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숨은 역량을 끌어내는 파티 플랜 봉사단
지난 10월 31일, 동탄어울림종합사회복지관 앞마당에서 ‘우리마을 할러윈축제’가 열렸다. 할로윈을 상징하는 주황색과 검정색의 풍선과 호박 인형, 거미줄로 장식된 포토존이 동탄 시민들을 맞이했다. 이날 축제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를 유지하며 안전하게 진행되었다. 영화 세트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실감 나는 할로윈 현장을 만든 당사자들은 바로 동탄시에 사는 장애 청소년들이 모인 ‘파티 플랜 봉사단’이다. 이들은 아름다운재단 2020 아동청소년문화지원사업 ‘문화와룰루라라’의 일환으로 8월부터 모여 파티 플랜을 배우고, 풍선 장식부터 가랜드, 호박 인형, 거미 모빌 등 소품 하나하나 손수 만들었다.
아침부터 할로윈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인 어린이 참여자들은 신이 났다.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밝힌 한 참여자는 “다양한 옷을 입어볼 수 있어 행복했어요”라며 소감을 전했다. 포토존 안에는 긴 마녀모자, 망토, 빗자루, 마술봉 등 평소 입어보기 힘든 복장과 소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와 함께 나온 한 시민은 “집에서 해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아이에게 선물해주어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차례로 줄을 서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나오면 기다리고 있던 파티플랜 봉사단의 멤버들이 사탕과 초콜릿이 든 꾸러미를 건넸다. 선물을 받은 참여자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홍채린(12, 파티플랜 봉사단)씨의 어머니 이경희 씨는 “작은 사탕이지만 선물을 나누는 일을 하면서 아이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거 같다”라며 기뻐했다.
처음에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어서 참여했는데 이렇게 사회공헌 활동까지 하게 될지는 몰랐어요. 채린이는 남에게 무언가 해주는 걸 좋아하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거든요. 있다 해도 항상 만나는 친구들만 만났고요. 우리 아이도 지역 사회에 기여할 수 있구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경험했어요.”
얼마 전, 이경희 씨는 딸 채린이에게 생일 파티도 선물 받았다. 수업 시간에 배운 대로 아기자기한 장식과 소품을 만들어 거실에 달았다. 온 가족이 함께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이며 파티를 즐겼다. 가위질이 서툰 채린이가 포기하지 않고 장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마음이 짠했다. 엄마를 위해 무언가 했다는 생각에 채린이도 뿌듯해했다.
어느 날 목욕을 하던 채린이가 엄마를 불렀다. 뿌연 유리창에 아이가 직접 쓴 글씨가 보였다. “나는 할 수 있어.” 이경희 씨가 늘 채린이에게 해주던 말이었다. 그는 파티를 통해 다른 사람과 기쁨을 나눴던 경험이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파티플랜 봉사단은 채린이의 숨은 역량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재능을 지역사회와 나누는 장으로서 ‘파티’
승민아, 이거 승민이가 만든 거네.” 김승민(15) 씨의 어머니 김정인 씨는 아들이 직접 만든 거미 모빌을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승민이가 다른 친구들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변해갔다고 한다. “무엇보다 파티 플래너 선생님이 섬세하게 가르쳐 주고, 차분히 기다려주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그의 말대로 봉사단 뒤에는 든든한 파티 플래너가 있었다.
교육을 담당했던 오은경 파티 플래너는 파티란 그 자체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파티가 가진 소통과 나눔의 의미를 전하고자 수업에 참여했다.
제가 파티를 사랑하는 이유는 만드는 사람도 참여하는 사람도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처음에는 파티란 단어를 낯설어 했어요. 자연히 참여도 소극적이었는데, 자신들이 만든 파티에 온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면서 변했어요. 이제는 ‘제가 할래요’, ‘저도 도와주세요’라며 적극적으로 참여해요.”
이들이 파티를 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간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매달 다른 컨셉으로 생일 파티도 진행했다. 임상규 사회복지사(동탄어울림종합사회복지관)는 처음에는 장애 청소년들이 파티 플래너라는 이색적인 직업을 체험하고 전문적인 역량을 기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봉사단을 조직했다. 그런데 할수록 나눔의 가치를 배우는 과정이 되었다. 파티 자체가 나누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그간 파티의 주인공은 되어봤지만, 직접 파티 공간을 꾸미는 경험은 처음이에요. 파티 공간에 온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질 때 아이들의 표정도 같이 변하는 걸 느껴요. 앞으로도 이 청소년들이 가진 재능을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갈 계획이에요.”
코로나 사태로 갑자기 온라인 수업을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청소년들의 변화를 보며 그는 보람을 느꼈다. 처음에는 손도 꿈쩍 안 하던 친구들이 먼저 나와 장식물을 만들고, 친구를 초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파티플랜 봉사단은 앞으로도 지역 주민들을 위한 파티를 이어갈 계획이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 얼마나 충만한 일인지 이미 맛봤기 때문이다.
글 ㅣ우민정, 사진ㅣ크레파스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