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청년 감지하기
노숙은 단순히 물질적 손실을 넘어선 ‘장소’가 사라지는 상태다. “내가 있어도 괜찮은 자리”이자 “내가 돌아올 수 있는 자리”의 부재. 집(house)을 잃은 끝에 집(home)마저 잃는 것, 그것이 아름다운재단 노숙위기청년 주거지원사업이 직면한 ‘노숙’의 실체다. 그래서 이 사업은 거리나 노숙인 시설만이 아니라, 지인의 집을 전전하는 ‘카우치 서핑’, 찜질방과 PC방 같은 과밀 공간, 부적절한 숙소 의존까지 아우르는 ‘주거 불안정 상태’ 전체에 주목했다. 다양한 위기가 중첩된 채 은폐된 노숙에 접근해, 보이지 않던 노숙위기청년을 감지하고자 했다.
아름다운재단과 희망가치가 함께 일군 결실은, 드러나지 않던 그들의 존재를 비로소 가시화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남성 중장년·고령 중심으로 설계된 정부 주도 5년 주기 실태조사에서도 포착되지 않던 노숙위기청년의 등장이었다. 그 소중한 경험을 담아낸 연구 결과 보고회가 송아영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발표로 2026년 3월 25일 연세대학교에서 진행됐다.
“이번 연구는 187명의 노숙위기청년을 대상으로 문헌연구·양적연구·질적연구 세 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실태조사로 인구사회학적 특성, 주거 불안정 경험, 건강 및 정신건강, 사회적 관계망, 경제활동 상태, 복지서비스 이용 현황을 살피고, 그중 17명의 심층면담을 통해 숫자 뒤에 있는 삶의 경로를 따라갔어요. 주거위기 발생 경로, 노숙 및 생활 경험, 지원 서비스 이용 경험, 자립 과정과 장애요인을 담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노숙청년을 만나 꼭 필요했던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건 현장에서 당사자와 함께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아름다운재단과 희망가치 덕분입니다.”
제도 밖에서 살아남기
노숙위기청년은 주거 불안정의 연속선 위에서 나타나는 단계적 현상이며, 흔히 ‘성인으로의 독립에 실패한 사례’처럼 읽힌다. 한국의 청년 주거 정책은 2015년 「주거기본법」 제정 이후 본격적인 틀을 갖추었고, 2023년 기준 주거 분야 정책은 전체 청년 정책의 약 12%(597건)를 차지할 정도로 양적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현행 정책은 일정한 소득이나 고용 상태를 전제로 설계되어, 정작 극단적 위기에 처한 노숙 및 노숙위기청년을 담아내지 못한다. 일시적인 월세 지원과 같은 시혜적 지원은 정상 궤도 위의 청년을 위한 설계일 뿐이다. 고용 상태가 불안정하고 소득이 없으며 안정적인 주소지조차 갖지 못한 청년은 그 설계에서 배제된다. 주거와 자립 지원 서비스가 분절된 정책 구조는, 결국 “개인의 무능은 사회가 책임질 수 없다”는 냉소적 낙인과 함께 이들을 사각지대로 밀어낸다.
“가정폭력 피해로 이른 나이에 집을 탈출하다시피 나오거나, 해체된 가족으로 인해 10대부터 독립생활을 해온 청년이 지지 체계의 부재와 사회경제적 자원으로부터의 단절로 노숙위기에 놓입니다. 임대료 연체, 사기 등으로 임시 거처조차 마련하지 못해 거리에서 자는 거죠. 그 극악한 상황에서 머물 공간이 생기는 것. 만났던 노숙청년 대다수가 그 자리에서 굉장한 안정을 느꼈다고 해요. 그것을 발판 삼아 ‘조금 더 낫거나 안정적인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다’ 그게 이 지원사업의 의의이자 효과성이라고 생각했어요.”

송 교수는 주거 빈곤이 물리적·경제적 차원의 결핍이라면, 노숙은 사회적 연결의 단절과 고립에 가깝다고 덧붙인다. 주거 빈곤으로 촉발되고 유지되는 우울, 그와 맞물린 낮은 사회관계 만족도까지 겹치면서 위기의 그물은 더욱 촘촘해진다. 이 난제에 대한 해답을 노숙위기청년 주거지원사업은 ‘주거 우선(Housing First)’ 원칙에서 찾았다. <청년,공간>을 마련해 낙인 없는 안식처를 제공하고, 관계망 회복에 힘쓰는 동시에 안전하고 안정적인 주거 지원을 설계했다.
“‘먼저’ 주거 안정입니다. 매일 어디서 자야 하지, 걱정하는 사람에게 다음을 말하는 건 불가능해요. 주거는 무조건 자립의 전제예요. 주거가 생기면 관계도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이전에 다녔던 직장, 아니면 그 비슷한 직업이라도 다시 한 번 얻어볼까 생각도 하고, 그동안 끊겼던 친구를 다시 만날 수도 있죠.”
문 앞에서 환대하기
“구마다 청년센터가 있지만 취업 준비를 위해 설계된 공간에 가까워요. 씻지 못한 몸으로 쉽게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공간은 대개 어떤 종류의 사람을 상상하며 설계되는데, 청년센터가 상정한 ‘청년’에는 노숙위기청년이 없어요. 그래서 <청년,공간>이 중요했습니다. 식사, 샤워, 세탁, 휴식, 휴대폰 충전을 제공하고, 부동산 계약이나 긴급복지 신청을 함께 나서주는 실무자가 있으며, 주거비·의료비·교육비·심리상담비까지 포함한 맞춤형 통합 지원을 지향하는 드롭인 센터니까요. 이 열거가 사소해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씻고 먹고 쉬며 잠깐 머물러도 된다는 안정감은 굉장한 지원입니다.”

<청년,공간>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장소’를 잃은 노숙위기청년을 환대한다.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남아 온, 과소 표집된 이들에게 주거 지원과 더불어 관계 회복의 토대를 제공한다. 기존 접근 방식과 다른 대응으로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통합적 서비스로 ‘살 만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의 인식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송 교수는 강조한다. 그리고 당사자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냥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요청했으면 좋겠습니다. 국가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존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고, 그것은 헌법으로도 보장되어 있어요. 본인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면, 더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해도 괜찮습니다.”
환대는 문을 여는 쪽의 몫이기도 하다. 당사자가 문을 두드리는 용기를 낼 수 있으려면 그 문이 실제로 열려야 한다. 이전의 무수한 사각지대가 사회적 의제로 안착하기까지 당사자의 목소리를 증폭시킨 연구와 현장의 협력이 존재했다. 아름다운재단의 노숙위기청년 주거지원사업이 쌓은 협력의 기록은 187명의 데이터와 17명의 이야기로 남았다. 그리고 아직 포착되지 않은 수많은 청년들이 길 위에 있다. 결국 이 연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 아름다운재단 노숙위기청년 주거지원사업은 신한은행 지원을 통해 (사)희망가치와의 협력사업으로 진행됩니다.
글 우승연 작가
사진 임다윤 작가
함께 보면 좋은 글
포토에세이 : 주거위기청년 지원 현장에 가다
노숙은 신분이 아니다. 힘든 시기 지나는 청년들일뿐
청춘의 지붕을 짓는 희망의 대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숨은 노숙’ 청년들을 위한 골든타임 3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