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전경

아름드리 그늘 같은 마을 쉼터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안에 자리한 법동종합사회복지관은 오래된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를 연상케 했다. 아름드리 고목이 드리운 너른 그늘 밑으론 뜨거운 볕을 피하거나 무료를 달래고픈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라, 대개의 당산나무들은 할아버지․할머니로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마을 쉼터가 되곤 한다.

정혜원 팀장을 따라 3층에 위치한 사무실까지 올라가는 동안, 층층마다 마주치는 복지관 이용자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1층에서 한담중인 어르신들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아이들의 왁자한 웃음소리를 맞닥뜨리는 식이다.

법동종합사회복지관 정혜원 팀장

법동종합사회복지관 정혜원 팀장

“보시다시피 법동종합사회복지관은 영구임대아파트 내에 위치해, 소통과 나눔으로 성장하는 행복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노인, 아동, 장애인,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북한이탈주민 등 다양한 계층에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며, 그 중에서도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한국어교육은 저희 복지관의 특화된 사업으로 손꼽을 만합니다. 또한 결혼이주여성과 인근 경찰서가 자원봉사팀을 결성한다거나, 북한이탈주민과 복지관 내 봉사팀이 독거 어르신들을 위한 밑반찬 나눔 봉사활동을 함께 진행하는 등, 타 기관 및 봉사단체와 연계한 활동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례관리팀을 총괄하는 정혜원 팀장은 다양한 사례관리 대상자 중 유독 청소년들과의 기억이 짙다. 방황하던 아이들이 학교와 가정으로 돌아오는 변화의 과정을 지켜봤고, 꿈을 찾아가는 그들의 여정을 응원했으며, 보물처럼 간직한 손 편지도 대부분 그 아이들에게서 받았다.

공부방

청소년과의 특별한 인연은 2013년부터 담당해온 아름다운재단의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이 주요한 계기가 됐다. 법동종합사회복지관은 2007년부터 주거지원사업을 신청하여 지금까지 총 16세대에 대한 지원을 이끌어냈는데, 올해, 정혜원 팀장이 관리하고 있는 주거지원 세대만 모자․부자․조손가정 3세대다. 복지관과 이웃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및 주민센터와 연계하여 주거지원 대상자를 모집하고 발굴하며, 선정된 세대는 복지관의 사례관리 대상자로 등록해 주거지원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경제적 지원과 상담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다.

“주거지원사업을 신청하며 발굴한 케이스가 많아요. 학교도 안 나가고 종일 놀이터만 떠도는 중학생이 있었어요. 백혈병을 앓는 누나에 아버지까지 갑작스레 암 진단을 받아, 긴급한 위기 상황이었죠. 주거비 지원을 포함해 그 가정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다각도로 연결했는데, 이를 계기로 아이가 마음을 잡았어요. 따뜻한 나눔의 손길에 고립무원의 절망감을 떨쳐낸 거죠.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 힘을 얻었다고, 제게 손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어요. 그 친구가 벌써 고3인데, 요즘 행복한 고민 중이에요. 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주는 대학에 추천서를 써줄 모양인데, 그게 두 곳이더라고요. 어딜 갈지 선택만 남은 거죠.”

카톡으로 행복한 고민을 의뢰해온 아이의 이야기를 전하며, 정혜원 팀장은 마치 친동생의 일인 양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언젠가는 사례관리 대상자 중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한 아이가 나오길, 그래서 아파트 입구에 ‘축! 합격’으로 시작되는 큼지막한 현수막 하나 걸 수 있기를 꿈꾼다는 그녀다.

삶의 고비를 넘어 희망의 고삐를 쥐다

정혜원 팀장이 주거지원 신청서를 작성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문구가 있다. ‘한 줄기 희망’이란 표현이 그것. 오늘도 정 팀장은 그 한 줄기 희망이 깃든 가정을 방문했다. 올해로 2년째 주거지원을 받고 있는 민지(가명)네 집이다. 12평 작은 집은 살뜰한 집주인이 노상 쓸고 닦아 반짝반짝했다. 책상 하나 들이고 누울 자리 겨우 남는 작은 방이지만, 민지의 공부방도 따로 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민지는 할머니와 둘이 산다.

할머니는 뇌병변 3급 장애에 위암수술까지 받아 병약하지만, 부모의 이혼과 재혼과정 속에 상처받은 손녀를 지극한 사랑으로 품었다. 존재만으로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두 사람에게 위기가 닥친 건 2년 전. 갑자기 민지 아버지의 수입이 잡혀, 50만원 정도 나오던 수급비가 5만원으로 줄어들었을 때다. 어떻게든 손녀와 함께 살 보금자리를 지키고자, 임대료와 관리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할머니는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에 선정되며 한시름을 놨다.

사례관리자와 클라이언트가 손을잡고 있다

“민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복지관에서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무료 안마서비스에 참여하고 계신데, 안마를 받기 위한 요가매트 세팅과 뒷정리를 도맡아하세요. 자신이 받은 도움을 어떻게든 갚고 싶다는, 어르신 뜻이 감사할 따름이죠. 민지도 이렇듯 마음 곧은 조모 밑에서 예쁘게 잘 크고 있어요. 해마다 효행상을 받고, 반에서 5등 안에 들만큼 공부도 잘한다고 할머니가 얼마나 자랑을 하시는지 몰라요. 관리비 고지서를 제출하러 복지관에 오실 때마다 제 손을 꼭 잡아주시는데, 어르신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뭉클하죠.”

주거지원을 통해 민지네 집과 인연을 맺은 지도 2년째. 할머니와도 많이 친해졌지만, 정혜원 팀장은 깍듯이 예의를 갖춘다. 시간 약속을 정하면 정확히 지키고, 편한 사이라 하여 무람없이 말을 놓는 경우도 없다. 신뢰는 기본을 지킬 때 쌓인다는 사례관리 원칙 때문이다.

정 팀장의 사례관리 노하우로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대상자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있다. 사례관리 대상자가 준비해야 할 서류라든가 역할을 문서화하여 알려줄 뿐 아니라, 자신이 진행하는 일정도 투명하게 공유한다. 대상자와 역할을 나누고 약속을 정확히 이행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가령, 어떤 지원사업을 신청할 경우, 대상자는 과정 속에 자신이 포함되었기에 더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참여하게 되고,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이해한다. 노력의 과정을 공유했기에 결과도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사례관리자와 클라이언트가 손을잡고 있음

“주거지원사업을 수행하는 동안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문제는 지원사업이 종료된 이후부터죠. 지원 기간이 최대 2년까지다 보니, 암 치료라든가 학업처럼 2년 안에 끝나지 않는 문제들이 포진한 가정의 경우 아쉬움이 커요. 물론 더 많은 이들이 기회를 나누자면 기간 제한은 필수적이지만, 대상자의 특수한 사정을 감안한 연장 방안을 모색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또한 가구 내 맏자녀 나이 제한에 묶여, 어린 동생들이 여럿인 경우에도 지원 대상자가 되지 못하는 실질적 소년소녀가정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주거지원사업을 진행해온 지난 4년. 위급한 고비를 넘김으로써 추락하지 않고 궤도에 다시 진입하는 별들을, 정혜원 팀장은 숱하게 목도했다. 기실, 월 임대료와 관리비를 지원받아야 할 가정형편이란 막막하기 짝이 없다. 생존의 마지노선이다. 이때, 삶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보장해주는 주거지원은 삶의 고비를 뛰어넘어 ‘한 줄기 희망’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게 했다. 작은 집이어서 가능한, 작은 집이어서 절실한 햇볕 한 줌의 기적이었다.

글 고우정ㅣ사진 조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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