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레터는 세상을 바꾸고 있는 사람들이 숨을 후~후 불며 쉴 수 있도록, 변화의 증거를 전해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 6월은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답을 찾아 노력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질기게 뜨는 에러 메세지에도 전원을 끄지 않고, 끈기 있게 대응해온 사람들을 만나러가요. 😙 |
코로나19 감염만큼 두려웠던건 신상공개였어요. 집, 다녀간 카페, 병원, 편의점 이름까지 알려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머물렀던 가게들이 큰 피해를 입는 것도 상상하기 싫었지만 무엇보다 제 일거수일투족이 세상에 알려지는게 두려웠어요.
물론 별안간 불어닥친 재난 상황에서 인권을 고려하는 것도, 지키는 것도 어려웠을지 몰라요. 그래서 더욱, 지금이 중요해요. 어떤 상황이 와도 우리가 지켜야 할 인권의 기준과 원칙을 미리 만들어두는 거죠. 다산인권센터 랄라 활동가는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에서 인권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어요. 의료공백으로 빚어진 위기에 대해 짚어내기도 했죠. 마스크를 쓰고서도 땀나게 뛰어온 랄라 활동가에게, 재난 속 인권의 가치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재난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인권, 가이드라인에 담았어요.
Q. 다산인권센터에서 올해로 10년을 맞이하셨어요. 그간의 활동을 돌이켜보았을 때 ‘활동가로서의 삶’을 지속하는데 큰 영향을 준 건 무엇이었나요?
A.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2012년의 경험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아요. 당시 화성시 팔탄면에 소규모 사업장이 많았는데, 폭파사고가 크게 나서 노동자 4명이 사망했어요. 피해자를 도우면서 사건 원인 등을 다룬 보고서를 썼고 홈페이지에 올렸는데요.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사고 유가족께서 ‘보고서를 다운받을 수 있냐’고 문의하셨더라고요. 아이들이 크면, 보고서에 남아있는 아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인권운동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고 마지막을 기억해주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그 사명감이 지금까지 활동가로서의 삶을 이어지게 한 것 같습니다.
Q. 2020년 초, 안식월을 끝내자마자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함께 내셨어요. 당시 배경을 설명해 주신다면요?
A.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더라고요.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이야기하다가 인권단체들이 함께 고민해봐야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국적, 종교, 거주지, 장애 여부 등에 따라 차별과 혐오 속에 그대로 노출되던 시기였으니까요. 단체들이 모여있는 텔레그램 방에서 이야기를 꺼냈는데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지금 발생한 일들을 기록하고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담기로 했어요.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기 위해 각 단체에서 주력하고 있는 분야를 맡아서 집필했고요. 재난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인권의 원칙과 함께 대안을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냈습니다.
코로나19와 인권,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 바로보기
Q. 가이드라인 발간 이후에도 이어지는 인권 침해, 차별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오고 계신데요. 최근에 진행한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2020년 11월에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 조사단을 꾸려서 보고서를 냈어요.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병상이 부족해졌고, 공공병원을 이용하던 취약계층의 피해도 컸기 때문이죠. 고열에 시달리다가 적기에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고등학생도 있었고요. 연장선상에서 최근 홈리스들의 백신접종에 대해서도 비판의견을 내고 있어요. 홈리스들은 쉽게 정보를 접하기가 어렵다 보니 본인이 접종 대상인지도 알기가 어려워요. 열이 나거나 아플 때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단순히 식사를 제공하고,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돌봄체계를 만드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 이후 오늘까지 내달린 결과는, 변화입니다.
Q. 지난 1년 6개월간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의료공백 실태조사에 이어 하반기에도 활동을 이어가실 텐데요. 쉬지 않고 달려오는 동안 혹시 소진되거나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A. 과로했어요. 저에게도 생소한 경험이잖아요. 또 의학적인 이야기가 어렵다보니까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할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재난의 위기에 우리가 인권의 언어로 다시 재해석해서 내놓는다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일궈온 인권이 한순간에 중요하지 않은 가치가 되어버렸어요. 심지어 논의의 장에 올라오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 것들도 있고요.
Q. 어렵게 만들어온 인권의 원칙들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보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런 상황들을 딛고 지금까지 오실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요?
A. 저와 함께 사는 어린이를 많이 생각하면서 지냈어요. 얼마 전에 학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학교를 갔는데 눈짓으로만 이야기하는게 슬프더라고요. 이제 귓속말도 못하고, 가까이에서 놀지도 못하니까요. 결국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어린이와 함께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Q. 여담이지만 돌봄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하고 계세요?
A. 학교가 멈추니까 어린이를 돌보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와 같은 맞벌이 부부들을 모았고, 하루씩 휴가 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요. 부모들의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공간에서 온라인 교육도 틈틈이 봐주고, 대안돌봄의 형태로 움직이고 있죠. 누가 그러더라고요. 아이들이 다른 집 반찬을 먹어볼 일이 없었는데, 서로 다른 반찬을 먹어보면서 재밌어한다고요. 운 좋게 서로 의지하면서 잘 버티고 있어요. 사소한 행복을 느끼면서요.
“재난 이후의 회복은, 원상복구가 아니라 재난이 반복되지 않을 다른 사회”
Q. 코로나19 속에서 무력감을 뚫고 활동을 이어오셨는데요. 그동안 곁에서 지켜본 작은 변화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A. 방역과정에서 놓친 것들이 인권 문제로 대두되면서 달라지는 점들이 있었어요. 초기에 확진자 정보 공개가 과도하다는 문제제기를 한 결과 공개 범위가 최소화되었고요.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진단검사가 차별이며 인권침해라는 비판을 수용한 지자체가 행정명령을 취소하기도 했어요.
Q. 말씀해주신 변화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타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물결에 휩쓸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요. 방역 정책을 만들 때 인권을 지키며 나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A. 차별과 혐오는 안된다는 메세지가 나와야한다고 생각해요. 집단감염이 확산됐을때 ‘차별과 혐오는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유의미하기도 했잖아요. 메세지들이 시민들에게 닿아서, 연대의 손길을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역으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체계도 필요합니다. 재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소통창구가 현재는 없거든요. 재난을 경험한 시민들과 함께 대응 체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2020 NPO 국제포럼에서 “재난 이후의 회복은 이전으로 돌아가는 원상복구가 아니라 재난이 반복되지 않을 다른 사회”라고 하셨어요. 이러한 사회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지금 힘을 모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자연재난은 자연재난으로만 오지 않는다는 말을 봤어요. 부조리와 만나면 사회적 재난으로 모습을 바꿔 온다는 거죠. 코로나19도 마찬가지예요. 한국 사회의 열악한 구조가 그대로 드러났으니까요. 시설을 중심으로 진행된 집단감염은 가장 비어있는 지점이 증폭되어 나타난 것이라 생각해요. 지금부터라도 재난이 반복되지 않을 구조를 촘촘히 준비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