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 365일 ② 벌거벗겨진 채로 살아가는 기분

공익마케팅팀 김태형 매니저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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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 365일' 연재를 소개합니다

'무박 365일'은 IMF 사태로 온 가족이 집 없이 전전했던,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최근 일정한 주거공간 없이 모텔·찜질방·PC방·친구 집 등을 전전하는 노숙위기청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잘 곳이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가 노숙 상태임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가정폭력 등으로 집을 나온 경우가 많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중장년 위주로 설계된 노숙인 시설이 있지만 청년들이 적응하기는 쉽지 않죠.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찾기도, 드러내기도 어렵습니다. 당사자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청년들이 집이라 믿고 살아가는 곳들에 살아봤던 사람으로서, 현실을 조금이라도 생생히 전하고 싶어 제 어린 시절 여행기를 꺼내봅니다.

누구나 ‘내 방’을 갖고 싶어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무엇을 해도 상관없는 나만의 공간. 두 번째 우리 집은 아주 넓고 따뜻한 곳이었지만, 내 방은 절대 있을 수 없었다. 친척들과 함께 살거나 형제가 많았냐고? 가족은 아니지만 우리 집에는 늘 몇 십 명의 사람들이 있긴 했다.

우리 집은 ‘찜질방’이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매일 커다란 탕에서 목욕을 할 수 있었고. 새로운 잠옷을 받을 수 있었고. 몸을 지질 수 있는 여러 테마의 방들이 있었고. 동전만 넣으면 할 수 있는 컴퓨터도 있었고. 매일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꽤 자주 맥반석 계란과 식혜도 먹을 수 있었다.

가장 맘에 들었던 건 열쇠로 잠글 수 있는 나만의 사물함이 있다는 것이었다. 삼남매에 할머니까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내 방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나는 이상하게 그게 그렇게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말 괴로웠다. 24시간 내내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있어야 한다는 것은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지낸 찜질방에는 TV가 세 개 있었지만,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는 때는 거의 없었다. 채널을 좀 돌리려고만 하면, “아빠 안 잔다!”하며 리모컨과 채널을 사수하는 아빠 같은 아저씨들이 수십 명은 있는 꼴이었다.

TV는 정말 작은 문제 중 하나일 뿐이었다. 누가 들을까 말을 조심하고, 누가 볼까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듣고 싶지 않은 걸 듣게 되고, 보기 싫은 걸 보게 되는 것. 그런 상황이 24시간 내내 지속된다는 것은 정말 괴로웠다.

위 이미지는 AI로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괴로움이 극에 달할 때마다 나는 아이스방을 찾았다. 여러 테마방 중 가장 사람들이 덜 찾는 곳.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위해서 추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든 누군가 들어올 수 있다는 두려움은 아이스방에 있을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찜질을 마치고 땀에 젖은 채 아이스방을 찾은 아저씨, 아줌마들이 들어올 때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후다닥 아이스방에서 나와야 했다. 아이스방까지 누군가 차지했을 때,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 화장실 한 칸밖에 없었다. 

나중에 커서 들은 얘기지만, 괴로움을 넘어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내 여동생이었다. 찜질방에 살았던 시간들이 너무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어딜 가도 아저씨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꼭 기분 탓만은 아니었던 것이 찜질방에 지내면서 고성이 오가거나, 경찰까지 오는 일도 몇 번 있었다. 울고 있는 여자와 여자친구인 줄 알고 끌어안았다며 변명하는 남자. 중재하는 경찰과 수근대며 구경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에 있던 사춘기 소녀에게 그곳이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 날도 와야 하는 ‘우리 집’이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찜질방에서 지내며 문득 내 물건들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사물함이 생겼다는 사실은 내 신발이, 내 옷이, 내 가방이 좋아할 일이지, 내가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사물함에 들어가 문을 꼭 잠그고 딱 1시간만이라도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찜질방에 산다는 건 찜질복을 입고 있어도, 목욕탕에서처럼 벌거벗겨진 채로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 주거위기청년 이슈에 대한 김 매니저의 생각
문을 잠그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기쁨
집을 뜻하는 영단어 ‘house’와 ‘home’. house는 보통 ‘건물, 즉 물리적 구조물로서의 집’을 뜻하고, home은 ‘편안함, 소속감, 추억’ 같은 정서적 의미가 담긴 단어이다. 많은 노숙위기청년들이 살고 있는 모텔, 찜질방, PC방 등은 house를 흉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 home은 될 수 없다. 노숙위기청년들은 공공장소나 모텔,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면서 씻고, 잠자고, 옷을 갈아입는 기본적인 생활 행위를 할 때도 타인의 존재를 의식해야 했던 경험이 있다. 노숙인 시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40-60대 노숙인들이 많은 노숙인 쉼터는 어울리기 쉽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청년들을 받지 않고, 어쩌다 입소할 곳을 찾아도 일명 ‘터줏대감’이라고 불리는 노숙인들의 텃세와 차별 때문에 금방 시설에서 나오게 된다.

아름다운재단 노숙위기청년 지원사업의 한 지원자는 본인 취향의 책상이나 조명을 구매하고 사용한 경험이 정신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했다. 개인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나, 문을 잠그고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쁘다고 했다.

잘 곳이 있다고 스스로가 노숙자는 아니라고 했던 청년들이, 비로소 집이 생겼다는 기쁨과 안도감을 느꼈다는 것. 아름다운재단 주거위기청년 지원사업의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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