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사는 어르신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들의 관심

취약한 개인의 ‘사회적 죽음’

지난 여름의 폭염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은유적인 의미가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더위 때문에 쓰러졌고 또 사망했다. 피해자의 다수는 70세 이상의 노인이었다. 열사병과 심장•뇌혈관 질환에 악영향을 미친 폭염은 그들의 삶을 강탈했다. 설핏 보면 통제 불가능한 자연 현상과 개인의 취약성이 빚어낸 참사다.


한데 곰곰이 문제를 살펴보면 다른 시각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폭염이 배달한 죽음이 유독 취약 계층 앞에 던져진다는 사실이다. 2008년 7월 보건복지부 ‘독거노인 냉난방 실태조사’에 따르면 독거노인 31.7%가 열사병과 열경련 등 폭염으로 인한 질병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몸이 불편한 그들의 피서지는 대개 집일 확률이 높은데 그 공간이 좁은 쪽방, 지하방 등의 열악한 주거 환경이라는 게 문제다. 사회적, 경제적 조건이 얼마나 열악하냐가 사망률을 좌우지하는 셈이다. 혹자가 폭염으로 인한 죽음을 ‘사회적’이라고 부르는 건 무리한 비약이 아니다.

그래서 지난해 아름다운재단은 저소득 독거노인을 위한 ‘無더위캠페인’을 시작했다. 9,900여 만 원을 기부 받아 2,745명의 독거노인에게 선풍기와 여름이불을 지원했다. 냉방 시설이 부실한 도심의 빈곤층 독거노인이 더 이상 ‘그까짓 더위 따위‘로 죽음에 이르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땀을 식혀줄 뿐인 바람이라도 누군가에겐 생명을 다독이는 들숨이거나 날숨일 수 있다는 사실을, 시원하고 가벼운 홑이불이 모순적이게도 인간을 얼마나 따뜻하게 위로하는지 말하고 싶었다.

삶을 지지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2012년 ‘無더위캠페인’으로 여름이불을 지원받은 여든 둘의 박 할머니. 그녀의 한 달 수입은 기초노령연금 9만3,000원과 10만 원의 자녀 용돈을 합한 19만3,000원이다. 끼니는 복지회관에서 지원하는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여러 기관의 식료품•건강•주거개선 지원으로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한다. 관절염, 요통, 골다공증이 심해서 보행보조기를 사용해야 운신할 수 있다. 

3,000만 원짜리 다세대 주택 반지하 원룸에 살며 친구들과 소소한 시간을 보낸다. 간혹 동년배가 이사를 가거나 죽음을 맞이하면 우울함을 떨치려고 그림을 그린다. 생전 배워본 적 없지만 화풍이 독특한 그녀의 그림은 이미 동네 사람들에게 유명하다.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그들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워 용돈 외의 금전적 지원은 힘들다. 저마다의 가정을 꾸리느라 간혹 들러보는 것도 버겁다. 자신보다 더 고달프게 지내는 자식에게 그녀는 별 다른 바람이 없다. 각자 서로의 삶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녀는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살아간다. 평생 방 한 칸 값인 3,000만 원밖에 못 모은 자기 자신을 자책하지 않는다. 남 탓도 없다. 그저 자신을 둘러싼 조건을 수용한다. 체념은 아니다. 늙음을 받아들이고 이렇게밖에 지낼 수 없는 자신과 화해해서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건 사회적 네트워크 때문이다. 복지회관의 사회복지사, 독거노인 도우미, 동료 할머니들이 그녀 곁을 지켜서다. 뜻밖의 폭염이 닥쳤을 때, 습한 기운으로 곰팡이가 한창 오를 때, 오랜 한파로 방안이 얼어붙었을 때, 급작스레 건강이 악화됐을 때 자신을 지켜주는 이들이 있어 덜 불안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조건들이 뒤엉켜 죽음에 이르게 될까봐 두렵지 않다. 아름다운재단의 여름이불은 그런 맥락에서 중요한 물품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표식이자, 여기 이곳에서 살고 있는 나이 든 사람을 세상이 기억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난 이곳이 좋아. 복지관 예쁜이도 찾아오고 사람들도 다녀가니까. 요즘 가장 무서운 게 뭔 줄 알아? 이사야, 이사. 계약이 곧 끝나는데 월세로 바꾸면 어쩌나 걱정이 돼. 도우미도 친구들도 여기 이렇게 있는데… 아무데도 안 갈 거야. 안 되면 복지관 앞에 텐트 치고 살 거야. 여기서 끝내고 싶어, 다른 곳이 아니라.”

늙음과 돌봄의 새로운 패러다임

예년보다 이른 더위에 아름다운재단이 다시 한 번 ‘無더위캠페인’을 가동했다. 2013년 첫 번째 선풍기의 주인공은 노원구에 거주하는 아흔 한 살의 윤 할머니. 독거노인 도우미 사이에서 깔끔한 할머니로 정평이 난 그녀는 요즘 들어 몸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다. 마디마디 관절은 물론이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괜찮던 귀도 눈도 좋지 않다. 혈압과 당뇨 때문에 조심스럽긴 해도 큰 수술 한 번 안 하고 건강히 지냈는데 요즘엔 자꾸 주위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돼서 속상하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삶이 자존심 상한다.

왜 이리 됐을까 가만 헤아리니 몇 가지 이유가 딸려온다. 6년 전 남편이 죽고 혼자 지내서이다. 아니다. 

열심히 키운 다섯 자식 중 아들 둘을 앞세워 낙담한 데다 그 후로 며느리들과 왕래를 하지 않아서다. 아니다. 

딸 셋 중 둘을 경주와 미국으로 시집보내고 자주 볼 수 없고, 그나마 자주 보던 큰 딸이 예순을 훌쩍 넘기며 예전 같지 않아 그렇다. 아니다. 

열심히 돈 벌고 알뜰하게 살았지만 노후 준비엔 무지해서 3,000만 원짜리 다세대 전세살이로 지내는 게 문제다. 아니다. 

생산 가능한 재능이 없어서 수입 없이 살아서 그렇다. 아니다. 

그럴 듯하지만 다 틀렸다. 개인이 지닌 변수는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인간 모두의 미래 ‘늙음’이다. 개인이 지닌 그 어떤 조건도 허물어 버리고 밀어닥친 스스로 통제 불가능한 일상. 그래서 윤 할머니를 담당하는 독거노인 도우미 배귀자 씨는 유기적인 돌봄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저마다의 사정 때문에 부모를 돌보지 못하는 자식들 많이 봤어요. 자식이 있다지만 그들은 그들대로의 삶이 있으니까. 성정이 나빠서이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고… 그런 경우 기초수급자가 되지 못해서 안타까워요. 윤 할머니만 봐도 여름에 선풍기 하나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는 거잖아요. 다른 분들도 그래요. 어떤 분은 쌀이 없고 또 누군가는 겨울 난방비가 아까워서 냉방에서 사는데… 자식이 있고 없고 따지는 것보다 저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봐야 해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에게 다가가려면 혈연이 아닌 다른 차원의 인식이 필요하다. 침대에 맞춰 다리를 자르려 하지 말고 그곳에 누워야 할 사람을 봐야 한다. 노인이거나 그들의 자식이거나,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던 늙음과 돌봄을 제대로 고민해야 할 때이다. 그래야 이제껏 외면해서 증상으로 떠오른 ‘사회적 죽음’이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폭염 속 독거노인의 죽음이라는 증상을 출구 삼아 닿고 싶은 우리의 건강한 미래. 그것이 ‘無더위캠페인’이 선풍기와 여름이불로 이야기하는 본질이다. 모두가 함께 이 캠페인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글. 우승연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