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이 <밀어주기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작은변화를 만드는 시민단체를 소개하고, 시민들의 기운을 팍팍 모아 이들의 활동을 밀어줍니다. 아름다운재단의 <2019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사업>에 선정된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은 지역에서 공익변호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단체들이 외로운 싸움을 하지 않도록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을 밀어주세요! |
‘동행’은 광주전남 지역의 유일한 공익변호사단체다. 유일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독보적인 존재라는 뜻이지만, 달리 보면 많은 일을 벅차게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슨 분야를 맡으세요?”라는 질문에 이소아 대표변호사는 몇 가지를 나열하다가 옆에 있던 권소연 변호사, 김민아 변호사에게 “또 뭐하지?”라고 물어봤다. 동행이 다루는 분야는 그토록 많았다. 차별 받는 이주민, 학대당한 장애인,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아동, 성폭력이나 성매매를 겪은 여성, 빈곤에 시달리는 노인 등등. 이 넓은 지역의 인권 침해 당사자들이 모두 동행을 찾는다.
동행에서 일하는 변호사는 딱 3명이다. 이 3명이 1년에 약 30건의 소송을 맡는다. 변호사지만 소송만 하는 것이 아니다. 법률상담도 하고 관련 교육도 한다. 이 변호사는 아쉬운 듯이 “서울에서는 입법 활동도 하고 법률 연구도 하지만 우리는 법률 지원을 더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이주민 노동인권 지원사업은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 벌써 2년째이다.
법률 활동부터 네트워크 조직까지… “인권은 연결될수록 힘이 되니까”
같은 이주노동자라도 지역에 따라 상황은 조금 다르다. 광주전남 지역에는 대규모 공장도 없고 공업단지도 별로 없다. 공장이 흩어져 있기 때문에 이주노조와 같은 당사자 조직이 만들어지기 매우 어렵다. 농어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소농이 많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모이지 못한다. 게다가 농어촌에는 한국어가 서툴고 노동 법률 지식이 없는 이주민들이 많이 일한다. 이소아 변호사는 지금 진행 중인 소송 사례를 전해주었다. 동티모르에서 살다가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 A씨는 흑산도의 전복 양식장에서 일하고 있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직장을 바꾸고 싶지만 쉽지 않았다. 그는 광주에 나왔다가 건너건너 우연히 동행을 알게 됐다.
변호사들이 사정을 듣고 보니 A씨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가 최저임금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A씨는 변호사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가도 사장 앞에서는 말을 잘 하지 못했다. 자신의 권리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 지방노동청은 대질 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고소인과 피의자를 따로 조사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만 대질 조사를 하는 통상적인 절차와는 전혀 달랐다. 변호사들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대질조사는 대부분 그 자리에서 바로 합의를 시키려는 의도라고 한다.
이주노동자에게 대질조사는 더더욱 불리하다. 한국어 의사소통도 어려운 데다가 사장 앞에서 자꾸만 움츠러든다. 그런데 이날 대질조사에서는 통역자마저 없었다. 노동청 측은 사장 말만 듣고 조서를 작성했다. 이 변호사가 따지자 “의견서를 서류를 낸다고 하지 않았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이런 상황은 꼭 A씨만의 사례는 아니다. 꽤 흔한 경우다. 그리고 여러 이주민들이 함께 겪는 문제라면 대응도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소아 변호사는 “인권 문제는 연결될수록 힘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동행은 지역의 여러 사람들을 함께 모아 사업을 하고 있다. 우선 광주지역 변호사회를 통해 이주민 법률상담을 해줄 지원단을 꾸렸다. 2주마다 1번씩 상담을 운영하는데 20여 명의 변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올해는 상담의 유형도 다양해지고 이주민의 출신 국가도 다양해졌다. 사업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저마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지역 내 이주 관련 단체들을 모아서 네트워크도 꾸렸다. 네트워크는 올해 광주 지역 이주노동자 실태를 조사해 발표할 예정이다. 통역인들을 위한 법률용어 교육도 2년째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심문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실습을 하려 한다.
연결은 지역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올해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 매뉴얼을 새로 펴냈다. 전국의 이주 관련 인권변호사들은 이 매뉴얼을 검토하고, 인권의 시각에서 다시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 연대하고 있다. 동행 역시 여기에 참여해 지역 이주노동자의 상황을 반영하려 애쓰고 있다.
“동행의 지부를 낼 거예요. 방법은 모르겠는데 낼 거예요”
동행은 광주전남 지역의 유일한 공익변호사단체일 뿐만 아니라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전업 공익변호사단체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일부 지역에서 전업 공익변호사 단체가 만들어졌지만 결국 문을 닫았다. 문제는 역시 돈이다. 그나마 수도권 지역에서는 공익변호사 지원 사업이 종종 있지만, 지역은 그런 기회도 없다. 이소아 변호사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후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공익법률 활동만 하기는 어려워서 일반 소송도 하는데, 그렇게 여러 건의 소송을 맡아도 수입은 턱없이 적다고 했다.
동행 역시 어렵게 살림을 꾸리고 있다. 다행히 고마운 후원회원들이 많이 있지만 재정 상황은 늘 갑갑하다. 그 동안 몇 차례 이사를 다니다가 이번에 아예 사무실 공간을 사버렸는데, 그것도 다 빚이다. 이소아 변호사가 개인 명의로 빚을 낸 것이다. 그래서, 각종 소송과 사업에 단체 운영으로 매일매일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 변호사는 다양한 공모사업에 꾸준히 도전한다. 아름다운재단에 대해서도 앞으로 어떤 사업으로 다시 공모에 도전할 지 다 계획이 있다.
이렇게 힘든데도 왜 공익변호사를 택했을까? 동행의 변호사들은 “그런 질문 많이 받는데 사실 별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그들의 이야기에는 극적인 사연이 없었다. 그냥 자연스러운 지향 또는 타고난 체질 같았다. 이소아 변호사는 “제가 평범한 변호사 같은 성격은 아니잖아요”라고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다른 변호사들도 비슷하다. 권소연 변호사는 처음부터 공익변호사를 꿈꿨다. 로스쿨을 다니느라 생긴 대출 때문에 잠시 일반 로펌에서도 일했지만, ‘이러려고 공부한 게 아니지’ 싶던 차에 동행을 알게 됐다. 김민아 변호사 역시 “(변호사로써) 편들고 싶은 게 명확해야 돼서” 공익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동행에서 실무 수습을 하면서 ‘편들고 싶은 사람들’을 찾았다.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동행의 꿈은 참으로 크다. 당장 내년에는 이주노동자를 위해 근로기준법 교육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고 싶다. 빈곤 문제 등의 사회권 영역으로 분야도 넓히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동행의 지부를 내고 싶다. 어디든 지역에서 전업으로 일하고 싶은 변호사가 있다면 그의 동행이 되고 싶다. 비빌 언덕이 되고 싶다. 이소아 변호사는 “내고 싶어요”가 아니라 “낼 거예요”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방법은 모르겠는데 낼 거예요”라고.
만명만이 아니라 만인에게 평등한 법, 대한민국 국적자만이 아니라 이주민에게도 동등한 인권, 수도권 지역만이 아니라 모든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익변호사. 너무 당연하지만 전혀 당연하지 않은 이 꿈을 위해, 동행은 오늘도 열심히 현장과 법정, 광주와 서울을 누빈다.
글 |박효원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