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 365일 ④ 이런 집이라도 살아야 한다

공익마케팅팀 김태형 매니저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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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 365일' 연재를 소개합니다
'무박 365일'은 IMF 사태로 온 가족이 집 없이 전전했던,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최근 일정한 주거공간없이 모텔·찜질방·PC방·친구 집 등을 전전하는 노숙위기청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잘 곳이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가 노숙 상태임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가정폭력 등으로 집을 나온 경우가 많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중장년 위주로 설계된 노숙인 시설이 있지만 청년들이 적응하기는 쉽지 않죠.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찾기도, 드러내기도 어렵습니다. 당사자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청년들이 집이라 믿고 살아가는 곳들에 살아봤던 사람으로서, 현실을 조금이라도 생생히 전하고 싶어 제 어린 시절 여행기를 꺼내봅니다.

하교 후, 경남대학교 앞 정류장에서 260번 버스를 기다린다. 유난히 배차시간이 긴 버스였다. 노선에 구불구불한 길이 많아 탈 때마다 머리가 아팠다.  밤밭고개를 넘어, 우산마을을 지나, 현동을 가로질러, 묘촌이라는 작은 마을까지 넘어서고 난 뒤에야 나오는 동네. 하수처리장이 있어 대부분 살고 싶지 않아 했던 그 동네, 덕동. 그곳에 우리 집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집 없이 여러 곳을 전전하다 덕동에 자리를 잡았다. 하수처리장 바로 옆에 있는 관사였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가 하수처리장으로 발령받은 덕분에 그곳에서 싸게 지낼 수 있었다. 

갈 곳이 없어 살았지만 ‘하수처리장 악취’라는 이미지 때문에 아무도 관사에 살려 하지 않았다. 3층 정도 되는 건물이었는데 1층이었던 우리 옆 집에 한 가족이 살 뿐, 2, 3층은 비어있었다. 사는 사람이 없으니 곧 철거할 거라는 말이 항상 돌았고, 그런 건물이 잘 관리될 리 없었다. 

사실상 폐건물에 가까웠다. 어두운 밤, 우리 집을 보고 있으면 사람보다 귀신이 사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벗겨진 페인트, 여기저기 쳐진 거미줄, 깜빡거리는 입구 조명 주위로 몰려든 하루살이. 가끔 친구들과 놀다가 어둑한 저녁에 귀가하게 되면, 집에 들어가는 게 무섭기까지 했다.

위 이미지는 AI로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건물 뒤쪽은 키 큰 잡초들이 무성했다. 정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거기 사는 뱀이 베란다 창문에 붙어있었던 적도 있었으니까. 언제 한 번은 너무 더워서 창문을 열어놓고 깜빡 잠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었고 형광등을 켰을 때 식겁했던 적이 있다. 온갖 크고 작은 벌레들이 방 안으로 날아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뱀이나 이름 모를 벌레들이 아니더라도 이미 집 안에는 우리 가족과 함께 사는 불청객들이 있었다. 쥐. 그리고 바퀴벌레. 우리 집엔 그들을 잡기 위한 쥐덫과 바퀴벌레약이 항상 놓여 있었다. 그보다 무서웠던 건 곰팡이였다. 닦아도 닦아도 다시 피어나는 곰팡이들을 나중에는 그냥 방치해 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집에 어떻게 살았을까 싶지만, 집이 없어 모텔이나 찜질방에 살아봤던 나로서는 그 정도 집이어도 감사했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아빠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아빠의 마음이 느껴진 날이 있었다. 아빠가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던 날이었다. 아빠 표정이 유난히 어두워보였다. 우리 남매는 거실에 서서 아빠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아빠는 우리 남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양손으로 우리를 끌어안더니 펑펑 울기 시작했다. 언제나 강했던 아빠가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날은 하수처리장이 아닌 창원의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은 날이었다. 그 말은 더 이상 이 관사에서 살 수 없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열악한 집이라도 그곳에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고, 그 집에서마저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어 집을 나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의 심정을 상상하고 싶은 분들에게, 자식들에게 한없이 엄하고 무뚝뚝한 경상도 아버지마저도 자식들을 끌어안고 세상 서럽게 울게 만들 정도의 막막함이라고 표현한다면 그 심정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 주거위기청년 이슈에 대한 김 매니저의 생각
벗어나고 싶다고 벗어날 수 있는가
우리 아빠가 ‘하수처리장 직원’이라는 ‘자격요건’을 잃게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더 이상 관사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청년주거지원 정책에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요건이 있다. 일정한 소득, 서류상 독립가구 요건 등이다. 노숙위기청년들은 가정폭력으로 인해 집을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님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세대 분리, 주소지 등록 등을 꺼린다. 이로 인해 주민등록이 말소 되기도 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정한 소득, 서류상 독립가구 등의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것이다. 가장 정책이 필요한 청년들은 정작 청년주거지원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현실이다.

그래서 많은 노숙위기청년들은 거처로 ‘지옥고’를 선택한다. 지옥고란,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의 첫 글자를 합친 단어로, 청년들의 대표적인 주거공간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이제는 불안정하고 열악한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상징하는 말로도 쓰인다. 지옥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많지만, 지옥고가 사라진다면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름다운재단 지원자 중 곰팡이 핀 반지하 집에서 살아가던 청소년 부모가 있었다. 그들이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 그런 집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아이를 입양보내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를 키우고 싶어 10달이란 긴 시간을 지켜낸 부모가 집 때문에 아이와의 헤어짐을 선택해야 했다는 이야기 속에서, 지옥고는 벗어나고 싶다고 벗어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인구주택총조사를 통해 2005년부터 이미 지옥고 문제는 드러나 있었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옥고로 대표되는 주거위기는 과연 개인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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