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을 통해 투명가방끈은 국가 자격증 제도가 갖고 있는 학력 차별 양적 조사를 진행했다. 학력차별을 고착화하는 구조를 가시화하기 위해 토론회를 통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일련의 활동 후기를 소개합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을 가지려면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2018년부터 사회복지사 3급 자격증이 폐지되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려면 최소한 전문학사(전문대졸) 이상의 학력이 필요해지게 됐습니다. 대학비진학자들이 함께 활동하며 만나고 있는 투명가방끈에서는, 사회복지 분야로 진로를 고민 중인 회원의 경험담을 통해 이 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투명가방끈은 입시경쟁교육과 학력·학벌차별을 비판하며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안 가게 되면 뭔가 전문 기술이라도 배우고 자격증이라도 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런데 자격증을 따는 데서부터 학력이 필요하다면? 대학 안 가면 자격증이라도 따라는 조언(?)이 민망해지는 일입니다. 투명가방끈은 한국 사회 곳곳의 학력 차별을 드러내고 문제 제기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로 자격증 제도에서의 학력 차별 문제를 조사하고 세상에 알리기로 했습니다. 우선, 세상에 있는 수많은 자격증 중에서도 국가가 공인하고 관리하는 ‘국가자격증’부터 조사하고 알리는 것을 2023년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학교나 사교육업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자격증 정보들

국가자격증은 ‘국가기술자격’과 ‘국가전문자격’ 두 종류로 나뉩니다. 국가기술자격은 ‘기능사’, ‘산업기사’ 등의 명칭이 붙는 것으로, 산업과 관련된 기술 및 서비스 분야의 자격입니다. ‘한식조리기능사’, ‘용접기사’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합니다. 국가전문자격은 개별 법으로 운영되는 전문적인 자격입니다. 국가전문자격에는 운전면허부터 아마추어무선기사, 공인중개사, 의사, 변호사까지 다양한 자격이 속해 있습니다. 국가기술자격에 관련해서는 비교적 조사가 수월했습니다. 정해진 법률과 일정한 기준 및 등급에 따라 운영되고 있었으니까요. 반면 국가전문자격들은 그 종수를 집계하는 데서부터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공식 운영하는 웹사이트 ‘큐넷’에서도 자격증의 목록을 제공하는 방식이 들쭉날쭉했고, 정보가 제대로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조사하다 보면 최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그 자격증을 준비시켜 주는 학원 등 사교육 업체나 대학교 관련 학과이기 일쑤였습니다. 대학을 가든지, 학원에 등록하든지 해야만 자격증 취득 방법을 안내받을 수 있나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관련 정보 제공조차도 잘 관리되지 않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를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았지요.

대졸이어야 딸 수 있거나, 대졸자가 유리한 자격증들

조사 결과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눈에 잘 보이게 숫자로 정리한 결과, 국가전문자격 166개 중 43개 자격증이 전문대졸 이상의 학력이 있어야만 취득 가능한 학력 제한을 두고 있었으며, 48개는 학력에 따른 우대 사항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가기술자격 기술분야에서는 종류에 상관없이 ‘산업기사’ 이상 등급은 모두 전문대졸 이상 학력에 따른 우대가 존재했습니다. 국가기술자격 서비스분야의 경우, 2010년 법령 개정으로 학력 조건이 제외되었으나, 2종의 자격에서는 학력 제한 및 우대가 남아 있었습니다.

국가기술자격학력제한우대여부 조사결과 중에서

국가기술자격학력제한우대여부 조사결과 중에서

사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국가전문자격에는 운전면허도 있고 교사 자격증 등도 있어서 그 성격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렇게 숫자만으로 보는 건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투명가방끈도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있기에 이번 조사는 가장 기초적인 실태 조사를 한다는 마음으로 계획한 것이었고요. 문제점을 잘 보여 주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현재 전문대졸 이상 학력이 있어야만 딸 수 있는 국가전문자격 43개 중에 사회복지사, 공인회계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자격 모두 과거에는 고졸도 취득이 가능했습니다. 공인회계사는 2007년, 사회복지사는 2018년부터 대학 학점 이수가 필요하게 되었지요. 이전까지는 대학에 안 가도 잘 딸 수 있었는데, 대학을 나와야만 딸 수 있게 바뀐 이유는 뭘까요? 자격증을 따는 데 학력에 따른 우대가 있는 자격증들은 보통 특정 시험과목을 면제해 준다거나 요구하는 실무 경력을 줄여 줍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배운 내용과 아무 상관없이 학력에 따른 우대를 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청소년상담사인데요. 3급 청소년상담사 응시 자격을 보면 고졸은 상담실무경력 5년을 요구하지만, 대졸(학사)은 학과 상관없이 상담실무경력 2년만 요구합니다.(상담 관련 분야 학사면 상담실무경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학에 다니기만 했다면 무슨 공부를 했든 간에 3년치 경력만큼 상담에 대해 잘 알고 유능해진다는 이야기일까요? 호텔관리사의 경우에도 전문대졸이나 고졸은 관련 분야 전공이나 경력 3년을 요구하는 반면, 대졸(학사)은 전공과 경력에 관계없이 자격 응시가 가능합니다.

국가기술자격 중 기술분야는, 모든 자격증이 전문대졸/대졸 이상이면 산업기사·기사 등의 자격을 취득하는 데 요구되는 실무기간이 짧아집니다. 이는 일터에서 고졸 노동자가 전문대졸/대졸 노동자에 비해 더 느리게 승진하게 되고 노동조건에서 차별받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합니다.

당연시되는 대학중심주의, 학력차별에 물음표를 던져야

국가자격증 학력차별 전수 실태조사 토론회

과거 자격제도의 문제를 지적한 한 연구자는 ‘학력 종속형 자격체제'(이영현 외, 2002, <능력중심사회 구현을 위한 자격제도의 방향과 과제>, 한국직업능력개발원)라는 말을 쓰기도 했는데요. 투명가방끈은 이런 국가자격제도의 학력차별 문제가, 대학 진학 및 졸업을 당연시하는 대학중심주의, 학력이 (대졸 등으로) 더 높으면 더 유능하고 우월할 거라고 믿는 능력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사실 자격증을 따려면 시험도 치르고 연수 등도 거쳐야 하는데, 그런 과정 자체가 자격 검증인 것이지, 학력 조건을 따져서 아예 자격증 취득을 시도도 못하게 하거나 우대해 주는 건 불합리한 차별이 아닐까요?

투명가방끈은 2023년 12월 8일,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여기에서 드러난 학력차별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토론회에는 자격증 따기에서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대학비진학자와 교육·노동 분야 연구자가 참석해서 한국 사회와 노동 분야에서의 차별 문제, 현실을 분석하는 의견을 보태 주었습니다.

인증샷 캠페인 모습

인증샷 캠페인 모습

또한 투명가방끈은 이러한 조사 결과를 널리 알리기 위해 자료집을 배포하는 한편, 행사 현장에서 인증샷 캠페인 등으로 문제의식과 실태조사 내용을 설명하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격증에서도 이처럼 학력에 따른 장벽과 차별이 있는 줄 몰랐다는 소감을 남겨 주셨는데요. 투명가방끈은 앞으로도 학력차별 문제를 가시화하는 활동을 이어 갈 계획입니다.

👉다운로드 [제작물] 자료집_국가자격증제도의학력차별실태조사

 

글, 사진 | 투명가방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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