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는 비정규직 산재 노동자의 산재보험 신청 접근성을 강화하고 재활 및 사회복귀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2019년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본격적인 사업 진행에 앞서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사업에 반영하고자 서울/인천/안산/울산/성남 5개 지역에서 현장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크고 작은 산업재해를 직접 경험한 노동자들과 현장 전문가들이 함께한 자리를 통해 아픈 것도, 다친 것도 쉽게 노동자 탓이 되는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 간담회에서 만난 이야기

사람들이 책상을 가운데 두고 둘러 앉아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천 건강한노동세상에서 진행한 간담회

 

“아픈 것도 모르고 일했어요”

박민철(가명, 50세)씨는 하청업체 용접사였다. 회사는 40명이 필요한 일에 20명을 투입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하루 10시간 이상 쫓기든 일했다. 종일 용접하던 손가락과 팔이 잘 펴지지 않을 정도였지만 묵묵히 일만 했다. 아이들 학원비에 아파트 대출금까지 한달 벌이가 절실했다.

사고가 있던 날도 업무량이 많아 급히 장비를 들고 이동 중이었다. 갑자기 크레인에서 내려오던 2.5톤의 철판이 그의 머리를 ‘탁’하고 쳤다.

“갑자기 뭔가 머리를 탁 치는 거예요. 주저 앉았죠. 처음엔 빠져나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근데 계속 내려오더라고요. ‘스탑! 스탑!’ 소리를 질러도 기계 소리에 파묻혀 아무도 못 듣더라고요. 결국 끝까지 내려와 목을 탁 누르고 마지막에는 등에서 뚝뚝 소리가 났어요. 말도 안나오고 숨도 안 쉬어졌죠. 속으로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어요. 순간 아이들 생각이 났어요. 우리 애들 어떡하지.”

산업현장에서 작업복을 입고 용접하는 노동자

사고가 나자 아이들 생각이 먼저 났다. “우리 애들 어떡하지.”

사고가 나자 구급차 아닌 트럭을 불렀다

현장에는 있어야 할 신호수도, 접근금지 표시도 없었다. 그나마 들고 있던 장비가 막아준 덕분에 철판이 바닥 끝까지는 내려오지 않아 목숨을 구했다.

“크레인 기사가 다 내려놓고 나서야 발견한 거에요. 사람들이 놀라 달려왔죠. 나는 죽겠다고 하고 등에서는 뚝뚝 소리가 났어요. 척추가 나간 거예요. 인상 쓰고 있는데 소장이 와서 하는 말이…(한숨) 총무가 ‘구급차 부를까요?’ 하니까 소장이 ‘포터(트럭) 불러라’ 그러더라고요.”

척추를 다친 그를 들것 없이, 동료 둘이 부축해 트럭에 실었다. 등 뒤에서 ‘뚝’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들은 소장이 “뼈가 제대로 들어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프고 정신 없는 와중에도 ‘하청업체 노동자는 이렇게 힘이 없구나’ 생각했다.

“대학병원에 가면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데 일하던 하청회사 지정 병원을 간 거에요. 거기서 엑스레이를 찍는데 그렇게 아파본 건 처음이었어요. 결국 MRI를 찍어야 한다고 다시 봉고차 타고 다른 시내 병원으로 갔어요. 산재를 은폐하려고 했던 거겠죠.”

그렇게 그는 사고 당일에만 작은 병원 세 군데를 전전했다. 이동은 모두 트럭이나 봉고로 했다. 자칫 척추 신경이 손상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들이었다. 다행히 신경을 다치진 않았다. 의사는 6대 조상이 도왔다며 놀랐다.

위험한 일은 하청에 몰아주면서 산재보험 처리는 훨씬 늦었다

회사에서는 입원한 그를 찾아와 매일 ‘산재보험’ 처리 대신 ‘공상’* 처리를 하자고 졸랐다. 회사가 곤란하다며 돈으로 회유도 했고, 은근히 힐난도 했다. 버텼다. 혹시 모를 후유증을 감당하려면 산재 보상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다.

산재보험을 신청했는데 두 달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같은 병실에 있는 정규직 환자들은 바로 받는 산재 처리가 자기만 안 되니 답답했다. 위험한 일은 하청 노동자에게 몰아주면서 산재 보험 처리는 훨씬 늦었다. 신용카드로 선결제한 병원비와 생활비 지급이 한 번에 몰렸다. 숨이 막혔다. 회사에 전화해 신문사에 고발하고 청와대에 청원도 넣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이틀 만에 승인이 떨어졌어요.”

박민철씨는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을 받기 위해 많은 경제적, 심리적, 물리적 고통을 떠안았다. 상황이 이러니 현실에서는 산재보험 신청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의산재경험이야기

“잘 안해주지 않아요? 산재보험?”

김민규(가명, 26세)씨는 횟집 주방에서 일했다. 화상을 입거나 손 베이는 일이 일상이었다. 돌아가는 믹서기 칼날에 오른손 검지를 다쳤을 때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피가 많이 나지만 않았어도 계속 일했을 거다. 병원에 가니 신경이 끊어졌다고 했다. 병원비는 개인 보험으로 처리했다. 산재보험은 생각도 못했다. 수술 뒤 최소 반년은 쉬어야 한다고 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일주일만에 출근했다.

“잘 안해주지 않아요? 산재보험? 그때 알았다고 해도 굳이 신청하지 않았을 거 같아요. 사장하고 껄끄러운 것도 싫고, 보상 받는다 해도 다시 그 가게에서 일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아파도 자기 손해다. 그런 마인드로 일하는 거예요.”

산재 보상을 받고 싶어도 못 받는 사각지대의 노동자도 많다. 송인철(가명, 27세)씨는 택배운송업을 한다. 운송만 하는 게 아니라 물류 상하차 업무를 같이 하기 때문에 사고가 빈번하다. 정해진 근무시간에 사업주 지시에 따라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일하지만 근로자의 권리는 인정받지 못한다. 산재보험도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가입해야 한다.

“저희는 하청의 하청을 받고 하는 일이라 사고가 나면 본사는 영업소에 말하라고 하고, 영업소는 ‘너희도 개인사업자다. 알아서 해라.’ 하죠. 그래서 저희는 아파도 자기 손해다. 다들 그런 마인드로 일하는 거예요.”

누군가에겐 접근 자체가 어려운 산재보험

분홍색 후드티셔츠를 입은 여자 노무사가 이야기 하고 있다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노무사

간담회에 참여한 노동자들 대부분 산재보험 보상의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직접 신청하는 일에는 난색을 표했다. 복잡한 절차에 대한 걱정과 사업주가 싫어할 거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활동가는 “산재 보상 신청을 하면 회사에 안 좋다는 인식이 강해 접근 자체를 포기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는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산재보험 제도에 접근하기 힘든 취약한 산재 노동자들의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산재 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사각지대의 산재 피해자 지원뿐 아니라 연구와 제도 개선, 교육까지 다각도로 접근해 일터에서 아프거나 다친사람은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계획이다.

크고 작은 사고들에 대해 적절한 조치와 보상, 재발 방지가 이루어 져야, 안타까운 죽음 또한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업의 취지이다.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사업’을 계기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그동안 해보지 못한 질문을 품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일하다 다친 나, 산재보험, 왜 건강보험처럼 당연하게 받을 수 없는 걸까?” 

글 우민정

 

*공상처리 :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하여 근로자가 산재법상의 보상을 받지 아니하고 사용자가 직접 근로자의 요양보상 또는 휴업보상 등을 실시하는 것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