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단의 최고참기부자 중 한분이신 조명자 기부자님. (왼쪽)

소풍바구니에 싸오신 나눔의 삶

68세 조명자 할머니. 아름다운재단에 기부를 시작한 건 2000년 11월이었습니다. 지난 2000년 8월에 아름다운재단이 설립되었으니 조명자 할머니는 아름다운재단의 최고참 기부자 중 한 분이십니다.

길을 헤매어 헐레벌떡 뛰어가 만난 조명자 할머니는 동네에 좋은 공원이 있는데 그 곳에 가서 이야기하자며 손을 잡아 끄십니다. 중간에 들른 댁에서는 언제 준비하셨는지, 먹을 것들을 바리바리 챙기셨습니다. 공원에 도착해서는 오늘 이웃들과 나누신 콩국수라며, 소면에 콩국에 소금에 참깨까지 하나하나 나누어 비닐에 싸오신 재료로 콩국수를 만들어 주십니다. 김치에 과일에 음료수까지 재단에서 간사가 온다고 무엇을 언제 그리 챙기셨을까요. 빈손으로 찾아뵌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바구니에서는 먹을 것만 나온 것은 아닙니다. 할머니는 바구니에서 정성스레 싸온 음식들을 꺼내며, 그 동안 품고 있었던 풍요로운 나눔에 대한 이야기들도 하나하나 풀어내기 시작하셨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재단 설립한지 얼마 안 돼 일본군 위안부로 평생 고생하신 김군자 할머니가 전 재산 기부하신 것 보고 결심했어요. 저렇게 고생하신 분들의 값진 돈도 기부하는데, 1% 나누는 일은 나도 할 수 있겠다 생각했지요.”

그러면서 바구니에서는 처음 기부금이 출금됐던 그 날의 통장기록까지 꺼내 보여주십니다. 2000년 11월부터 1만원씩 아름다운재단으로 출금된 기록에는 한 줄 한 줄 정성스레 밑줄을 그어 놓으셨습니다. ‘그래 이번 달에도 내가 이만큼 나누었구나’하고 늘 생각하고 싶으셨던 것일까요.

이번에는 바구니에서 사진을 한 묶음 꺼내십니다. 언제 일일이 챙기셨는지, 젊어서 고왔던 시절의 흑백 사진부터 몇 해 전 하와이에 여행 갔을 때 사진까지 할머니의 인생이 담겨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아름다운재단에서 기부자님들을 초청해 한 해 활동을 보고하는 소박한 행사인 ‘나눔의 식탁’에 오셔서 재단의 이사님들, 간사들과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종교나 누구 개인이 주인이 아닌 투명하고 공정한 재단이기에, 개인적인 욕심 없이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박원순 변호사 같은 분들이 함께 하는 믿을 수 있는 곳이기에 기부하는 게 마음이 푹 놓였어요.”

나눔을 시작하면 나눌 일이 더 많아진답니다

조명자 할머니는 자녀들 다 분가하고 손자도 있으시지만, 일하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함께 일하며 움직이기를 바라는 바깥 어르신 역정도 있지만, 몸이 아프다가도 일을 하다 보면 또 일할 기운이 생겨난다고 하십니다.

매일매일의 일은 폐품을 모아 파는 일이 주된 일입니다. 동네를 돌며 공병이며, 캔이며 모으시다보면 어느새 한 가득입니다. 모아놓은 폐품들 양이 많아 모아서 파실 때 이용하는 용달차량도 있으십니다. 남들은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쉬러 가는 저녁 길 조명자 할머니 부부의 일은 시작됩니다. 손마디며 관절이 쑤셔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부지기수지만, 또 폐품을 모으다 보면 이렇게 모으면 작은 돈들이 모이고, 생활비가 되고 이웃을 돕는 기부금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또 힘이 솟는다고 하십니다. 덕분에 할머니는 재활용 분리수거에 달인이 되셨고요. 이제는 가는 곳마다 분리수거가 잘못된 곳이면 어떻게 분리해야하는지 설명하고 안내해주신다고 합니다.

소중한 가족, 이웃들 모두 나누는 삶을 살기를

조명자 할머니는 나누는 삶이 기쁜 만큼 나누지 않는 이웃들이 안타깝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예쁜 손자를 얻기까지 아드님 내외가 어려운 일들도 많았다고 하는데, 하루하루 성장하는 손자를 보며 할머님은 며느리에게 기부를 권유했습니다. 덕분에 소중한 손자 이름의 기부가 시작됐습니다.

공원에서 앉아 이야기하는 동안 동네에 절친한 이웃인 할머니의 언니와, 오가며 잠시 앉아 이야기하며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이웃들로 어느새 웃음소리가 넘쳐납니다. “이리 와서 이 것 좀 먹고 가” 조명자 할머니의 웃음 속에는 이웃을 위한 기부뿐 아니라 늘 마주보며 사는 이웃에 대한 넉넉한 사랑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명자 할머니께
기부는 돈의 액수나 특정 시기가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일상의 매순간 순간이 소중한 분이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조명자 할머님의 소풍 바구니를, 그 안의 나눔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글 | 정경훈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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