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선 탈가정 청년들의 곁에

공익마케팅팀 윤이나 매니저

202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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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헤르츠고래들, 탈가정 청년들의 곁을 지킨다

집을 떠난 청년들이 있어요. 가출도 아니고, 독립도 아니에요. 원가족 안에서 더 이상 ‘나’로 살 수 없어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스스로 나온 청년들이에요. 이들을 ‘탈가정 배경 청년’이라고 부릅니다. 집을 떠난다는 건, 삶의 가장 기본인 ‘주거’를 잃는다는 의미예요. 그 순간부터 이 청년들은 길 위에 놓입니다. 고시원, 찜질방, 24시간 카페를 전전하다 결국 노숙 위기의 상황을 마주하는데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탈가정 청년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자립을 돕는 비영리임의단체 <52헤르츠고래들> 강미선(미셸) 대표를 만났어요.

찜질방, 고시원, 단기 쉼터 등 탈가정 청년들이 겪는 노숙위기의 순간

Q. <52헤르츠고래들>는 어떤 곳인가요?

A. <52헤르츠고래들>은 전북 남원시에 설립된 비영리임의단체입니다. 현재 도시를 떠나 지역에서 자립에 도전하는 탈가정 청년을 지원해요. 남원에서 ‘고래하우스’와 ‘고래이음터’라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고요. 예술과 공동체를 매개로 청년들이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하고, 자신의 서사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보통 고래는 20~25헤르츠로 소리를 내요. 그런데 어떤 고래 한 마리는 혼자 52헤르츠로 울어요. 고래 사회 안에서는 ‘말 못하는 고래’처럼 보이지만, 자기만의 목소리로 분명히 울고 있는 거예요. 탈가정 청년들이 이 고래들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사회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그 소리가 닿지 않을 뿐이에요. 그래서 이 청년들을 ’52헤르츠 고래들’이라 부르기 시작했어요.

비영리임의단체 <52헤르츠고래들> 강미선 대표

Q. 탈가정 배경을 가진 청년들을 직접 만나온 경험이 많은데요,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A. 처음 탈가정 배경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어요. ‘이거, 70년대 이야기 아닌가? 이게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라고?’ 싶었어요. 그런데 실제 일어난 일이었어요. 가정폭력, 주민등록말소 등 청년들이 원가정 안에서 겪은 일은 생각보다 심각했어요.

원가족 밖으로 나올 때 준비 없이 급하게 집을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고시원 보증금도 없이 나오거나, 며칠치 찜질방 비용만 들고 나오는 청년들도 많아요. 청년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들어갈 수 있는 쉼터가 있나요?”인데, 안타깝게도 성인을 위한 쉼터는 거의 없어요.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는 남성 청년이 들어가기 어렵고, 노숙인 쉼터는 어르신이 우선이에요. 결국 24시간 카페와 PC방, 찜질방을 전전하다 바깥에서 잠을 자기도 해요.

제도의 사각지대도 커요. 청소년이 집을 나오면 ‘보호대상’이 되지만, 청년이 집을 나오면 그냥 ‘독립’으로 봐요. 30세 미만은 행정적으로 원가족과 연결되어 있어서, 실제로는 완전히 분리된 상태여도 부모 소득 기준으로 복지 여부가 결정돼요. 노숙 위기에 처해 있어도 ‘부모가 있으니 괜찮다’로 처리되는 거예요.

주소지 문제도 있어요. 부모가 자녀의 등·초본을 열람하면 현재 사는 곳이 드러나요. 가정폭력 피해를 입고 겨우 나온 청년에게 이건 심각한 위협이에요.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주소를 원가족에 그대로 두고 다른 곳에서 생활하는데요, 그러면 복지 사각지대에서 완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가 돼요.

탈가정 청년과 대화하는 강미선 대표

‘한번은 삶을 뒤집어보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Q. 탈가정 청년들의 자립을 위해 지역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A. 보통 청년들은 0에서 시작해서 무언가를 쌓아가요. 그런데 탈가정 청년들은 마이너스에서 시작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겨우 0에 닿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이미 저 앞에 있어요.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물리적으로 환경을 바꾸는 것, 즉 지역에서의 자립을 선택했어요.

주거공동체 ‘고래하우스’를 만들 때 정한 원칙이 있어요. 개인 공간이 꼭 확보될 것, 빨래가 잘 마르는 마당이 있을 것, 그리고 이 공간이 ‘너를 위한 안전한 공간’임을 계속 말해줄 것. 너무나 당연한 것 같지만 이 친구들에겐 처음 겪는 일이거든요. 힘들 때 엄마한테 전화하거나 부모님 댁에 가서 며칠 쉬다 오는 것, 많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에요. 그런데 탈가정 청년들에게는 그런 곳이 없어요.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올 수 있는 곳, 회복할 수 있는 곳. 그 최소한의 공간이 청년들에게는 전부예요.

한 번쯤은 인생에서 자기의 힘든 시간들을 누군가가 뒤집어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스스로 뒤집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옆에서 누군가가 그걸 한 번 뒤집어주면, 그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거예요. 그 ‘뒤집어줌’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게 바로 안전한 공간이에요. 서울에서도 머물 곳은 있어요. LH 주거 지원을 받거나 고시원에 들어가는 청년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 공간에 있는 청년들이 ‘안전한 내 집’이라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고 해요. 잠만 자는 곳이지, 돌아오고 싶은 곳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가장 안전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최소한의 안전망이 생겼을 때 비로소 변화가 찾아온다

Q. 강미선 대표님이 탈가정과 노숙위기를 겪은 청년들에게 마음을 쏟는 이유가 궁금해요.

A. 저 역시 한때 고립은둔청년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요.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완전한 은둔 상태였어요. 자존심이 센 사람이라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어요.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계속 생각했어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채고 끄집어내줬으면. 그러면 내가 더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 긴 시간 혼자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인지. 그렇게 찾아낸 답이 하나 있었어요. 내가 하는 일이 남에게 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그 마음을 붙잡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고, 지금의 사회적 기업이라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청년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직접 겪어봤으니까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봐 주는 사람 하나가, 그 시간을 버티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요. 탈가정 청년들 곁에 머무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탈가정 배경을 경험한 한대윤 청년과 강미선 대표가 남원에서 지역문화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다.

Q. 탈가정, 노숙위기 청년들과 함께 하면서 경험한 변화가 있나요?

A. 물론 곁에서 함께하는 일이 늘 순탄하지만 않아요.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있어요. 마음이 많이 약해졌을 때 그런 일이 생기는데, 심각한 상태일 때 연락을 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 시간이 가장 두려워요. 또 청년이 무언가를 포기하려 할 때, “조금만 더 하면 나아질 것 같은데”라는 마음에 밀어붙이다 오히려 손을 놓게 만들기도 한다고요. 그래도 이제는 알아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온다는걸요.

오랫동안 탈가정 청년들을 만나오면서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됐어요. 이 청년들이야말로 자립에 대한 욕구와 의지가 가장 강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원가족 안에서 나로 살 수 없어서, 분리를 택해서라도 자기 삶을 살겠다고 나온 사람들이에요. 그 어려운 시간들을 버티며 지금까지 살아낸 사람들이고요.

조금의 기회, 조금의 관심만 있으면 크게 성장할 수 있어요. 그 믿음이 흔들린 적이 없어요. 사람은 변할 수 있어요. 누군가 곁에서 그 가능성을 믿어줄 때, 실제로 변하거든요. 때로는 오래 걸리고, 더디고, 인내가 필요하지만 이 친구들과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어요. 이미 그 변화를 체감하고 있으니까요.


마이너스에서 출발한 삶이 0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합니다. 안전한 공간 하나가 생겼을 때, 이 청년들은 비로소 바깥을 두려움 없이 마주할 수 있게 되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기 시작합니다. 최소한의 주거 안전망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깊습니다.

강미선 대표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서, 오래 생각이 남았습니다. ‘집’이라는 게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 돌아올 수 있다는 감각,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 그 최소한의 것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붙잡는다는 것을요.

 공익마케팅팀 윤이나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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