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 365일 ③ 그저 앉아 있거나, 엎드려 있거나

공익마케팅팀 김태형 매니저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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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 365일' 연재를 소개합니다

'무박 365일'은 IMF 사태로 온 가족이 집 없이 전전했던,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최근 일정한 주거공간 없이 모텔·찜질방·PC방·친구 집 등을 전전하는 노숙위기청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잘 곳이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가 노숙 상태임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가정폭력 등으로 집을 나온 경우가 많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중장년 위주로 설계된 노숙인 시설이 있지만 청년들이 적응하기는 쉽지 않죠.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찾기도, 드러내기도 어렵습니다. 당사자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청년들이 집이라 믿고 살아가는 곳들에 살아봤던 사람으로서, 현실을 조금이라도 생생히 전하고 싶어 제 어린 시절 여행기를 꺼내봅니다.

진짜 묵을 곳이 없어진 날이 있었다. 돈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아빠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잡힌 아빠의 출장 때문이었다. 아빠 없이 여동생과 나, 미성년자 남매 둘이서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계속 묵고 있었던 모텔도 찜질방도 숙박은 어렵겠다 했다. 하는 수 없이 아빠는 우리더러 이틀만 PC방에 있으라 했다. 나는 속으로 “야호!”를 외쳤다.

게임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라면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아, PC방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PC방에서만 주어지는 특별한 아이템이나 혜택도 있고, 컴퓨터는 최신식이라 버벅거리지도 않는다. PC방에서 게임을 하면 뭔가 게임을 더 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PC방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오다니. 들뜬 마음으로 컴퓨터를 부팅했다. 축구 게임 4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3시간, RPG 게임 1시간을 내리 했다. 그동안 먹은 것이라곤 컵라면 하나, 탄산음료 한 캔이 전부였다.

게임을 할 땐 왜 이렇게 시간이 잘 가는지. 어느새 열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새벽쯤, 자세가 불편해 잠에서 깼을 때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PC방이란 공간이 그랬다.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명확하지만, 대신 내가 취할 수 있는 자세는 앉고, 책상에 엎드리는 것뿐이었다.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화장실을 가거나, 먹을 걸 살 때뿐이었다.

위 이미지는 AI로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기분이 멍했다. 낮에는 사람도 많고 게임에 집중한다고 잘 들리지 않던, 마우스 딸깍이는 소리, 키보드 소리, 컴퓨터에서 나는 소음이 시끄럽게 느껴졌다. 모니터 불빛은 눈부셨고, 아저씨들이 피는 담배 냄새는 지독했다.

교복에도 담배 냄새가 배어버린 것 같았지만, 내일까지 씻을 수도,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었다. 얼마 자지 않았지만,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게임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재밌던 게임이 하루 만에 질려버릴 줄이야. 아니, 집도, 그렇다고 숙박을 할 수 있는 곳도 아닌 곳에서의 생활이 하루 만에 질려버린 게 맞는 것 같았다.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잠깐 밖으로 나왔다. 새벽 번화가는 조용하고 쌀쌀했다. 걸을 수는 있었지만,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정처 없이 걷다가 나는 다시 PC방 건물 앞에 섰다. 어른 없이는 잘 곳 하나 구할 수 없던 내게 참 감사한 곳이라 생각했다.

다시 자리에 앉았고,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어제와는 달랐다. 게임이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또 몇 시간을, 모니터 속에서 축구선수가 되었다가, 영웅이 되었다가 했다.

그러나 모니터 밖에서는 그저 앉아있는 사람이었다. 밤에는 다시 엎드린 사람이 될 예정이었다.

📽️ 주거위기청년 이슈에 대한 김 매니저의 생각
'24시간 무인 매장'에서도 살아가는 청년들노숙위기청년들이 경험한 정서적 어려움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수면 장애’와 ‘무력감’이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내 경험상 머물고 있는 곳의 영향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길어야 2-3일이었지만 PC방에서 지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모텔, 찜질방에 미성년자만 숙박하는 것이 불가했기 때문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PC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가장 괴로웠다. 애초에 숙박을 목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잠을 푹 잘 수 없었다. 컴퓨터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좋든 싫든 하루 종일 게임을 해야 했고, 그러다 보면 무기력한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PC방은 노숙위기청년들이 임시 거처로 선택하는 곳이다. 저렴한 이용 금액, 24시간 운영, 청년들에게 익숙한 공간이라는 이유 등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PC방이나 코인노래방도 22시 이후 청소년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있을 곳은 더더욱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그래서 노숙위기청년들의 임시 거처 중 하나로 ‘24시간 무인 매장’이 등장한 건 더 마음이 아팠다. PC방에 갈 돈마저 없거나, 어린 시절의 나처럼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갈 곳이 없어서 선택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PC방은 내 자리라도 있지만, 24시간 무인 매장은 그렇지도 않다. CCTV가 항상 돌아가기 때문에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쫓겨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마 잠은 더 설쳤을 것이며, 정서적 불안도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부모의 가정폭력 등으로 인해 집을 나온 청소년들은 어쩌면 가정폭력이라는 위험을 피해 더 큰 위험으로 도망쳐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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