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첫 후후레터는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시간동안 외롭게 고민하고 시작해, 결국 모두를 위한 변화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건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증거일 거예요. 

이 가치있는 자원이 그냥 버려지면 안되니까, ‘멸종위기’ 시작했다.

2021년 제로웨이스트 가게 연대모임 ‘도모도모’와 ‘카페라떼클럽’이 종이팩을 별도로 모아 재활용을 시작했어요. 하반기부터는 종이팩 재활용에 뜻을 모은 분들이 함께 모여 멸종위기(멸균팩과 종이팩의 위기탈출) 서명 캠페인을 시작했죠. 도모도모 가게 중 한 곳인 알맹상점에 멸종위기 캠페인의 시작에 대해 물어봤어요.

1. 멸종위기 캠페인(이하 캠페인) 참여는 언제부터 시작됐나?

알맹상점이 자원회수 거점센터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부분이라 정확한 시기는 생각이 안 나지만 대략 2021년 6월경이다.

2. 멸종위기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는?

종이팩 재활용률을 높이고자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 종이팩은 분리배출이 잘 되고, 처리과정에서 선별되면 연간 130만그루 나무를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자원이지만 유독 재활용률이 낮다. 종이팩은 생산자책임 재활용제도(생산자에게 재활용책임을 부여해야 하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제도) 적용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주민센터나 근처 제로웨이스트 샵까지 무겁게 가져가야하는 상황이다.

3. 캠페인을 시작하고나서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은 누구?

‘도모도모’ 모임 뿐만 아니라 전국 제로웨이스트 가게 대표들과 종이팩을 한 장 한 장 펼쳐서 씻어 말려오는 소비자들이 아닐까? 대표들의 경우 가게 한 공간을 내어서 쓰레기를 모으는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님에도, 당연하게 하고 있고 소비자 역시 본인이 만든 쓰레기의 마지막 여정을 끝까지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캠페인이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는 광주에서 먼저 시작한 카페라떼클럽 왕꽃님이다. 불모지였던 종이팩 관련한 정보를 수집해주시고 기꺼이 공유해주신 덕분에 멸종위기 캠페인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4. 캠페인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공들이거나 고민했던 부분은?

제도, 기업, 소비자 세 주체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각자의 책임과 해야하는 역할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한 주체의 책임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이런 균형을 잘 잡아야 멸종위기 캠페인 목적이 흔들리지 않고 올바른 자원순환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5. 캠페인을 시작한 이후 마주한 최고의 순간을 꼽는다면?

캠페인을 시작하기 전에는 멸균팩을 받는 곳이 전국적으로 많지 않았다. 재활용하는 곳으로 보내야하는데, 개인 사비로 보내야하거나 주변에서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재활용 하지 못하고 버려지고 있었다. 멸종위기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함께 모으겠다며, 책방을 비롯한 다양한 곳에서 연락을 주셨다. 신청서를 오픈하자마자 많은 분들이 신청서를 작성해주신 순간이 생각난다. 많은 곳에서 종이팩을 수거해주신 덕분에 제도개선 전까지 버려질 뻔한 많은 종이팩을 다시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었다.

6. 캠페인을 시작한 이후 가장 염려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플라스틱처럼 모두가 주목하는 핫한(?) 자원이 아니라 친환경 이미지가 강한 ‘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그런지 브리타와 화장품포장재 비해 반응이 덜하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자원순환은 모든 자원을 되돌아보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호흡이 길고 주목도가 떨어지더라도 종이팩의 재활용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7. 캠페인을 시작하기 전의 알맹상점과 시작한 이후의 알맹상점의 풍경은 어떻게 달라졌나?

글쎄. 알맹상점 생기기전에도 알맹 모임에서 캠페인은 늘 진행했던 일이라 캠페인 전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알맹 모임 캠페인은 정말 즐겁게 했다면 알맹상점 이후 캠페인은 죽기살기로(?) 캠페인을 하고 있다. 생업이 따로 있지만 생업 같은 부캐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물리적인 시간, 노력, 부담감, 책임감이 엄청나지만 많은 분들이 관심과 응원을 해주시고 실제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많아서 매번 감동하고 있다. 사실 알맹상점은 캠페인의 실무를 맡아서 할뿐 환경단체가 아니라서 저희도 한 명의 시민이다.

8. 캠페인이 세상에 어떤 의미로 기억되었으면 하는가? 

‘나 하나쯤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다. 하지만 시민의 목소리가 없으면 세상을 변화시킬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다른 단체와 많은 제로웨이스트샵들이 함께 진행했던 브리타 어택, 화장품 포장재 어택, 이번 멸종위기 캠페인까지. 개인의 관심과 목소리가 없었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수많은 브리타필터는 일반쓰레기로 버려지고 화장품 포장재는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하지 않는 혜택을 받았을 것이고 화장품 리필매장을 누구나 운영할 수 있게 규제를 완화하는 샌드박스 시범운영도 없었을 테니까. 이 모든 변화는 시민분들의 목소리 덕분인 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소중하다는 것, 또 그 목소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큰 물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9. 올해는 알맹상점에게 어떤 해가 되었으면 하는가?

본의 아니게 강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건물주가 변경되면서 재건축을 한다.. 어렵게 망원동 주변을 구했지만 3층으로 이사를 하다 보니 올해는 이사 간 곳에서 터전을 잘 잡길 바랄뿐 이다. 사실 한 달 한 달 운영하며 지내는 자영업자 입장이라 역시 가게가 망하지 않고 무탈하게 운영되어 또 다른 필요한 캠페인이 있다면 진행하고 싶다.

10. ‘너무 작고 소박하다’며 시작을 망설이고 있을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완벽한 한명의 환경운동가보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환경실천하는 100명이 더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개인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칫솔만 바꾸더라도 일생동안 재활용 되지 않는 플라스틱 칫솔(3개월마다 1개씩 교체시) 약 240개 이상을 줄일 수 있다. 결코 소박한 실천이 아니다. 하지만 대나무칫솔로 바꾸는 것이 엄청 힘든 일이 아니기에 그 가치가 덜하다 생각할 수 있다. 작은 행동 모두 의미있는 실천이며, 지구에 큰 도움이 된다. 스스로에게 실수의 자책보다는 칭찬을 많이 해달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변화를 탐색🔎하는 시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공익활동이란 말이 혹시 무겁게 느껴지시나요? 사람들을 모으고, 사업을 하고, 또 보고하고…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어쩌면 활동의 장벽을 만드는지도 몰라요. 아름다운재단은 누구나 문제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변화의물꼬를 시작했어요. 만나서 대화하고, 탐색하기만 하면 끝! 사업을 시작한 최지은 간사에게 더 자세히 들어볼까요?

1. 변화의물꼬는 언제부터 준비했고, 언제 시작했나?

마음으로 변화의물꼬를 시작한건 2020년 4월부터다. ‘팬데믹 이후, 시민과 시민사회 그리고 재단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업무로 시작한건 2021년 상반기부터였다. 답을 찾기 위한 수많은 자료조사와 자문회의, 기획회의를 거쳐 변화의물꼬 지원사업을 개발했다. 2021년 10월, 지원사업 참여자를 모집했고, 선정된 5단위 (개인 2, 팀 3)가 현재 변화의물꼬를 진행하고 있다.

2. 변화의물꼬를 시작한 이유는?

시민들이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문제를 탐색하고, 함께 대화하면서, 관계를 확장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혼자서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지만, 같이 머리를 맞대면 아이디어가 샘솟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물꼬를 튼다’는 네이밍도 도출했다. 질문에 비해 우리가 찾은 답이 소박해보일 수 있지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3. 변화의물꼬를 시작하고나서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은 누구?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실행하고 있는 지역 현장 전문가들을 많이 만났다. 현장 전문가들의 생생한 경험과 고민이 변화의물꼬를 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아름다운재단은 지원사업을 통해 공익단체를 계속 만나왔지만, 시민과 직접 만나본 경험은 많지 않다. 때문에 앞서 시민과 만나 공익활동을 만들어본 이들의 경험을 듣는 게 매우 중요했다.

4. 변화의물꼬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공들이거나 고민했던 부분은?

지원사업 자체가 공익활동이 낯선 시민들에게 벽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지원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이 벽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질문을 쉽게 쓰고, 불필요한 항목들을 걷어냈다. 증빙절차 등도 간소화해 활동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고, 디자인이나 쓰는 단어도 좀 더 쉽고 재밌게 느껴질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5. 변화의물꼬를 시작한 이후 마주한 최고의 순간을 꼽는다면?

지원신청 마지막 날이 아닐까. 처음 하는 사업이다보니 인지도가 낮고, 짜임새도 아직 덜 영근 상태라 참여자가 없을까봐 걱정이 많았는데 최종적으로 89건이 (개인 : 39, 팀 : 50)이 접수됐다. 그만큼 필요성에 공감하고 함께 하고 싶은 시민들이 많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수많은 신청서를 보면서 앞으로 무엇에 집중해야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신청해 주신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아쉬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6. 반면 변화의물꼬를 시작한 이후 가장 염려하고 있는 것은?

변화의물꼬는 올해 처음 시작한 지원사업이다. 매뉴얼도 없고, 참고 사례도 없다. 그래서 어디로 흘러갈지 종잡을 수 없는게 지금 상황이다. 솔직히 매순간 걱정되고 고민된다. 그러면서도 모든 순간을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 참가자들 각자의 개성과 방식이 변화의물꼬를 어떻게 만들고 채워나갈지도 기대된다.

7. 변화의물꼬를 시작하기 전의 나와, 시작한 이후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기존에 접하기 어려웠던 주제를 변화의물꼬를 통해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참가하는 분들과 만나면서 지역의 빈 집, 헌책방골목, 해양정화 활동들의 네트워킹, 지역 언론이 다루지 않는 현안들, 다문화 청년들과 같은 다양한 주제가 나에게도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8. 그래서 변화의물꼬는 세상에 어떤 의미로 기억되었으면 하는가?

세상까지는 너무 커서 부담스럽고, 참여하신 분들로 범위를 좁혀서 말하고 싶다. 변화의물꼬가 활동을 만들어 나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축적하는 시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3개월의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변화를 만들기 어려울 수 있다. 계획한대로 변화의물꼬가 마련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험 또한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가능하게 할 밑거름이 되면 좋겠다. 변화의물꼬가 다 끝나는 날 참가자들이 ‘이 경험이 있어서 기운을 얻었어! 앞으로 더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9. 올해는 나에게 어떤 해가 되었으면 하는가?

2022년은 지금까지의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보고, 앞으로 디딜 첫 발을 찾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2020년 4월 머릿 속에 떠오른 질문으로 시작해 2022년 4월이면 변화의물꼬 한 텀(term)이 끝난다. 지나온 시간을 잘 되짚어 보면서 변화의물꼬를 잘 재정비 하고싶다. 그래서 수많은 신청서로 변화의물꼬에 공명해 주신 분들과 계속해서 함께 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첫 안식월을 보낸다. 안식월 동안 재단 간사로서 보낸 3년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시간들을 잘 준비할 수 있길 바란다.

10. ‘너무 작고 소박하다’며 시작을 망설이고 있을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나 또한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작고 소박하다는 생각에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 말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작고 소박하면 어때. 작아도, 소박해도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있어. :-)”

우리의 넥스트 레벨은, 사단법인 전환이거든요!

한 달만에 사단법인 등록을 위한 기본 재산인 2천만 원을, 380여명의 후원자와 함께 마련한 이 곳,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입니다. 많은 청소년들과 접점을 만들고, 변화를 만들기 위해 올해는 본격적으로 사단법인 전환을 시작합니다. 띵동의 정민석 대표를 통해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한 시작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1. 띵동의 사단법인 전환, 언제부터 준비했나?

2021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해서 올해 3월 법인 등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법인 전환의 필요에 대해 활동가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낯선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 만큼 정보를 수집하고, 설립 절차에 대해 확인하는 과정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도 중요했다.

2. 사단법인 전환을 시작한 이유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상담하고 지원을 하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주거지원’이다. 띵동은 24시간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보니, 가정으로부터 폭력을 경험한 이들의 주거를 책임지기에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은 기존 청소년 쉼터 입소하는데 고려해야 할 상황이 더 많고, 대부분 쉼터를 안전한 공간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다. 띵동이 24시간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청소년 복지 업무를 총괄하는 정부부처(여성가족부)와 협의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조직의 법적형태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작은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으니까.

3. 사단법인 전환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나서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아무래도 법인 등록에 필요한 기본재산 모금에 적극 함께해준 후원인들 아닐까 싶다. 아직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띵동이 그리는 미래에 대해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을 표현해주셨다.

4. 사단법인 전환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공들이거나 고민했던 부분은?

법인 전환이 되면 띵동이 어떻게 변화할지 아직 예상을 할 수 없어서, 처음엔 띵동 활동가들도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행정업무가 많아지는 것도 걱정이었고, 책임도 더 커지게 되다 보니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심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저 부터도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그 마음을 서로 나누기 위해 노력했다.

5. 사단법인 전환을 위해 모금 등을 시작한 이후 마주한 최고의 순간을 꼽는다면?

2021년 11월 23일 후원자들에게 첫 편지를 써서 홍보를 시작한 순간이다. 모금이 잘 될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편지를 보내는 것도 걱정이 많았는데, SNS에 올리자마자 모금이 되었고, 또 공유, 좋아요도 많이 눌러주셨다. 엄청 놀랐던 기억이 있다.

6. 반면 사단법인 전환을 위해 올해 업무를 시작하면서 띵동이 가장 염려하고는 것은?

관련 부처에서 과연 띵동을 사단법인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염려하고 있다. 성소수자 단체들이 사단법인으로 전환할 때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합리적, 상식적인 이유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문제삼는 경우가 많았다. 띵동이 반드시 넘어야 할 편견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7. 사단법인 전환을 시작하기 전의 띵동과 이후의 띵동은 어떻게 달라진 것 같나?

책임감이 더 커진 것 같다. 부담이 되기도 하고. 그만큼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미래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설렘도 있다.

8. 그래서 띵동의 사단법인 전환이 이 세상에 어떤 의미로 기억되었으면 하는가?

우리가 딱히 무엇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은 없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단법인 띵동이든 임의단체 띵동이든 우리가 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늘 같은 곳에 있을 것이고,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환대하고 함께하는 조직으로 남을 거다.

9. 올해는 띵동에게 어떤 해가 되었으면 하는가?

큰 어려움없이 계획했던 일들이 잘 풀리면 좋겠다. 사단법인 등록도 잘 되었으면 좋겠고, 띵동이 계획하고 있는 사업들이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잘 다가갔으면 좋겠다.

10. ‘너무 작고 소박하다’며 시작을 망설이고 있을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처음에 한 발 떼기가 어려운데, 그래도 걷기 시작하다 보면, 주위에서 말을 걸고, 도움을 주고, 함께 걷기 시작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길이 공익적이라면,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이미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작고 소박할 때 오히려 부담없이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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