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산, 그리고 바다의 품속에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다. 자연의 이치 속에 상생하는 생태계를 살펴볼라치면 새삼 존재의 가치를 깨우치고, 생명을 경외하는 심성도 자라난다. 그것은 우리의 상처받은 인격을 치유할 뿐더러 잃어버린 감성을 회복시키기 마련이다.
가은지역아동센터는 그 사실를 각별히 인식했다. 따라서 아름다운재단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자연생태학습을 기획했다. 그중에 ‘씨앗폭탄’이 주제였던 7월 3일의 자연생태학습은 단연 인상 적이다. 가은지역아동센터 그룹학습실에 모여든 아이들은 한결같이 생기로운 표정으로 이택한 복지원예사에게 집중했다.
“여러분, 씨앗이 싹트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죠?”
궁리에 잠기는 모습도 잠시 그예 아이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햇빛’, ‘물’, ‘바람’…… 영특한 정답들. 그 사이로 뭉클한 한마디가 모두의 마음에 걸렸다.
“사랑, 사랑이 필요해요.”
자연생태가 가르친 인성과 감성
문경시 가은읍은 두메산골이다. 폐광의 여파를 간직한 탓에 지역경제는 침체되어 있다. 교육환경과 문화공간도 조성되지 않아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방치되는 실정이다. 그 가운데 가은지역아동센터는 아이들의 보금자리로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누구보다 이영숙 시설장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오롯이 힘쓰는 중이다.
“우리 센터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19명이 출석합니다. 조손가정이나 다문화가정의 자녀들도 함께하고 있어 다각도로 신경 쓰려 하죠. 특히 아이들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인 만큼 문화체험활동이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매달 영화를 관람하고, 매주 스포츠댄스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론 부족했다. 문화체험활동은 다양할수록 유익하다. 그래서 이영숙 시설장은 아름다운재단의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 지원사업’을 통해 월 2회 총 8회 커리큘럼의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주제는 ‘옛길사랑, 나라사랑, 환경사랑’. 자연생태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학습하는 문화체험활동이다.
“아이들이 시골에서 성장해서 자연생태랑 친근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디어 탓인지 그것을 체험한 경우가 드물더라고요. 아무래도 자연과 소통하는 장이 필요했습니다.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자연의 규칙과 질서를 생각하는 법이거든요. 동식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감수성도 풍부해져 표현법도 늘어나죠. 그사이 올바른 인성도 뿌리 내리고요.”
‘옛길사랑, 나라사랑, 환경사랑’은 그야말로 흥미롭고 교육적인 문화체험활동이었다. 실제로 ‘아픈 지구를 살리자’라는 1차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은 쓰레기의 유해성을 이해하고 스스로 분리수거를 실천했다. 아울러 ‘동네 한 바퀴’라는 2차 프로그램 당시 아이들은 나뭇가지와 이파리를 엮어 감각적으로 액자를 제작했다. 이젠 ‘씨앗폭탄’ 프로그램 차례였다. 아이들의 참석률은 100%. 센터아동자치회장인 수연이도 꽤 기대하는 눈치였다.
“첫 번째 시간에는 쓰레기를 종류별로 구분한 분리수거표를 완성했고요. 지난 번 시간은 나무껍질을 줄로 묶어 손수 액자를 만들었어요. 저학년들은 도와주면서 함께했어요. 오늘은 ‘게릴라 가드닝’이라고 씨앗뭉치를 던지면 꽃들이 피어난대요. 색다른 경험일 것 같아요(미소).”
‘씨앗폭탄’이 터뜨린 행복과 기쁨
바야흐로 가은지역아동센터 그룹학습실 탁상에 둘러앉은 아이들의 눈빛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곧 ‘씨앗폭탄’ 프로그램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연생태학습을 전담하는 이택한 복지원예사가 방문하자 사뭇 반가워했다. 이택한 복지원예사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즉 그는 아이들이랑 친근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별칭 이름표 만들기’를 오프닝 순서로 시작했다. 별칭은 자연생태가 소재였다. 그가 이른 봄철에 다른 꽃보다 부지런히 예쁜 꽃을 피워내는 ‘생강나무’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아이들은 ‘별’, ‘달’, ’강아지풀’…… 정겨운 이름을 표에 써서 가슴에 붙였다.
그렇다면 이제 학습에 들어갈 차례였다. 이택한 복지원예사는 생명의 근원인 씨앗의 중요성을 알려주고자 우선 멸종하는 천연식물에 대해 설명했다. 그것은 환경오염이 주원인이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환경오염의 주범은 사람이라며 불쑥 대답했다. 아이들은 진실을 이미 알고 있다.
다음은 씨앗을 관찰하는 시간이다. 이택한 복지원예사의 인도에 따라 아이들은 여러 가지 씨앗을 만지고, 흔들고, 던지며 감각적으로 체험했다. 아울러 현미경으로 다양한 씨앗을 들여다보면서 생명의 경이로움을 감지했다. 사실 자그마한 씨앗이 완연한 꽃과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나는 과정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이택한 복지원예사는 아이들 역시 그렇다고 짚어준다.
“여러분, 씨앗이 이렇게 작지만 나중에는 엄청나게 자라나죠. 종류에 따라서 제각각 모습도 달라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저마다 특별한 존재예요. 가능성이 무한해요.”
진정성이 묻어나는 목소리다. 아이들도 슬며시 자연생태학습에 녹아들고 있다. 이제는 학수고대하던 ‘씨앗폭탄’을 제조하는 순서였다. ‘씨앗폭탄’은 미관이 지저분한 공간을 미화시키기 위해 환경주의자들이 던졌던 씨앗 섞은 흙뭉치다. 그야말로 ‘게릴라 가드닝’을 위한 필수적 아이템이다. 아이들은 꽤 상기된 얼굴로 대야에 씨앗을 뿌렸다. 이어서 이택한 복지원예사의 설명대로 흙과 비료를 5대5 비율로 뭉쳐 너도나도 동그랗게 ‘씨앗폭탄’을 완성했다.
드디어 대미를 장식하며 ‘씨앗폭탄’을 야외에 투척할 순간이다. 하지만 하늘에선 야속하게 장대비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활동하기가 한결 수월한 햇볕 쨍한 내일로 연기하려 했지만, 아이들의 순전한 마음을 외면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장소만 변경해 가은지역아동센터 둘레에 ‘씨앗폭탄’을 떨어뜨리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비는 아랑곳없이 신나게 ‘씨앗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그쯤 아이들의 얼굴엔 분명히 행복이 머물러 있었다.
빗속에서 아이들이 함박웃음 짓고 ‘씨앗폭탄’을 던지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3학년 미연이와 4학년 재영이에겐 최근 가장 재미있던 순간이다. 5학년 동급생인 승호랑 도영이도 웃음 띠며, 다음엔 스포츠랑 요리도 체험하고 싶다고 얘기한다.
가은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문화체험활동과 자연생태학습으로 감수성이 풍부해지고 있다. 이영숙 시설장의 교육관대로 규칙과 질서가 체화되는 중이다. 그것은 앞으로 5회 더 진행될 ‘옛길사랑, 나라사랑, 환경사랑’ 프로그램이 무척 기대되는 이유기도 하다.
이제 아이들은 일정을 매듭짓고 그룹학습실로 돌아와 걱정 없는 얼굴로 간식을 나눠먹고 있다. 하지만 호우 탓에 ‘씨앗폭탄’에서 새싹이 움틀지는 의문이다. 단,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쏟는다면 반드시 꽃은 피어나리라 확신한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랑으로 돌보면 사막에서도 꽃은 만발한다. 그것은 사람도 똑같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사랑으로 자라난다. 불현듯 ‘씨앗이 싹트는 요소’에 대해 대답하던 앳된 음성이 마음속에 울려 퍼진다.
“사랑, 사랑이 필요해요.”
글 노현덕 ㅣ 사진 김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