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역할을 해달라”는 말에 응한 이유
아름다운재단 이사회는 1년에 네 번, 분기마다 열립니다. 벌써 2년동안 그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이사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오랜 시민사회 활동을 마무리하고, 6년 전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김연순 이사입니다.
김 이사는 서울동북여성민우회 대표, 한국여성민우회생협 이사장, 행복중심생협연합회 회장을 지내며 여성운동과 협동조합운동에 오래 몸담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7대 사무총장을 지냈습니다.

사실 김연순 이사와 아름다운재단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2011년 아름다운재단은 배분위원직을 제안하며 “생협 운동의 중심에서 쌓아온 에너지와 열정이 재단에서도 빛을 발할 것이라”는 기대를 전했었는데요. 그렇게 시작된 배분위원 활동을 통해 지원단체를 심사·선정하고 배분사업의 방향과 정책을 함께 수립하는 등 많은 일을 함께 했습니다. 지금의 이사직은 15년간 이어진 인연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김 이사의 활동 거점인 제주에서의 일상은 바쁘게 흘러갑니다. 제주여민회와 전국여성농민회 제주도연합 회원으로 농촌의 성차별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성평등·성인지 감수성 교육 강사로도 활동합니다. 2023년에 창립한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초대 이사장을 맡아, 제주 바다의 변화를 기록하고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제주에 와서는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고 싶었는데, 지금 하는 게 너무 많은 것 같다.”는 김연순 이사. 제주의 활동가이자 아름다운재단 2년 차 신임 이사로서, 이사회 안팎에서 느낀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서울 생활을 다 정리했지만, 재단 이사를 수락한 이유
김연순 이사는 이사직 제안을 받았을 때를 떠올리며 웃었습니다.
“서울 생활을 다 정리하고 내려가 살고 있는데 갑자기 제안을 받아 놀랐죠. 서울에 계신 분들이 하셔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김 이사의 마음을 돌린 건 재단이 건넨 말 한마디였습니다. 창립 초기부터 중요하게 여겼던 시민사회와의 관계가 조금 옅어지는 것 같으니, 다리 역할을 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런 거라면 해야 되는 일이구나 싶어서 응하게 됐어요.”
다만 분기별로 열리는 이사회에 참여하며, 그녀는 2년 차 이사로서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고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조금씩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인터뷰 제안을 받아서, 오늘 이 자리를 기대했어요.”
지금도 선명한, 아름다운재단의 새로운 시도들
아름다운재단과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노란봉투’ 캠페인을 꼽았습니다.
“재단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준 대표적인 캠페인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제 주변에 이 캠페인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호응이 좋았고, 노동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걸 대중화시켰다고 느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나 이제는 이사로 함께하며, 최근 ‘다시, 노란봉투‘ 캠페인에도 응원하는 목소리를 보탰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이 마을공동체를 구심점으로 진행하고 있는 지역문제 해결 프로젝트 ‘뷰티풀 커넥트(Beautiful Connect)’를 결정했을 때도 보람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있을 때 비슷한 시도를 해본 적이 있어, 저는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안건이 올라왔을 때 우려점도 있었지만 한번 해보자 제안드렸고, 실행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담장을 없애야 진짜 평등입니다
김 이사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물었습니다. 대답은 짧고 분명했습니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 제게는 제일 중요한 화두예요.”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를 묻자, 불평등을 이야기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뿐 아니라 정보의 격차도 심각하고, 기후 위기 문제에도 그 격차가 삶을 다르게 만들고 있어요.”
그러면서 키가 다른 세 사람이 담장 너머로 경기를 보는, ‘평등(Equality) vs 공정(Equity)’ 일러스트를 꺼냈습니다.

“맨 왼쪽 것은 기회의 평등, 가운데는 결과의 평등을 보여주는 그림이죠.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해요. 담장 자체를 없애야 하는 거죠. 불평등을 야기하는 사회 구조를 바꾸는 시민사회단체를 재단이 찾고 지원하는 활동이 이어져야 합니다.”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이 필요한 때
재단의 미션과 비전 중 마음에 남는 문장을 묻는 질문에도 그녀는 에두르지 않았습니다.
“‘사회 문제 해결’, ‘변화’, ‘연결’은 무척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한다는 것인지는 아직 막연하게 느껴져요. 불평등을 해결하는 구체적인 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사회 운영에 대해서도 애정 어린 직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분기별로 이사회를 하다 보니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요. 실무진이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겉으로 드러나는 활동이 아니면 잘 모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사회에서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제안한 방법은 소박했습니다.
“이사회 전에 중요 쟁점이 될 안건을 일주일 정도 여유를 두고 미리 안내해주시면 좋겠어요. 발언을 준비할 수 있으니 좋은 결정에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김 이사가 보유한 지혜나 시간 중 재단과 나누고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조심스레 묻자, 먼저 손사래부터 쳤습니다. “가진 게 없어서(웃음).” 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성평등 전문강사로서,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참여형 방식으로 진행해요. 의사소통 훈련이나 회의진행법에 대한 강의도 하는데 참여형 워크샵으로 진행하는게 교육 참여자들의 집중도를 높이거든요. 사무국과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네요.”
실무자가 현장을 다녀야 합니다
10년 후 재단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하자 실무자 이야기로 답을 시작했습니다.
“시민사회와의 접촉을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실무자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아름다운재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도 솔직하게 짚었습니다.
“똑똑하고 배움이 많은 실무자 이미지가 떠올라요. 거기에 더해 우리 삶의 현장, 시민사회의 현장, 불평등이 만연한 현장을 잘 이해하는 경험이 쌓이면 좋겠습니다. 기부금을 왜 모으려고 하는지, 그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시각이 길러지면 좋겠어요.”
지원단체들을 문서로만 보지 말고 현장을 자주 다니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업무 로테이션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한 자리에만 있으면 조직에도 개인에게도 도움이 안 되니, 장기적으로 3~5년 주기로 로테이션을 하는 것도 방법이겠죠.”

“나에게 나눔은 일상입니다”
“나에게 나눔은 ○○○이다”를 완성해달라는 재단 인터뷰의 시그니처 마무리 질문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습니다.
“얼마 전 지인이 15년 전 한국여성재단의 ‘100인 기부릴레이’ 인터뷰 글을 보내줬는데, 그때도 ‘기부는 일상이고 생활이다’라고 답했더라구요.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표현은 ‘나눔’으로, 마음은 그대로, 그 ‘일상’은 제주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민사회 활동가에서 모금기관의 살림꾼으로, 다시 제주의 활동가로 이어져 온 김연순 이사의 이력은 그 자체로 ‘나눔이 일상’이라는 증거입니다. 서울과 제주 사이, 이사회와 사무국 사이에 놓인 거리를 좁혀가는 일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사무국에 소개해주고 싶은 책이 있는지 묻자, 은유 작가의 ‘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을 추천했습니다. 급식 노동자, 청소 노동자, 요양보호사, 타투이스트 등 열일곱 명의 노동자를 인터뷰한 이 책에서, 요양보호사 강석경 님의 이야기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손길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가 내가 아플 때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돌봄’과 ‘존엄한 죽음’을 위해 애쓰는 요양보호사 강석경 님과의 인터뷰는 돌봄의 의미, 그리고 요양보호사 노동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는 글이더라고요. 그저 마음이 저릿저릿하고 뭉클합니다.”
누구의 손길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사회와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는, 같은 곳을 향한 이야기 같습니다. 세상을 떠받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연대하는 것. 아름다운재단이 놓지 말아야 할 것을, 김연순 이사는 이 책으로 다시 건네고 있는 건 아닐까요?
글 운영관리팀 두은정 매니저
사진 김권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