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해외연수부문’(이하 해외연수)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역량강화 및 해외 네트워킹을 위한 해외기관 및 현장 탐방, 국제회의 참석 등을 지원합니다. 2017년 7개팀(개인 1팀, 그룹 6팀) 17명 활동가가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시민사회운동 사례를 경험하고 돌아왔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의 레고님은 반세기 넘도록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을 받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활동가는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고통 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을 목격하고, 현지 활동가 및 주민과의 만남을 통해 향후 연대 활동을 모색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대한 대응 활동 확장 및 연대

2016년 3월 31일, <서울인권영화제>는 인터섹슈얼(intersexual)을 소재로 이스라엘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제3의 성> 상영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이 결정은 이스라엘 영화 한 편에 대한 단순한 거절이나 거부가 아닌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하는 점령과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차별에 공모하는 문화 창작물에 대한 우리의 보이콧 행동을 촉발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를 계기로 <서울인권영화제>는 이스라엘에 대한 BDS활동(보이콧(Boycott), 투자 철회(Divestment), 제재(Sanctions)의 약자로 이스라엘에 대항해 2005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비폭력저항운동)에 함께하게 되었으며 이번 해외연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및 이스라엘의 ‘핑크워싱’(본인의 소신과 상관없이 표 등을 위해 성소수자 옹호 발언을 하는 행위)에 대한 대응을 확장하는 활동이었다.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에는 공항이 없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 가려면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수도인 텔아비브에 있는 공항을 통해야만 한다. 이스라엘은 BDS활동을 불법화하고 있어서 BDS활동을 하는 활동가는 입국장에서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나는 비행기에서 내린 순간부터 공항 밖으로 나갈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점령의 현실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감추어진 입국장을 무사히 통과하여 공항을 빠져나왔다. 공항은 온통 이스라엘 국기에 있는 육각별 모양인 다비드 방패 모양과 그 색깔인 파란색과 흰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는 6색 무지개로 이스라엘 국기를 가득 채우는 핑크워싱의 한 방법에 이미 지쳐 있었던 터라, 과도하게 강조된 흰색 바탕의 파란색 육각별과 흰색 바탕의 파란색 히브리어들에 어지럼증을 느꼈다. ‘아. 내가 정말 이스라엘에 왔구나!’

– 이스라엘의 ‘핑크워싱’ 대응 활동

중동/아시아 지역에서 최대 규모와 참가자(약 20만 명)를 자랑하는 텔아비브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중동 유일의 성소수자 친화 국가’를 자처하는 이스라엘의 자긍심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 퍼레이드는 이스라엘의 ‘핑크워싱’ 전략을 상징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 단체들은 BDS활동의 일환으로 텔아비브 프라이드 자체를 보이콧 한다. 나는 인권활동가이면서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텔아비브 퍼레이드가 ‘핑크워싱’임을 알리는 운동단체 <핑크워시 이스라엘>과 함께 행진에 참여했다. 우리는 “점령에 자긍심은 없다(There’s no pride in occupation)”고 쓰인 분리장벽 모형을 들고 프라이드 행진 대오를 막았다. 곧바로 경찰들과 몇몇 프라이드 참가자들이 장벽을 든 활동가들에게 밀려서 이 액션을 오래 지속하진 못했다.

퍼레이드 이후 <핑크워시 이스라엘>을 조직한 활동가, 팔레스타인 여성 성소수자 인권단체 <아스와트(Aswat)> 활동가, 여성-평화운동을 하는 인권단체 활동가와의 만남을 통해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들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팔레스타인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지형이나 역사, 다른 인권운동과의 연대활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특히 팔레스타인 여성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가는 많은 감독이 ‘핑크워싱’에 반대하며 <2017 텔아비브 LGBT 영화제>를 보이콧한 사건을 전하며 국제연대에 있어서 BDS운동의 중요성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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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의 현실을 그대로 담은 분리장벽으로 행진을 막아섰다. 분리장벽에는 “점령에 자긍심은 없다(There’s no pride in occupation)”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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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라말라에 있는 성소수자는 색출하고 협박하지만, 이스라엘에 있는 성소수자는 포용한다”는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을 그대로 보여주는 선전물을 들고 있다.

점령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점령지로 들어가려면 장벽과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 교통수단이 없어서 돌아 돌아가는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거나 이스라엘 국적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야 한다. 버스를 타고 내린 뒤 걸어서 검문소를 통과하는 여행자가 거의 없기도 하고, 시간도 매우 불규칙해서 택시를 타고 나사렛(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기독교 커뮤니티가 있는 곳)에서 서안지구 제닌으로 들어갔다.

검문소 정책이 그때그때 달라서 어떤 때는 검문을 심하게 하는데 이번에는 장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들이 외국인인 우리에겐 여권을 보이라 하고 간단히 방문 목적을 묻는 것 외엔 특별히 제재하지 않았다. 운전자에 대해서도 여러 신분증을 요구했지만 통과가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운전자가 이스라엘 쪽으로 나갈 때는 까다롭다고 한다.

– 문화 저항의 도시 제닌

제닌은 문화 저항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아나의 아이들>에 나오는 극장 <프리덤 씨어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 속, 어린이들이 연극을 통해 분노를 저항 정신으로 전환하던 그 극장을 방문하여 연극을 관람하기도 했다.

이번 방문은 라마단 기간과 겹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해가 진 후 더욱 생기 있는 거리를 볼 수 있었다. 라마단은 이슬람교에서 행하는 금식 기간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낮 동안 굶고 해가 진 뒤에는 사원에서 울려 퍼지는 아잔 소리에 맞춰 화려한 저녁 식사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낮에 금식하며 일도 하지 않고 학교도 가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밤거리를 누볐다.

이렇게 라마단 동안 모두 서로 축복하고 축제 분위기가 계속되지만, 서안지구 도시인 제닌에서는 자주 정전이 되고, 뉴스를 통해 본 가자 지구는 하루 2시간 전기가 들어오는 등 사람들의 생활 속 고통은 계속됐다. 서안지구의 모든 건물 옥상에는 커다란 물탱크가 있다.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로 들어가는 상수도를 통제하고 있어 이 물탱크에 물을 채우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물이 끊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제닌에서 지낸 어느 날 저녁, 씻는 도중 물이 모자라 거품을 수건으로 적당히 씻어내고 나오기도 했다.

– 유대인 불법 정착촌으로 도로가 폐쇄된 쿠프리깟둠

매주 금요일마다 집회를 하는 마을 중 <팔레스타인평화연대>가 정기적으로 결합한다는 쿠프리깟둠이라는 마을에 갔다. 이곳은 7년 가까이, 바로 마을 옆에 지어진 불법 유대인 정착촌 때문에 주요 도로가 폐쇄되어 있다. 나블루스에서 주요도로로 달리면 20분도 안 걸릴 거리를 이 폐쇄 때문에 20분을 더 돌아서 가야 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이스라엘군에 도로 봉쇄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집회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불법 정착촌을 마구 늘려가며 팔레스타인 마을 간의 도로를 끊어버린다. 또한, 가옥을 파괴하고 점점 더 많은 땅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점유하며 이 면적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서안지구 안에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분리·고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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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군인 차량이 마을로 더 이상 진입할 수 없게 타이어를 태우고 있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큰 돌 또한 이스라엘군 차량의 진입을 저지하는 일종의 바리케이트다. 연기 너머로 쿠프리깟둠 마을과 완전히 붙어있는 유대인 불법 정착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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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이 들어있는 고무 총알을 사람에게 겨냥하여 마구잡이로 쏘는 이스라엘군을 향해 쿠프리깟둠 주민이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 유대인 정착촌이 시장길을 막아버린 헤브론 올드시티

헤브론 올드시티는 가장 악명 높은 유대인 정착민들이 바로 2층에, 혹은 바로 옆 거리에 사는 곳에서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그 폭력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도심의 가장 큰 시장은 유대인 정착민들이 만들어 놓은 철조망과 벽에 의해 막혀버렸다. 이스라엘 군인은 항상 높은 곳에서 총을 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시장 골목에서는 시원하게 뚫린 하늘을 보기 어려웠다. 촘촘한 철조망으로 되어있는 지붕이 있었는데, 이는 유대인 정착민들이 건물 위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아래로 쓰레기를 던져 위협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 이스라엘로 잘못 알고 있는 대표적인 팔레스타인 기독교 도시, 베들레헴

베들레헴은 흔히 이스라엘로 잘못 알고 있는 대표적인 팔레스타인 기독교도시다. 가이드를 통해 여러 성지를 방문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곳 역시 유대인 불법 정착촌에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한 언덕에서 반대편 언덕의 거대한 유대인 정착촌을 봤을 때, 서안지구 곳곳에 이토록 암처럼 생겨나고 증식하는 정착촌에 대한 국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제네바 협약에서는 점령국가가 피점령지에 자국 시민들을 이주시키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제네바 협약 가입 당사국이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을 항상 지지하는 미국마저 유대인 정착촌을 규탄하지만, 정착촌은 최근 10년 사이 더욱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정착촌 증가에 맞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부수거나, 건축 허가를 내어주지 않는 상황 역시 증가하고 있다.

베들레헴은 8m 높이의 거대한 분리장벽에 그려진 그래피티로 유명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 장벽 앞에 영국 활동가가 세운 ‘Walled Off Hotel’ 전시관은 팔레스타인 역사와 이들이 처한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카페로 차려진 곳이 영국 제국주의 시절의 분위기를, 현대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 물품들로 구현돼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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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8m 분리장벽에 그려진 그래피티

영화 <올 리브 올리브> 상영, 영화 출연 가족 등 현지인들과의 만남

나블루스에서 <올 리브 올리브> 상영을 준비하며 <탄위르>라는 현지 문화운동 단체와 연이 닿아 여러 활동가를 알게 되었고, 상영회도 하게 됐다. <탄위르>의 도움으로 영화에 출연한 몇 분과 나블루스 주민들이 모여 상영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이 작품이 <서울인권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국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데에 참석한 사람들이 기뻐했다. 1시간 반의 런닝타임이 현지 기준으로 조금 길다고 들었지만, 자리를 뜨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영화 상영 후 세바스티아로 이동해 <올 리브 올리브> 작품의 내레이터이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던 위즈단 가족들을 만났다. 영화를 보고 이들에 대한 친근감이 형성되어 아는 사람을 만나는 듯했다. 아이들은 영화 촬영 후 몇 년 새 부쩍 자랐으며, 당시에는 세상에 없었던 셋째 아기도 만난데다, 심지어 배 속에 네 번째 아이도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늘에서 쉬지 않고 라마단의 땡볕에서 뛰어놀았다. 위즈단의 남편 니달은 세바스티아에 찾아오는 이스라엘 관광객을 호위하기 위해 이스라엘 군인들이 오곤 한다고 얘기했다.

세바스티아는 세례자 요한의 무덤, 로마 시대 원형경기장이나 거대한 기둥 등 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어 관광객을 유인한다. 2017년 초에는 한국인 관광객도 수천 명 다녀갔다고 한다. 매우 작은 마을이지만 유적지는 이스라엘이 거의 다 이스라엘 군정이 통치하는 C 지구로 지정해 버려서 이스라엘인들이 자주 출몰한다. 유적지는 대체로 가장 높은 곳 근처에 있지만, 세례자 요한 교회는 마을 한복판에 있고, 다른 유적들도 마을 안에 있다. 니달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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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문화운동단체 <탄위르>의 도움으로 영화 <올 리브 올리브>를 상영했다.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도시 및 마을

1948년 이스라엘이 세워지며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로 팔레스타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난민이 됐다. 그때 쫓겨나지 않고 남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현재 이스라엘 인구의 20%나 되지만 2등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50개 넘는 법이 팔레스타인-아랍인을 분리/차별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주택파괴 문제를 들 수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 소유권을 대부분 빼앗았고, 빼앗기지 않은 사람들에겐 건물을 지을 수 있는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 집을 파괴해 사람을 쫓아낸 마을 깔란사와

1월에 집이 대규모로 파괴된 깔란사와를 방문했다. 버스를 타고 힘겹게 찾아갔는데, 현지 활동가에 의하면 이 버스노선도 최근에 생긴 것이라고 한다. 몇 년 전까지는 가장 주요 도시인 예루살렘과 깔란사와를 잇는 버스가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깔란사와는 작은 마을이 아니다. 점점 도시가 커져서 인근 팔레스타인 마을과 자연스레 합쳐지게 될 것처럼 팽창 중인데, 이스라엘 정부가 이를 주택 파괴로 막고 있다.

이스라엘 내에서는 가장 대규모로 자행된 1월의 파괴는 열 한 가족의 집을 새벽, 잠깐 동안 다 부숴버렸다. 그 잔해들을 방문했다. 이 집들을 부수는 데 드는 비용도, 그리고 그 벌금도, 피해 가족이 부담해야 한단다. 더군다나 다들 대출 받아서 지은 집이라 대출금도 갚아야 한다.

땅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가족들이 결혼, 출산 등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이 늘어나 자신들이 소유한 땅 위에 집을 짓고자 건축 허가를 신청해도 허가를 이스라엘 당국이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허가를 받기 위한 절차에 드는 비용도 많고 기다리는 시간도 최소 5년으로 길지만 그렇게 돈을 쓰고 기다려도 허가를 받을 거란 보장이 없다. 그래서 그냥 집을 짓게 되면, 집이 다 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람이 살기 시작하는 순간 이스라엘 특수경찰부대가 와서 집을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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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란사와의 파괴된 주택. 구부러진 철골과 돌만으로는 이곳에 집이 있었다고 상상하기 어렵다.

– 젠트리피케이션 형식으로 팔레스타인 마을이 파괴되고 있는 아름다운 해안도시 아까

아까의 올드시티는 여전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이곳을 유대인 도시로 만들기 위한 시도가 젠트리피케이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를테면 유대인들이 이곳에 집을 사면 정부나 관계 재단에서 보조금을 준다. 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주택 보수에 대한 허가를 요청해도 당국은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그렇게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오래된 집에 살다가 건물이 무너져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관광지화 하겠다며 거대 호텔을 세우려고 하고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물들에 유대인 상점이 입점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팔레스타인 마을이나 도시를 밀어버리는 것은 올드 자파(텔아비브) 지역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이곳에는 과거의 모습을 지닌 아랍도시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상점들은 거의 모두 유대인들이 운영하고 있다.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임대료와 땅값이 올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더 이상 자파에 살기 어렵게 됐다. 그 과정이 현재 아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 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파괴된 기독교 마을 이크리트

이크리트는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 파괴했던 기독교 마을이다. 처음엔 이곳을 점령한 이스라엘군이 마을 주민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고 약속했다. 재판이나 국회의 정치인들을 통해 주민들이 돌아갈 권리가 있다는 게 인정됐는데도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몇몇 사람들이 교회에 기거하며 터를 지키고 있었다. 우연히 교회를 찾은 마을 주민을 만났는데, 이제 80살 가까이 된 그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어릴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고, 죽어서라도 이크리트에 묻히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점령의 목격자 되기 – 팔레스타인 연대 여행을 마치며

2017년 6월 8일부터 3주 동안 팔레스타인 연대활동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목격했다. 짧은 방문 기간, 교통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다양한 마을을 다니며 점령과 차별의 현실을 보려고 노력했다. 팔레스타인 점령지(동예루살렘, 서안지구, 이번에 가지 못한 가자지구)에서는 군사점령의 현실을, 이스라엘 내의 팔레스타인 도시 및 마을에서는 이스라엘 국적 팔레스타인 시민에게 가해지는 차별의 구체적 모습을 목격하며 팔레스타인 민중이 처한 현실을 볼 수 있었다.

해외연수를 통한 경험들을 내 활동영역에서 최대한 나눌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영화제 내부에서는 자원활동가와 함께 ‘핑크워싱’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국내 영화제들과 인권단체에 팔레스타인 연대활동의 일환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문화 보이콧 가이드라인 책자를 제작하여 배포하는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성지순례의 ‘성지’만으로, 아름다운 지중해변을 가진 나라로, 핑크빛 가득한 성소수자들의 천국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아름다움’으로 팔레스타인 민중의 투쟁을 가리고 있는 나라임을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다음 팔레스타인 방문에서는 아까의 무너진 집터에는 무엇이 생겨나 있을까. 다시 팔레스타인 사람이 사는 안전한 건물이 세워져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글ㅣ사진 레고(서울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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