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 365일 ⑤ 나는 기생충이었다

공익마케팅팀 김태형 매니저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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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 365일' 연재를 소개합니다
'무박 365일'은 IMF 사태로 온 가족이 집 없이 전전했던,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최근 일정한 주거공간없이 모텔·찜질방·PC방·친구 집 등을 전전하는 노숙위기청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잘 곳이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가 노숙 상태임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가정폭력 등으로 집을 나온 경우가 많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중장년 위주로 설계된 노숙인 시설이 있지만 청년들이 적응하기는 쉽지 않죠.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찾기도, 드러내기도 어렵습니다. 당사자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청년들이 집이라 믿고 살아가는 곳들에 살아봤던 사람으로서, 현실을 조금이라도 생생히 전하고 싶어 제 어린 시절 여행기를 꺼내봅니다.

“당분간 각자 알아서 좀 살아야겠다…” 아빠는 할머니와 우리 남매를 모아 놓고 말씀하셨다. 우리 가족이 더 이상 함께 살기 힘들다는 그 무거운 얘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 하다니… 아빠의 주머니 사정은 이제 모텔에서도, 찜질방에서도 살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 같다. 

할머니는 대구에 계신 큰아버지댁으로 갔고, 아빠는 어디로 가는지 말씀해주시지 않았다. 길에 남은 나와 동생에겐 땡전 한 푼 없었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정처 없이 걷던 우리 남매도 어떤 갈림길에서 각자의 길을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친구들밖에 없었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아무리 아들의 친한 친구라 해도, 다 큰 남자 고등학생을 식구로 들이는 건 친구 가족들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수능을 앞두고 있는 나이라 친구와 함께 살면 공부에 소홀해질 것을 우려하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와 친구 가족 입장에서 이런 저런 이유를 생각했지만, 사실 내 마음이 불편했던 게 가장 컸던 것 같다. 가족과 함께 사는 친구들은 후보에서 제외했다.

아주 친한 친구들은 아니었지만, 번뜩하고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내가 살았던 마산은 경상남도에서는 큰 도시였다. 시골마을의 학생들이 학업을 위해 오는 경우도 꽤 많았다. 우리 고등학교에도 함안군, 의령군 등에서 일명 ‘유학’을 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은 학교 근처 조그마한 방을 구해 자취를 했다. 그 친구들이라면 한 번 말을 꺼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주광(가명)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아주 친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착하고 재밌고, 외모도 귀여워 내가 정말 좋아했던 친구였다. 자취를 하는 친구들 중에서 그 친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내 사정이 이래서 당분간 좀 얹혀 지낼 수 있겠냐고 묻는 건 쉽지 않았다. 몇 번이고 문자를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고심 끝에 적은 장문의 문자를 보내고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 그리고 온 답장. “그래!” 주광이는 흔쾌히 같이 지내자는 답장을 줬다. 

같이 지내면서 주광이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었다. 자취를 하는만큼 알뜰했고, 아버지가 목사셔서 그 영향을 받아 목사가 꿈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우리 둘 다 노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비 오는 날 밤, 주광이와 DMB TV로 음악 프로그램을 보며 흥얼거렸던 기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함께 지낸지 몇 개월쯤 지났을까. 우리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다. 주광이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일 때면 괜히 눈치가 보였다. 내가 처음 집에 왔을 때는 집에서 주광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언제부턴가 자주 집을 비웠다. 주광이가 먼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 때문이라는 것을.

주광이 입장에서 나는 기생충 같은 존재이지 않았을까. 자신의 식사나 간식을 나누어줘야 하고. 안 그래도 좁은 원룸의 공간을 나눠써야 하고. 전기세와 수도세 같은 것들도 나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나왔을 것이다. 계약과 달리 왜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이 있냐고 집 주인이 눈치도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주광이에게 친구가 아니라 짐이었다.

위 이미지는 AI로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여전히 우리 둘 사이의 대화가 없던 어느 날. 주광이에게 먼저 말했다. 나가겠다고. 주광이는 아니라고, 더 있어도 된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짐을 챙겨 나오는 날 내 마음에는 주광이와의 추억보다 더 큰 미안한 감정들이 쌓였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또 다른 친구집이었다. 그 친구가 누구더라도 주광이 집을 나올 때와 다르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나는 지웅이(가명)라는 친구집으로 갔고, 내가 예상했던대로 지웅이 집에서도 몇 개월 만에 무거운 마음으로 나오게 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주광이, 지웅이와는 아주 멀지도, 그렇다고 아주 가깝지도 않은 관계로 지내고 있다. 생일 같은 날에 간혹 연락을 하지만, 친구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는 못했다. 가진 것 없던 그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을 내게 내어준 두 친구. 더 많은 시간이 흐르기 전에 친구들을 만나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해야겠다.

📽️ 주거위기청년 이슈에 대한 김 매니저의 생각
기댈 곳 없는 노숙위기청년

청소년기, 그리고 청년기에 친구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모두 안다. 노숙위기청년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청년들이 전전하는 곳 중 가장 대표적인 곳으로 친구 집이 언급되는 건, 그들에게 친구가 얼마나 편하고, 의지가 되는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가족을 떠나 집을 나온 노숙위기청년들에게 친구란 어쩌면 가장 소중한 인간관계일지 모른다. 실제로 노숙위기청년은 가족 및 친인척보다 친구와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활발하다.

안타깝게도, 한 연구에 따르면, 노숙위기청년의 가족 보호망 약화 또는 단절이 단순히 가족 관계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관계망의 축소와 고립으로 확장되는 양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즉, 친구, 직장 동료 등 다른 사회적 관계 역시 점차 약화되거나 단절된다는 것이다. 노숙위기청년의 인터뷰를 보면, 친구와 동거를 하며 생긴 무거운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친구들하고도 연락이 다 끊겼고 지인들하고도 끊겼으니까 사실상 혼자죠.”
“제가 항상 친구들한테 얻어먹을 수도 없는 거고, 그러면서 사실 조금씩 인간관계도 멀어지고 점차 고립되어 갔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친구 집에 얹혀 지내기도 했는데, 계속 옮겨 다니다 보니 관계가 오래 유지되기가 어렵더라고요.”

반복적인 지역 이동과 임시 거처 생활은 안정적인 관계 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고시원 거주, 쉼터 이용, 일용직 노동 등 불안정한 생활
조건은 일정한 지역과 생활 기반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으며, 이는 또래 관계나 직장 관계의 지속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쉼터 생활의 규칙과 통제 역시 기존 관계 유지에 제약을 주는 요인이다. 가족 관계의 단절과 사회적 관계망의 약화로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대상이 거의 없는 상황에까지 놓일 수도 있는 노숙위기청년. 노숙 상황은 단순히 살 곳이 없는 것을 넘어 기댈 곳조차 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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