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 365일 – 프롤로그: 우리 집으로 초대합니다

공익마케팅팀 김태형 매니저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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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 365일' 연재를 시작하며
'무박 365일'은 IMF 사태로 온 가족이 집 없이 전전했던,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최근 일정한 주거공간없이 모텔·찜질방·PC방·친구 집 등을 전전하는 노숙위기청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잘 곳이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가 노숙 상태임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가정폭력 등으로 집을 나온 경우가 많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중장년 위주로 설계된 노숙인 시설이 있지만 청년들이 적응하기는 쉽지 않죠.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찾기도, 드러내기도 어렵습니다. 당사자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청년들이 집이라 믿고 살아가는 곳들에 살아봤던 사람으로서, 현실을 조금이라도 생생히 전하고 싶어 여행기를 꺼내봅니다.

‘무박 365일’. 주거위기에 놓인 이들, 특히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캠페인 네이밍 회의 때 떠오른 이름이다. 흔히 ‘가출’이라며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청년들의 ‘집 떠난 삶’에, ‘여행’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해주고 싶었다. 우리네 인생을 흔히 여행에 빗대기도 하니까. 

그런데 주거위기에 놓인 이들은 비유가 아니라 진짜 여행을 하고 있다. 간절히 원했을 수도, 결코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여행을. 제대로 머무를 곳 없는 ‘무박’의 여행이자,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365일’ 내내 이어지는 여행. 그 자체로 찬란해야 할 젊은 날의 여행이 이들에겐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이 두 단어로 전하고 싶었다.

‘무박 365일’은 치열한 팀 논의 끝에 최종 캠페인명으로 선정되진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 이름을 오랫동안 곱씹고 있다. 어린 시절, 나와 우리 가족 역시 그런 ‘여행’을 해왔기 때문이다. 벌써 20여 년 전이다. 그땐 주거위기청년 같은 말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그러니까 대충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 가족은 ‘주거위기 가족’이었다. 가엾게 여길 필요는 없다. IMF 외환위기 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가족이 많았다. 우리 아빠는 친구의 빚보증을 잘못 섰고, 우리 집 모든 가구와 가전제품에는 빨간 딱지가 붙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의 원하지 않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모텔, 찜질방, 단칸방, PC방, 폐건물에 가까웠던 낙후된 집까지. 집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곳에서 우리 가족은 참 오랜 기간을 살았다. 그마저도 없어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각자 살 곳을 찾아야 했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친구 집에 얹혀 지낸 기간도 꽤 된다. 

이번 캠페인 기획을 위해 공부하면서, IMF도 아닌 지금 이 시대에도 집 없이 살아야 하는 청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에 살아봤던 사람으로서, 더 마음이 쓰였다.

더 마음 쓰이는 건, 그 청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는 사실이다. 가정폭력, 가족 간의 갈등, 가정해체 등의 이유로 집을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숨어야 하거나, 마음의 문이 꾹 닫혀있을 수밖에 없다.

위 이미지는 AI로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캠페인 기획 일을 하다 보면, 당사자의 이야기가 얼마나 큰 힘을 지니는지 느낀다. 그런데 주거위기청년들의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더 많이 전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캠페인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어린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앞으로 몇 편에 걸쳐, 마땅한 집 없이 떠돌던 어린 시절 나의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지금의 주거위기청년들이 집을 나와 살게 되는 여러 곳들 중, 나도 살아봤던 곳들을 하나씩 골라 그곳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점이 좋고 나빴는지,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내가 느낀 그대로 전할 생각이다.

물론 나도 많은 주거위기청년들처럼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 그래서 다 드러내지는 못할 것이다. 20여 년 전의 이야기라 지금의 현실과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낡은 이야기가, 주거위기청년의 삶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 작은 이해가 되고, 혹여나 이 글을 읽을 주거위기청년에게 “어린 시절 주거위기를 겪었던 한 아저씨도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꽁꽁 싸매두었던 내 어린 시절의 집 이야기는 얼마든지 꺼낼 수 있다.

어린 시절, 정말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이 있다. 우리 집이 너무 부끄러워서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하지 못했던 말. 그 말로 이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여러분을 우리 집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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