해서라도 이 내용을 정리해 내년에는 좀 더 탄탄한 구성을 기반으로 기획 활동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물꼬 사업 덕분에 생산을 넘어 관리를 위한 도서관의 역할 조명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지역별 민간기록 혹은 마을 이야기를 담아내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함께 이야기할 때마다 탄식과 함께 무한 긍정과 그러나 늘 예산이 부족해 애정의 마음으로 조금씩 진행하다 보니 지속성을 갖추는 데 힘이 부친다는 이야기는 한계점 같았지만, 오히려 따뜻한 기여 정신과 건강한 마음으로 강점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도원결의로만 끝나서는 안된다’는 모두의 다짐과 긍정의 이어지는 논의 테이블에 여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건축과 글을 생산하는 곳에서 일하며 상업적 혹은 클라이언트의 목적에 의해 아카이브 되는 사업들을 만들고 퇴근 후 혹은 주말시간을 이용해 자발적 참여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의 몰입도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왜 도서관이어야 하냐는 질문은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문화재단에서 하는 민간 아카이브 사업도 있는데 말이다. 어떤 특정 기관이 맡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서관이 지니는 사회적 공간의 역할에서 마을기록이라는 모두의 이야기를 존중하고 환대해 주는 곳이 없다는 생각이 컸다. 도서관이 여성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더 찾게 되는 공간이자 배움의 공간으로, 도서관은 모두에게 열린 환대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도서관은 티 내지 않되 사회적 안정망을 책임지는 도시 인프라였다. 밤늦게까지 열려 있는 곳으로, 지식정보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이들에게 열린 활동과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로 시작해 자발적으로 생산해 내는 마을 활동과 교육 활동이, 평생학습 차원에서도 내 지역과 연계되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접근의 담장이 낮아 환대하는 사회적 공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라운드 테이블을 통해 스스로 민간기록물에 대한 시선을 돌아볼 수 있었고, 함께 이야기 나눠주셨던 분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잘 정리해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현재 2개의 라운드테이블의 대화를 기록집으로 또한 민간기록물과 도서관이 지니는 사회적 공간의 역할에 대한 내용을 엮어 책으로 출간 예정이다. 2024년에는 함께 해준 사람들과의 연결을 발판 삼아 민간기록물을 추적해 온 여정이 담긴 책을 펴내고 조례제안을 위한 실무자 라운드 테이블을 이어갈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2023년을, 그리고 함께해 온 변화의물꼬 사업 덕분에 추적해 온 도서관에서 생산되어 온 민간기록물 추적기 소회를 덧붙여 정말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풍요로운 공간에는 역사가 함께한다. 역사라는 단어에는 선택적 행위가 담겨 있으니 문화유산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지 모르겠다. 이미 자료는 지금도 어디선가 생성되고 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2023년 두 군데의 지역의 공간과 함께한 사람, 시간을 떠올려 기록하고 있다.
대단히 화려하고 힘 있고, 모두가 칭송할만한 훌륭한 일을 해낸 기록물이 아니라, 누군가는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이런 것도 새로운 해석을 통해 그 이전에는 몰랐던 사회적 편견을 이야기하고 나부터 시작해 보이는 전시가 될 수 있고 교육이 될 수 있다는 태도에 따뜻함을 느꼈다. 누구도 소외받지 않고 모두의 이야기를 담아 당신이 살아온 동네와의 인연을 떠올리고 장소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것, 보통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민간 기록물의 가치가 아닐까.
글/사진 최영금
※ 최영금님의 ‘동네를 보관하는 도서관, 그 기록물 유통과정 추적기’ 는 2023 변화의물꼬 지원사업 2단계 항해하기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사회 문제는 소수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느슨한 관계망이 만들어진다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변화의물꼬 지원사업을 통해 더 많은 시민들이 다양한 사회문제에 주체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시민사회가 더 너르게 확장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