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레터는 세상을 바꾸고 있는 사람들이 숨을 후~후 불며 쉴 수 있도록, 변화의 증거를 전해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 5월은 어린이 권리 증진을 위한 변화를 후후 불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
생일이 없는 유령 아이, 들어보셨나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일컫는 말인데요. 최근 2년 동안 아동복지시설에 입소한 출생 미등록 아동은 146명에 달합니다. 시설에 들어오지 않은채로 가정에서 자라는 아동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제아동인권센터 김희진 사무국장/변호사는 2015년 활동가의 삶을 시작한 이후 최근까지 보편적 출생등록에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2021년 3월에는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와의 공동 프로젝트로 출생 미신고 아동의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최근에는 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으로 지역사회(경기도 시흥시) 풀뿌리 네트워크와 협력해, 시장명의의 출생확인증 발행을 위한 주민조례 제정청구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합격 직후부터 국제아동인권센터의 문을 두드린 김희진 사무국장을 통해, 아동인권의 현 주소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똑같이,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Q. 변호사시험 합격 직후, 국제아동인권센터를 직접 찾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동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A. 대학시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자원활동을 하면서 막연하게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 살아가는 아이들이, 누구나 똑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죠. 인권법학회를 하면서도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거든요. 아동인권을 무작정 검색해봤더니, 국제아동인권센터가 나오더라고요. 아동인권교육 과정이 진행 중인 것을 보고 무턱대로 메일을 보냈죠. ‘제가 무슨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라고요. 마침 그때 국장님이 만나보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고, 그때부터 국제아동인권센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Q. 처음 하신 일이 기억나시나요? 주로 어떤 활동을 진행해오셨는지도 궁금합니다.
A. 국제아동인권센터는 2015년부터 3년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아동권리 스스로 지킴이’라는 사업을 했어요. 만 10세에서 18세 아동이 모여서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또 권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활동해보는 건데요. 사실 아이들이 정보를 습득하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장시간 아이들의 역량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6개 권역 아동 394명이 ‘스스로지킴이’로 활동했고, 이 중 23명의 아동이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에 대한 아동보고서를 직접 집필, 제출했어요. 심의참석과 모니터링까지 이어나갔죠.
*유엔아동권리협약 : 아동을 단순한 보호대상이 아닌 존엄성과 권리를 지닌 주체로 보고 이들의 생존, 발달, 보호, 참여에 관한 기본 권리를 명시한 협약입니다. 1989년 11월 20일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돼, 2015년 기준 한국을 포함한 196개 나라가 비준했습니다. 한국은 1991년 11월 20일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약속)한 뒤, 정부와 민간단체 등에서 협약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가장 최근에 제출한 보고서는 2017년 발간한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국가보고서입니다.
모든 어린이가 이름없이 방치되지 않으려면, ‘보편적 출생등록’이 필요합니다.
Q. 최근에는 ‘아동학대 진상조사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서도 내고 연대활동도 이어가고 계세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A.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반복되고 있어요.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망한 아이도 있고, 경찰과 같은 수사기관, 상담원이 이미 그 아이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사망한 아이도 있죠.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예산, 조직, 업무 연계가 이루어지기 힘든 구조적 문제를 파악해야 하지만, 피상적 대안들만 거론되고 있어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구조적 문제를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한다는 취지에서 아동학대 진상조사 특별법이 발의가 됐죠.
Q. 최근 2년 동안 아동복지시설에서 출생미등록 상태로 입소한 아동이 146명이라고 하셨어요. 아이들의 출생신고가 어려운 상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A. 아시다시피 출생신고는 부모가 해야만 가능합니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동의 출생등록은 불가하죠.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가족관계등록부를 새롭게 만들어서 출생등록을 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 출생신고가 불가한 이주아동 등은 출생등록이 이뤄지지 않아요. 법을 개정해서든, 임시적으로 출생증명을 할 수 있는 장부를 만들든, 출생등록에 대한 추가 보완이 필요한 상황인데 그런 역할을 아무도 하지 않죠. 국가에서 아이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살아있기에 마땅히 존중받을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꼭 필요한 상황입니다.
Q. 2015년, 아동인권 관련 단체들이 모여 만든 ‘보편적 출생등록 네트워크’를 시작하셨어요. 지금까지 어떤 논의들이 이루어져왔나요? 성명서에 담긴 내용을 보면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A. 보편적 출생등록 네트워크에서는 보편적 출생등록을 요구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들이 한국 정부에 출생이 등록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지난 2월에는 법무부에서 출생통보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어요.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정보를 국가기관에 신속히 통보하는 제도죠. 출생통보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상당수 아이들이 병원에서 태어나기 때문이예요. 이주민도 병원을 이용할 때 기록이 남으니까 출생통보가 가능하죠. 다만 현재 논의되는 출생통보제는 건강보호심사평가원에 의료기록을 전송하는 시스템을 활용하려 해요. 그렇게 되면 의료보험 가입을 못 하는 외국인의 자녀는 출생통보제에서 배제될 수 있는 한계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징계권 삭제, 청소년 선거권 보장….. 어렵게 이룬 변화 너머에 남은 과제들
Q.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계시는데요. 수많은 권리 중에서도 많은 진전을 보인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정말 변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변화가 이루어진 건 있어요. 가령 민법 915조에 명시된 아동에 대한 징계권(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는 데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이 삭제됐고, 만 18세 청소년들도 투표를 할 수 있게 됐죠.
Q. 지금 가장 기다리는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소년법상 우범소년 규정이 삭제됐으면 해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술을 마신다거나 가출을 했다거나 친구들하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행위 등을 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인데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도 폐지를 권고하고 있지만, 한국은 ‘비행 청소년’ 보호를 이유로 동조하고 있지 않아요. 아이들이 가정을 벗어났다면, 가정에 머무르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봐야하잖아요. 그 책임을 청소년 개인에게 물으면 안 되죠. 그래서 2020년, 법무부 소년보호혁신위 활동을 하면서 폐지 권고안을 만드느라 애를 썼어요. 국회에 우범소년 규정을 폐지하는 소년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이기도 하죠. 다만 발의만 된 상태에서 논의가 되고 있지 않아요.
Q. 어린이들이 마주하는 날 것의 현실들을 보면서 괴로우실 때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활동을 이어가실 수 있는 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계속 할 일이 눈에 보여요. 새롭게 대응해야 할 일들은 끊이지 않고, 놓쳐서도 안됩니다. 최근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안돼서, 아동학대사건들이 다른 농도로 와닿기도 해요. 무엇보다 먼저 살아온 사람의 책임이라 느끼고 있어요. 공기가 나빠진 상황에 대해서, 또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젊은 날을 버려야 하는 시스템에 대해서 미안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어린이들의 권리 증진을 위해 뛰고 있는 활동가, 또 마음 모으고 있는 시민들에게 ‘변화의 증거’를 전해주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A. 예전보다 아동, 청소년, 학생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활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죠. 징계권 삭제, 선거권 연령 하한을 만들어낸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동이 아니니까 문제인식도, 변화를 확인하는 것도 늦을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동에게 인권이 있다고 말하는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나아질 준비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무엇보다 제가 하는 일을 밝혔을 때, 놀라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이 변화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