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부터 지금까지 자립준비청년 당사자와 친구들 함께 미디어 패러디 프로젝트를 만들어왔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록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대중인 친구들이 미디어 속 고아캐릭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단순 미디어 패러디 일러스트를 넘어 프로젝트에 참여한 당사자 개개인을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겠는데? 괜찮을까?” 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걱정은커녕. 인터뷰를 하는 내내 자주 흥분했다. 누군가의 삶을 가까이에서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꽤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우린 모두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비슷한 생각을 할 수 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자립준비청년’이라는 당사자성을 넘은 개개인의 생생한 인터뷰를 그대로 담기로 결심했다. – 손자영 캠페이너 –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는 나영이의 말을 듣고, 예전에 우리가 생각났다. 나영이와 나는 같은 보육원에서 자란 오래된 친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 나영이와 나는 운이 좋게도 같은 지역으로 취업을 했다. 늘 시끌벅적하게 지내다가 갑작스럽게 마주한  적막을 견디기 어려웠던 시절, 나는 자주 공허함을 느꼈다. 그럴 때 마다 나영이를 만났다. 퇴근을 하고 동네로 놀러가 같이 산책을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었다. 생일 날에는 생일 케이크를 사서 기숙사 문 앞에 두고가기도 했다. 그렇게 나영이는 자립 초기 힘들었던 나에게 봄 날의 햇살 같은 존재였다. 그 따듯함으로 우리는 자립초기를 견딜 수 있었다. 나영이는 첫 취업을 했던 지역에서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고, 회사에서 승진도 했다. 누군가를 챙기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던 나영이는 솔직히 오래전부터 햇살 같은 사람이었다. – 손자영 캠페이너

Q: 자기 소개 부탁해요.

A: 보호종료된지 7년차, 26세 김나영 (가명)

Q: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A: MBTI를 보면 나는 좀 우유부단한 것 같아. 사람들한테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아니라고 이야기를 잘 못해. 우리 친구들(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 한테는 안 그러는데 회사 생활하면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거절을 해야 할 때 거절을 잘 못하는 것 같아. 최근 들어 엄청 크게 느끼는 문제인 것 같아. 너무 우유부단하니까 그게 싫더라고. 나는 줄곧 내가 확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회사생활을 오래하면서 보니 거절을 잘 못하더라고. 예를 들어 내가 하겠다고 이야기 한 일에 대해서 못하게 되면 그 결과에 짜증이나. 나는 늘 잘하고 싶고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을 했던 사람인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 것을 양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더라고.

Q: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소개되기를 원해요?

A: 확실한 사람으로 보여지기를 원해. 감정 표현을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고 싶어. 회사에서는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아. 예를 들어 약속이 있는데 동료가 약속을 잡으면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 확실한 사람이 되고 되고 싶어서 거절하는 연습을 하고 싶어. 나는 남들한테 맞춰준다고 생각하는데 남들이 나를 단호박으로 보는 경우가 많더라고. 그래서 약간 스스로 의하기도 해.

Q: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A: 나는 다른 사람을 챙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저번에 많이 아프면서 회사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 그래서 그 이후에 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챙겨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전에는 항상 내가 너무 우선이었거든. 근데 그 이후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생긴 것 같아.

Q: 쉬는 날에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요?

A: 친구들 만나러 약속을 가거나 아니면 거의 오롯이 쉬는 편이야. 쉴 때는 침대에서 푹 자거나 밀린 드라마나 예능을 주구장창 보기도하고 집 청소를 해. 완전 집순이 스타일이지?

Q: 주로 어떤 것에 행복한 감정을 느끼나요?

A: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 만날 때 행복한 감정을 느껴. 회사 사람들 말고. (웃음) 회사 사람들은 그 이상의 관계로 못 가는 느낌이 들더라고. 스스로도 우리 친구들처럼 마음을 활짝 열기기가 어려운 것 같아. 가깝지 않게 느껴 지기도 하고.

Q: 주로 어떤 것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나요?

A: 가족 이야기가 나올 때 아직도 불편함을 느껴. 회사 언니들은 종종 가족이야기를 하거든. 언니들은 내가 가족이 없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엄마 아빠 중에 누구를 닮았냐고 이야기를 해. 근데 나한테는 당연하다는 듯이 질문이 안 와. 그럴 때 불편한 감정이 들면서 짜증이 나기도 해. 한 번도 내입으로 말한적이 없으니까. 언젠가 내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 용기를 내서 친했던 언니에게 나의 환경을 말하려고 했거든. 근데 그 언니가 먼저 그런 이야기 안 해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그 이후로 아예 가족과 관련된 말을 안 하게 된 것 같아.

Q: 평소에 드라마나 웹툰, 영화를 즐겨 보나요?

A: 드라마 엄청 좋아해. 드라마 거의 다 보는 것 같아. 치정 불륜 이런 장르 짱 좋아해 (웃음)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는 ‘유미의 세포’ 와 ‘안나’라는 드라마야. 난 대체로 전개가 빠른 것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

Q: 좋아하고, 많이 사용하는 미디어 매체는 무엇인가요?

A: 모든 OTT 서비스를 가입해서 봐. 디즈니, 웨이브, 티빙, 쿠팡 플레이 이렇게 구독해서 봐. 거의 다 보는 것 같은데. (웃음) 꼭 하나 가입하면 여기서 안 하는 것들이 꼭 있기 마련이거든. 그러면 다른 것을 가입할 수 밖에 없긴 해.

Q. 좋아하는 채널 혹은 좋아하는 장르가 있는지?

A: 나는 로맨스 장르 좋아해. 로맨스가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 요새 연애 관련 예능도 많이 나오잖아. 돌싱글즈 같은 거. 완전 재미있게 봤어.

Q: 자립준비청년으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차별이나 편견의 경험이 있을까요? 

A: 먼저, 긍정적인 경험은 부모님이 안 계시니까 병원에 입원했을 때 회사에서 보호자로 와줘거 같이 있어 주기도 했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것이 있어. 그리고 부정적인 경험은 솔직히 별로 경험하지 못한 것 같아. 근데 스스로 내가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자격지심은 있는 것 같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나의 환경에 대한 것들 있잖아. 뭐만 잘 안되면 ‘나는 부모님이 없으니까.’ ‘나는 보육원에서 자랐으니까.’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던 것 같아.

Q: 손자영 프로젝트에 함께하자고 연락 받았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A: 부담스럽긴 했지. 그렇지만 되게 잘 하고 싶었어.

Q: 그림을 그리고 메시지를 적으면서 어떤 생각과 마음이 들었나요?

A :드라마 속 차별 장면에서 고아 캐릭터로 나오는 인물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혼자 집에 들어가서 침대에서 울면서 혼자 읊조리는 장면이 나와. 근데 그 장면이 뭔가 나 같은 거야. 차별을 받아서 그렇다기 보다는 뭔가 그 장면이 뭔가 사회생활 초창기 때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그 장면이 끌렸어.

Q: 일러스트 프로젝트에 참여한 후, 대중의 시각으로, 보호 종료 아동의 시각으로 변화한 생각이 있나요? (의문이나, 불현듯 들었던 감정 모두 환영)

A: 좀 어려운 것 같아. 항상 그것을 생각하면서 보는 것은 아니니까. 솔직히 별로 변화한 생각이 없는 것 같아.

Q: ‘보호종료아동이 보호종료아동 캐릭터에게 전하는 위로, 응원의 메시지가 있다면?

A: 옆에 친구를 한 명 붙여주고 싶었어. 그 장면에. 옆에 엄마가 있었으면 엄마가 위로를 해주거나 같이 있어줬을 텐데. 우리는 엄마가 없으니까. 엄마를 붙여주고 싶었어. 아니면 친구. 쓸쓸해 보이더라고.

Q: 미디어와 관련된 콘텐츠 제작사와 생산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음. 딱히 있지는 않아. 아니, 없는 것 같아. 약간 드라마 장면 보고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 드라마를 만들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만들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야지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니까. 자극적인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긴 해.

드라마 속 고아캐릭터로 나오는 인물이 혼자 집에서 울고 있는 장면에서 사회생활 초창기 때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는 나영이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홀로 자립을 하고 살아내면서 우리에게는 얼마나 긴 외로움이 시간이 있었을까? 그리고 그 옆에는 누가 있었을까? 우리에겐 서로가 있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허덕이면서 말이다. 그 외로움과 공허함을 견뎌온 나영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다른 사람을 챙길 수 있는 사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누군가에게 조건 없이 받은 친절과 사랑은 또 다른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전해진다. 자립초기 내게 힘이 되어준 나영이에게 받았던 마음 또한 여전히 따듯하게 남아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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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영 프로젝트] 당사자 인터뷰 ① “미역국이라도 같이 먹어주지….”

[손자영 프로젝트] 당사자 인터뷰 ② “그 장면을 볼 때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더라.”

[손자영 프로젝트] 당사자 인터뷰③ “뭐? 아직도 이런 대사를 쓰는 드라마가 있다고?”

[손자영 프로젝트] 당사자 인터뷰④ “결국 나도 나에게 편견이 있더라고”

[손자영 프로젝트] 당사자 인터뷰⑤ “어디까지나 드라마나 영화인 건 아닐까”

[손자영 프로젝트] 당사자 인터뷰⑥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잘난 고아는 왜 없어?”

[손자영 프로젝트] 당사자 인터뷰⑦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서로에게 위로라는 상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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