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상속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상속은 자산이나 재산, 가족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단어였습니다. 실제로 상속은 오랫동안 ‘누구에게 무엇을 얼마나 남길 것인가’라는 물음으로만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영상 한 편을 기획하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분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겠다는 결심으로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일터 ‘우리마을’을 만든 김성수 성공회 주교님인데요. 청장년 발달장애인 50여 명이 친환경 콩나물을 기르고, 커피박(커피 찌꺼기)으로 연필을 만들며 월급을 받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마을’이 불이 난 적이 있습니다. 다 타버렸는데 놀랍게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금방 재건이 됐죠. 숫자 상으로 3500명이 되는 분들이 도와주셔서 콩나물 공장을 다시 만들 수 있었어요. 큰 용기를 내서 우리를 도와주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있는 거죠. 이익을 개인이 나눠갖지 말고 후배를 위하고 어려운 것을 위한다면 아마 그 사회는 좋은 그런 세상이 되지 않을까” – 김성수 성공회 주교
제가 기획을 맡은 영상의 주제는 사회적상속이었습니다. 상속 앞에 ‘사회적’이란 낯선 말이 붙었지만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자산을 가족이 아니라 사회로 상속한다는 의미인데요. 김성수 주교님을 포함해 수많은 어른들이 힘을 모아 ‘사회적상속’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상속’이 아니라 ‘사회적상속’인가
고도성장을 거치며 한국 사회의 자산 불평등과 세대 간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상속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가족 중심의 자산 이전, 부의 축적이라는 틀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유산기부’ 규모 역시 작은 편입니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유산기부는 전체 기부 규모의 1~3% 수준에 그칩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은 온전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닙니다. 내가 받은 교육, 내가 살아온 시대적 환경, 사회 안에서 쌓아온 기회와 신뢰는 누군가 먼저 만들어 놓은 기반 위에서 싹 튼 것들입니다. 이에 아름다운재단은 ‘상속’이라는 단어를 가족 안에 가두지 않고, 사회로부터 받은 삶의 일부를 다음 세대와 사회에 다시 연결하는 개념으로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마침 일부 시민사회 영역을 중심으로 사회적상속에 대한 논의와 실천이 다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다음 세대의 공익활동과 시민사회가 지속가능하게 이어지려면 그 기반이 필요한 때이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상속의 취지에 공감한 각계 123인이 마중물로 1억 2천만 원의 사회적상속기금을 조성해주셨고, 아름다운재단도 사회적상속 캠페인 ‘이어받은 세상, 이어갈 사람에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캠페인은 우리가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이어받으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합니다. 지금 살아있는 동안의 생전기부와 이후의 유산기부를 하나로 잇고, 그렇게 이어진 나눔을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적 기반으로 함께 남기자는 것, 사회적상속 캠페인이 제안하는 새로운 기부문화입니다.
다음세대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사회적상속은 ‘얼마를 남길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기 과실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가 있습니다. 당장 탐스럽게 열린 열매를 따서 모두 나눠주는 것도 좋지만,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면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씨앗을 뿌릴 사람들도 필요할 것이고요.
사회적상속기금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활동하는 청년 세대의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쓰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후위기, 고령화, 농업의 소멸 등 여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이 걱정없이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더 많은 분들이 힘을 더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회적상속기금의 첫 걸음, 출범식
지난 8월 13일, 서울 교원투어 콘서트홀에서 사회적상속기금의 첫 걸음인 출범식을 진행했습니다. 기금 출연자뿐만 아니라 청년들도 자리해주셨는데요.
개회사와 환영사로 문을 연 뒤, 사회적상속 캠페인 대표 영상을 함께 보고 사회적상속기금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 마음을 모아주신 기금출연자 한 분 한 분을 소개하고, 대표로 기금을 제안해주신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표제안자 중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제일 약한 사람을 돕는 것이 정의”라며 “지금 어려움을 겪는 다음 세대를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고,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는 “삶을 마감한 이후에도 나를 키워준 사회에 뜻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눈에 띈 순서는 ‘세대를 잇는 대담’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공익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전제 아래 기성세대와 다음 세대가 한자리에 마주 앉아 세대를 넘어 동료가 되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예순이 넘어서야 내가 지닌 것은 나 혼자 만든 것도 나만의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청년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고 싶었습니다.”- 사회적상속기금을 출연한 윤정숙 ‘사회적상속마중물’ 운영위원
“선배 세대가 청년들이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함께하고 싶고 닮고 싶은 어른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다음 세대로 출범식에 참여한 김소연 청년
사회적상속은 물려주고 받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바통을 이어받아 함께 달리는 이어달리기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 시간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익숙한 세대 담론을 넘어, 사회적상속이 결국 세대 간 연대라는 사실을 자리에 함께한 모든 분들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출범을 알리는 자리라기보다 사회적상속이라는 개념이 이제 막 하나의 실천으로 걸음을 떼는 자리에 가까웠습니다. 아름다운재단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분들께도 사회적상속 캠페인은 이제 시작입니다.
이어받은 세상, 이어갈 사람에게
사회적상속 캠페인은 이제 시작입니다. 생전기부에서 유산기부까지, 한 사람의 삶 전체에 걸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이어받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사실을 조금 더 자주 떠올리는 것,
그리고 그중 일부를 다음 세대에 다시 이어주는 것,
사회적상속 캠페인이 시민 여러분께 건네고 싶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남기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