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어른에서 누군가의 어른으로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고진슬 매니저

202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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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슬렁슬렁변화는 거창한 순간에만 오는 걸까? 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변화가 슬렁슬렁 다가온다고 믿는다. '슬렁슬렁'은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하게, 혹은 어떤 일에 얽매이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처리하는 모양을 뜻한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며 ‘변화’라는 단어를 가까이 두고 있지만, 정작 일상은 비슷한 하루의 반복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자주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의 시민이자, 한 아이의 엄마,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마주한 변화의 장면들을 기록해 보려 한다. 변화를 만들고 싶은 ‘나’와 이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를 함께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변화를 위해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도 괜찮다. 읽고, 알게 되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부터가 시작이니까!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체감했던 순간은 육아휴직 후 복직과 함께 달라진 일상이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내 몸 하나 일으켜 출근하기 바빴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를 깨워 옷을 입히고,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뒤 출근길에 나서거나 집에서 노트북을 켜고 재택근무를 시작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나도 제법 어른이 되었구나.’ 어른의 사전적 정의는 다 자라 자기 행동과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나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을 뜻한다. 어릴 때부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통제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의 환경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아이가 웃는 모습
등원룩 인증샷 남기는 우리 아이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

지금 나의 정체성은 90년대생, 대학 졸업 이후 쉼 없이 일해 온 1N년차 직장인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동안 연애도 하고, 결혼에 출산까지 내가 꿈꾸던 삶의 장면들을 하나씩 이루어 왔다. 어릴 적 상상했던 어른의 모습에 한 걸음씩 가까워졌지만, 정작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유를 얻는 일이 아니라 책임을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사실 나는 어른이 되기 이전에 열여덟 어른이었다. 2012년도에 자립을 시작했다. 당시 ‘자립준비청년’이라는 명칭도 없었고,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제도는 지금보다 훨씬 제한적이었다. 자립정착금과 자립지원시설 정도가 전부였고, 보호가 종료된 이후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미래를 그려나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나마 연고가 있어 시설을 퇴소한 뒤 할아버지 댁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4년 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또 다시 혼자가 되었다. 늘 북적이던 공간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단체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혼자가 되니, 자유를 얻었다는 해방감보다 적막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시설 생활을 할 때에는 그곳을 빨리 나가고 싶었다. 시설에서 지낸다는 사실이 창피하게 느껴졌고, 그 시간들을 인생의 약점이라 생각하며 부정적으로만 바라봤다. 하지만 자립 이후 삶을 살아내면서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돌아보면 그곳에서의 경험은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긍정적인 순간들 중 하나였다. 누군가와 함께 웃고 울고, 서로를 의지하며 지냈던 시간은 지금의 나를 만든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관계의 온기와 함께 살아가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도 사회에 적응하고 취업을 하는 동안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원은 점차 확대되었다. 대표적으로 아름다운재단의 ‘열여덟 어른’ 캠페인 등을 계기로 많은 이들이 사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법제도와 지원기준 또한 늘어났다.

어릴 적 사진
몇 장 없는 어린 시절 사진 중 내가 좋아하는 초등학생 시절의 모습

누군가의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 사람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제도와 지원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그 곁에서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어른의 존재이다.

과거의 나는 그런 기회를 간절히 필요로 했던 열여덟 어른이었다. 누군가가 내 가능성을 믿어주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할 기회를 건네주기를 바랐다. 다행히도 나는 그런 좋은 어른들 덕분에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아동·청소년·청년들이 자신의 환경 때문에 꿈의 크기를 줄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쳐볼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행사를 주도적으로 꾸릴 수 있도록 거들었던 사회복지사 시절

그런 의미에서 재단에 다니며 직간접적으로 접한 아동·청소년·청년 지원사업은 큰 울림을 준다. 아이들이 처한 현실이나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나다움을 찾으며 가능성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어른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절로 응원하게 된다.

최근에는 청소년 공익활동 지원사업 ‘봄바람’의 참여 단체를 모집하는 공모가 진행됐다. 청소년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변화를 만들어가는 활동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익단체를 지원한다. 청소년들을 한 사람의 삶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응원해준다면, 이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해 또 다른 누군가를 지지해주는 좋은 어른으로 성장해 갈 것이라고 믿는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들이 다양한 기회를 만나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좋은 어른들과 연결될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손을 내미는 것, 그 변화들이 모여 누군가의 내일을 바꾼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누군가의 믿음과 응원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과거의 내가 열여덟 어른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내 아이에게도, 그리고 지금 세상 어딘가에서 자신의 내일을 꿈꾸고 있을 또 다른 열여덟 어른들에게도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혼자 잘 살아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고 그 곁을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잔디에서 뛰노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
아이와 함께하는 따뜻한 시간
글,사진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고진슬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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