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보라고 만든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1%나눔팀 한혜정 매니저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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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개합니다. 소설 하나, 연극 하나, 애니메이션 하나 그리고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사업 하나. 제 소개가 마음에 든다면 꼭 한 번 찾아보세요. 소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 훌륭한 안내자를 찾아드릴 테니 AS 요청하시길!

저는 책과 싸웁니다

책을 험하게 읽는 편입니다. 얌전히 읽을 때도 있습니다, 줄도 안 긋고. 문제는 마음에 안 들 때인데요, 크게 X표를 치거나 가끔 찢기도 하고, 여백에 볼펜으로 반박글을 휘갈겨 쓰기도 합니다. 책과 싸우는 겁니다. 승률은 좋은 편입니다. 책은 말대꾸를 못 하니까요.

모든 구석이 마음에 드는 책은 드물다보니 대부분의 책에는 나름의 표식이 있지만, 제 책장에 새것처럼 깨끗한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여름비』. 하지만 이 책은 중고서점에 팔 수가 없습니다. 뒷표지에 볼펜 글씨로 빼곡하거든요. 그날의 싸움은 뒷표지에서 벌어졌다는 뜻이죠. 상대는 옮긴이의 말이었습니다. “필연적으로 망가질 수밖에 없는 한순간에 대한 찬가”, 이 말에 화가 났습니다. 이건 책에 대한 설명도, 감상도 아닌 당신의 허무일 뿐이야!

📖 내 맘대로 작품 소개 ① 『여름비』마르그리트 뒤라스 작, 백수린 역, 미디어창비 (2020)학교에 안 가겠다는 아이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뒤라스의 다른 소설은 좋아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대 없이 처음 몇 장을 넘기는데... 이상했습니다. 내가 뭘 읽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뭔가를 느끼고 있는 건 분명했습니다. 언젠가 나도 느꼈지만 말이 되지 못했던 것들이 여기 적혀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그냥 따라갔습니다. 이 책을 통해 어릴 적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들"과 재회할 수 있었습니다.

객석에 어른이 이렇게 많다니

『여름비』만이 아닙니다. 저는 청소년 보라고 만든 이야기라면 소설이든 연극이든 애니메이션이든 찾아다닙니다. 저 혼자만의 취향인 줄 알았는데, 아닌 거 같더라고요. 지난달 연극 <노란달>을 보러 방문한 명동예술극장 객석에는 어른, 어른, 어른 뿐인 거 같았습니다. 포스터와 홈페이지에는 “청소년극”이라고 쓰여있었지만 말이죠. 또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성인 독자가 하도 많아서 출판사가 성인판 표지를 따로 만들었답니다. 이쯤 되면 취향 아니라 현상 아닐는지.

🎭 내 맘대로 작품 소개 ②〈노란 달〉데이비드 그레이그 작, 토니 그래함 연출, 국립극단 (2026 재공연) ‘나 자신을 믿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여기 저기서 많이 듣습니다만… 청소년기에 이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 경우엔 되는 대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우여곡절을 겪다가 어느 순간 내가 꼭 붙들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 지켜야 하는 것, 따라야 하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순간이 되어서야 자신을 그나마 좀 봐줄만한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거 같습니다. 경사진 
빈 무대에 의자 두 개. 어찌보면 우울하고 심각한 사건 사고가 계속 벌어지는 거 같은데… 공연이 하고 있는 말은 저 무대처럼 단순하고 소박해 보입니다. <노란 달>은 ‘내가 바라는 나’가 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삼킨 질문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릴 때 저는 아주 수다스러운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차분해서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른스럽다고요. 저를 칭찬한 어른들은 몰랐던 거겠죠, 아이는 말하지 않을 때조차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있는지. 왜 그래야 하지? 정말 그런가? 그럼 행복한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그 질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자라면서 요령이 늘었습니다. 몰라도 적당히 넘어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좋다, 싫다를 점점 말하지 않게 됐습니다. 나중에는 삼킨 질문이 있었다는 것도 잊었습니다. “침묵은 점점 가팔라지고, 위험해진다.(『여름비』)”

청소년 보라고 만든 이야기를 좋아하는 어른들은 뭔가를 찾고 있는 거 같습니다. 저마다의 바람 속에서 이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청소년 보라고 만든 이야기’라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이건 나이로 가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꿀꺽 삼켜 버렸던 어린 질문을, 잊은 줄 알았던 어린 질문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다섯 살이 된 조카와 수다를 떱니다. 얘는 제 말을 듣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뭐? 그게 뭐야? 왜? 그러니까 왜? 행복해? 얘한테 대답을 하려고 말을 고르고 고르다 보면, 닳아있던 단어가 새 단어가 됩니다. 마치 ‘청소년 보라고 만든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느껴지는 상쾌함 같은 게 밀려옵니다.

🎬 내 맘대로 작품 소개 ③〈영상연에는 손대지 마!〉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2020)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세 학생 이야기. 만화같은 현실을 사는 아사쿠사, ‘그리다’를 통해 ‘나’가 되어가는 미즈사키, ‘꿈만 같아’를 ‘꿈같은 현실’로 오게 하는 카나모리. 아사쿠사와 카나모리가 함께 나오는 모든 장면을 사랑합니다. 
점과 선이 형태를 갖추고, 납작하던 그림이 걷고 달리다 날아 오르고, 움직임에 이야기가 입혀져 한 생명이 되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마치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이 “이름”을 되찾은 것 같아 쾌감이 느껴집니다.

줄거리가 아직 없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소개하려는 건, 제가 사랑하게 될 이야기인데, 줄거리를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막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제가 애정하는 아름다운재단의 청소년 공익활동 지원사업입니다, 하핫. 청소년이 우리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그 토대를 마련하는 사업입니다. 올해는 이 사업이 새로운 이름 하나를 얻었습니다, 봄·바람.

2026 청소년 공익활동 지원사업 공모 포스터

2026년 7월 현재,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된 단체들이 함께할 청소년들을 만나며 활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줄거리는 앞으로 청소년들이 직접 쓰게 됩니다, 각자의 질문과 상상력을 가지고. 저는 그 이야기들이 재밌기를 바랍니다. 그 상상만으로 벌써 힘이 납니다. 그러니 고백하자면, 제 응원은 순수하지 않습니다. 저의 재미를 위한 응원이기도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들이 내 삶에 응원을 보내오듯, 나의 동료 시민인 청소년들이 써내려갈 봄바람 같은 이야기에 응원을 보냅니다.

 1%나눔팀 한혜정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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