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역사활동가로 변신하는 직장인 P의 이중생활

공익사업팀 임주현 매니저

2026.07.27

읽는 시간 0분

어린왕자가 여행하며 만난 여러 모양의 별들처럼, 사람들도 저마다의 생각과 삶을 품고 살아간다. 나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각자의 이야기를 품은 하나의 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곁에도 반짝이는 별 하나가 있다. 그 별에서 중요한 하나의 키워드는 ‘역사’이다. 바로 내 친구 주헌의 이야기다.

분열된 광장에서 시작된 질문

왜 하필 ‘역사’일까? 긴 해외생활을 하며 그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처럼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정도 깊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귀국후 마주한 한국 사회의 모습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 농성을 하는 한편 바로 옆에서는 이를 조롱하는 듯 보이는 먹방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같은 역사를 두고도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다. 특히 근현대사에 대한 해석 차이가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회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역사활동가의 활동무대 덕수궁

첫 관람객을 만나기까지 10개월의 여정

그러던 중 경복궁에서 역사해설가로 활동하던 어머니의 권유로 ’우리궁궐지킴이‘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궁궐지킴이’는 시민단체 ‘한국의재발견’이 진행하는 활동이다. 미래 세대에 물려 줄 국가유산을 알고, 찾고, 지켜갈 수 있도록 1999년 이래 500여명의 자원활동가들이 참여하여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등 주요 궁궐을 비롯해 종묘, 사직단, 환구단 등 다양한 문화유산에서 해설과 보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궁궐지킴이’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참가자는 자비로 3개월간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후에도 수개월의 실습과 평가를 거쳐야 비로소 해설 활동자격이 주어진다. 선배의 해설을 10회 참관한 후 직접 해설안을 구성해서 검증받는 과정도 포함된다. 2025년 1월 면접에 합격해 2월부터 교육을 시작한 그는 10월 25일이 되어서야 첫 관람객을 만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격주 토요일마다 덕수궁에서 해설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보수는 없다. 오히려 단체 연회비와 의상 준비 비용 등 적지 않은 개인 부담이 따른다.

10개월 만에 손에 쥔 자격증과 수료증

왜 덕수궁일까?

그가 ‘우리궁궐지킴이’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나의 첫 반응은 솔직히 “왜?”였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닌데 귀한 주말을 내어 봉사를 한다고?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궁궐 가이드 정도로 생각했기에 그의 열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자신의 활동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자부심이 느껴졌다.

 궁금한 마음에 어느 토요일 덕수궁을 찾았다. 두루마기와 중절모 차림으로 나타난 그의 해설을 들으며 덕수궁을 함께 걸었다. 나는 고궁을 좋아하지만, 솔직히 덕수궁은 늘 어딘가 애매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창덕궁처럼 자연과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고, 경복궁처럼 웅장한 위엄이 느껴지는 것도 아닌 동서양 건축이 뒤섞인 ‘퓨전’ 같은 공간 말이다.

 많은 궁궐 가운데 그는 왜 덕수궁을 선택했을까.

“대한제국은 실패한 제국이었지만 그 실패 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덕수궁은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할 때 갈 수 있는 안식처 같은 곳이라 생각해요.”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 3.1운동의 역사적 무대가 된 곳이다ⓒ궁능유적본부

지워진 황제의 흔적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는 청나라 중심의 사대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대한제국이 독립 주권 국가임을 대내외에 선언한 사건이었다. 이후 ​광무개혁을 추진하며 자주적 근대화를 시도했다.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은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종을 ‘무능하고 나약한 군주’로 프레임을 씌웠다. 이러한 인식은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역사학계와 대중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시대의 한계 속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외교적·정치적 수단을 동원해 저항했던, ‘비극적인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군주’로 재평가 되고 있다.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곳곳에 ‘황제’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물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이 쌍용답도다. 답도(踏道)는 궁궐 정전으로 오르는 중앙 계단에 새긴 부조 조각으로, 왕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상징한다. 다른 궁궐과 달리 덕수궁 답도에는 황제의 상징인 쌍용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마모가 심한 탓에 중화문 앞 쌍용답도의 경우 용의 꼬리 일부만 간신히 확인할 수 있다.

“이 답도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제가 어렸을 때 고궁에 놀러 올 때마다 답도에서 미끄럼을 탔거든요.”

중화문 앞 훼손된 쌍용답도 

황제의 상징이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한일병합 이후 일제는 덕수궁 전각 대부분을 철거했다. 원래 100여 동에 이르던 건물 대부분이 사라졌고, 빈터에는 잔디밭과 화단이 들어섰다. 황궁의 정치적 상징성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였다. 광복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덕수궁은 오랫동안 소풍과 사생대회의 장소로 활용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야 문화재 보존 의식이 높아지면서 대한제국 황궁으로서의 가치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대한문 앞에서 시작된 함성

어떤 부재는 존재보다 강한 메세지를 발화한다. 고종의 죽음이 그랬다. 1919년 고종의 승하 이후 덕수궁 대한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3.1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이 대목을 설명하며 대한제국은 황제의 나라였기에 ‘만 년을 사시라’는 뜻의 황제에게만 올리는 축원 ‘만세’가 독립운동의 외침으로 이어졌다는 배경을 덧붙였다. 고종이 생을 마감한 함녕전 앞에서 그는 관람객들과 함께 3·1 운동을 기념하며 “대한민국 만세”를 외친다. 그 순간 역사는 책 속의 문장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는 살아있는 기억이 된다.

근대식 제복과 전통 제복 황룡포를 입고 있는 고종황제의 어진

중화전 앞에 설 자격

덕수궁의 중심 전각인 중화전 앞에서 그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과거 이곳에 설 수 있었던 사람은 몇 명의 당상관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곳에 설 자격이 있을까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답을 이어갔다.

“지금은 국민이 주권을 가진 시대입니다. 우리 모두 중화전에 오를 자격이 있습니다.”

덕수궁의 중심 전각 중화전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덕수궁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정관헌이다. 전통 한옥 구조에 서양식 난간을 더한 독특한 건물. 그는 그곳에서 대한제국의 실험정신을 읽는다. 케이팝의 정수가 깃든 공간이라는 그의 설명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반면 가장 어두운 공간으로는 중명전을 꼽는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극의 현장이다. 대한제국은 결국 실패한 제국으로 역사 속에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 정신은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를 거쳐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그의 말대로 ‘대한’제국의 실패는 끝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기틀이 되었다. “알면 다시 보인다”는 말처럼, 그의 해설을 따라 걷는 덕수궁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가왔다. 그의 활동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장미를 위해 들인 시간

주말 몇 시간 역사해설로 세상이 뭐가 달라지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해설을 들은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며 대부분의 내용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꾸준히 이어간다. 그 활동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역사에 제대로 관심을 갖게 된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단단한 역사의식을 가진 시민이 된다면 그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마치 서서히 태어나는 과정과도 같다. 어떤 가치와 방향을 마음에 품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다르게 빚어진다. 토요일 오후, 그는 덕수궁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곳에서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라 역사활동가로 다시 태어난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그 꽃을 위해 들인 시간이야.”

어린왕자의 친구 여우의 말처럼 그의 삶에서 바른 ‘역사의식’에 대한 열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된 것은 그것을 위해 기꺼이 쏟아 부은 시간과 노력 때문이었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드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살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그를 좀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역사활동가로 관람객과 만나는 시간
 공익사업팀 임주현 매니저
사진 역사활동가 직장인P

목록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