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토요일은 짜금짜금!
‘쓰레기봉투와 근심을 버리는 곳’. 딱딱하고 고압적인 ‘금지’의 언어 대신 아이들이 고르고 다듬은 문구는 보드랍고 친절했다. 토요일 오후, 학원이 아닌 연구소로 모여든 짜금짜금 모둠원들은 우리 동네를 위해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하면 좋을지 궁리한다. 수다와 농담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토요일 풍경은 훈훈하기만 하다.
±우리 동네 골목길 Re 디자인
가령, 중1, 중3 소년소녀에게 자신이 원하는 밥상을 그려보라 했을 때, 나물 찬 위주의 밥상을, 그것도 고사리볶음은 꼭 있어야 하는 밥상을 그려내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흔한 사례는 아니겠으나, ‘짜금짜금’ 모둠 안에서라면 그리 튀는 입맛도 아니다.
모둠명 ‘짜금짜금’. ‘자꾸 입맛을 짝짝 다시며 맛있게 먹는 모양’을 뜻하는 이름처럼, 열네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열 명 남짓한 모둠원들을 묶어내는 공통점은 ‘뭐든 가리지 않고 맛있게 잘 먹는다’는 것이다. 나이도, 학교도, 동네도 제각각이건만, 부천시 원미동에 자리 잡은 여러가지연구소에서 만난 십대 청소년들은 왕성한 먹성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짜금짜금’을 결성, ‘±삶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상반기에 진행할 ‘±삶 디자인’ 1탄은 ‘±우리 동네 골목길’을 테마로 한다. 동네를 탐방하며 우리 삶에 필요한 것과 불편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토대로 골목길을 Re 디자인하는 것. 6월부터 원미동 일대를 관찰하고 기록해온 아이들은, 쓰레기 무단투기와 주차 문제를 눈여겨보고 아이디어를 보탰다.
“쓰레기가 유독 많이 쌓이는 골목길 벽면엔 ‘무단투기 금지’나 ‘과태료 부과’와 같은 경고의 문구들이 붙어있었어요. 그런 문구들을 순화해서 예쁜 포스터를 만들어 붙여보자는 의견이 나와, 큰 종이에 각자 떠오르는 문구들을 적어봤어요. 그중에 반응이 좋은 것들을 추렸는데, ‘저는 저희 집 앞에만 쓰레기를 버릴 거예요. 당신은요?’ 라든가, ‘개조심’ 대신에 순둥순둥한 강아지 얼굴에 헐크 같은 몸을 그리자는 아이디어도 인기가 좋았어요.”
‘조심’과 ‘주의’와 ‘금지’를 넣지 않은 홍보물을 만든다는 게 생각처럼 쉽진 않았으나, 한 사람당 한 마디 씩만 의견을 내도 금세 말들의 잔치가 됐다. 모둠원들은 자기 생각을 꺼내놓는 데 익숙했고,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듯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도 열려 있었다. 지난 해 연구소에서 공부한, 이른바 ‘재미있게 노는 법’이 이끌어낸 변화다.
‘짜금짜금’의 베이스캠프라 할 여러가지연구소는 문화기획자와 예술가, 활동가 및 시민들의 네트워크로, 지역문화예술 콘텐츠 개발 및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오래된 골목 안, 마당 있는 옛집에 둥지를 튼 연구소는 역시 이름처럼 가지가지 흥미로운 실험들을 전개한다. 목공작업실, 골목길 장터와 쌈밥 축제 등이 그것. ‘엄마가 가보라고 해서’, ‘유익한 경험이 될 거라는 아빠의 권유로’ 서름서름 연구소를 찾아온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 요리와 목공작업을 하며 스스로 일상을 놀이화하는 재미에 금세 맛을 들였다.
이야기를 담는 시간
“작년 여름, 연구소에서 수레를 만들었어요. 그 수레에 저희가 직접 만든 레몬청과 자몽청, 강아지 간식 같은 걸 싣고 나가 동네에서 팔았는데, 인기가 좋아 다 팔렸어요. 수익금으로 친구들이랑 맛있는 것도 사먹고, 정말 재밌었어요. 또 옥천에 있는 복실이네 농장을 방문해 직접 채소를 수확해 요리를 해먹었던 것도 좋았고요. 올해도 이런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 생각했는데, 마침 선생님이 청자발 사업에 대해 알려주셔서 작년에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과 모둠을 만들어 지원했어요.”
서연(16세)의 주말 풍경은 ‘짜금짜금’ 친구들을 만나기 전과 후가 극명히 다르다. TV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흘려보내던 시간이 ‘짜금짜금’ 이전 풍경이라면, 이젠 ‘친구들’과 ‘이야기’가 있는 주말이 자연스럽다. ‘짜금짜금’ 활동을 통해 ‘내 생각을 자유로이 이야기하고 다른 친구들의 생각도 들어볼 수 있어 좋다’는 서연. 모둠의 막내 무한(14세)에겐 ‘아는 게 많은 똑똑한 누나’로 통한다. ‘아이디어가 풍부한 친구’라는 서연의 칭찬처럼 엉뚱한 돌발 멘트가 매력 포인트인 무한은 ‘짜금짜금’ 모임이 있는 토요일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여기 오고부터 재미난 일들이 많아졌어요. 형들도 많고. 또, 여길 오면 누나들 심부름을 안 해도 되니까, 그것도 좋아요.”
알고 보니 집에서도 막둥이라는 무한. 층층이 셋이나 되는 누이들의 심부름 압박에 고달픈 막둥이의 설움을 토로한다.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형들이 좋고, 심부름 같은 건 시키지 않는 모둠의 착한 누나들이 좋은 열네 살 소년에게 ‘짜금짜금’ 활동은 곧 해방구인 셈이다. 아재 개그에 일가견이 있는 참견쟁이 수민(15세), 분위기메이커 동혁(16세), 관찰쟁이 종우(15세)…. 기다리던 형들이 한 명 두 명 나타날 때 마다 무한의 얼굴이 점점 더 환하게 피어난다. 참견쟁이, 관찰쟁이와 같은 별명은 모둠 내 역할이기도 한데, 무한은 서연 누나로부터 ‘히든카드’라는 역할을 부여 받았다. 형들보다 멋진 별명에 내심 흐뭇한 무한이다.
무한과 형들이 맡은 오늘의 임무는 설치작업이다.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는 구역에 테이프를 둘러 라인을 표시하고, 새로 만든 포스터를 붙이는 작업이 그것. 설치작업 틈틈이 인근의 세탁소와 미용실, 슈퍼마켓에 들러 이러한 설치작업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을 묻는 설문도 진행했다.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이었지만, 한편으론 벽면에 부착한 포스터가 또 다른 쓰레기가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후, 모둠원들은 설치물에 대한 주민 반응과 그것이 야기한 변화들을 관찰하며, 더 필요한 부분을 보완할 계획이다.
하반기에 진행할 ‘±삶 디자인’ 2탄, ‘온 삶을 먹는 요리, OO씨의 밥상’은 뭐든 복스럽게 잘 먹고, 먹는 일에 관심이 많은 ‘짜금짜금’ 모둠원들의 특기 적성을 살린 프로젝트다. 몸과 마음이 모두 즐거운 밥상, 내가 원하는 밥상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연구가 이어질 예정이라고. 어떤 맛깔난 이야기들이 담긴 밥상을 차려낼지, 맛을 아는 친구들의 ±밥상 디자인이 기대된다.
글 고우정ㅣ 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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