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부터 지금까지 자립준비청년 당사자와 친구들 함께 미디어 패러디 프로젝트를 만들어왔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록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대중인 친구들이 미디어 속 고아캐릭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단순 미디어 패러디 일러스트를 넘어 프로젝트에 참여한 당사자 개개인을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겠는데? 괜찮을까?” 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걱정은커녕. 인터뷰를 하는 내내 자주 흥분했다. 누군가의 삶을 가까이에서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꽤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우린 모두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비슷한 생각을 할 수 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자립준비청년’ 이라는 당사자성을 넘은 개개인의 생생한 인터뷰를 그대로 담기로 결심했다. – 손자영 캠페이너 – |
인터뷰 내내 거침없이 답했던 언니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행복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맥주를 마시면서 일상을 공유하는 순간 그럴 때 행복해.” 언니는 나와 보육원에서 언니 동생으로 함께 자랐다. 언니는 보육원에 살 때부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지 명확했다. 그리고 지금도 한결같다. 어느 날 밤, 드라이브를 하러 가자는 언니의 제안에 우리는 급 한강으로 출발했다. 오랜만에 언니를 만나자마자 나는 또 고민을 늘여 놓았다. “언니 나는 걱정도 진짜 많고. 왜 맨날 남 눈치를 보면서 살까?.” 그 말에 언니는 음악 볼륨을 줄이며 말했다. “그냥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해. 그게 장땡이지 뭐.” 남들과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애써 맞추기 보다는 자신의 기준으로 사는 삶. 언니에게서 가장 닮고 싶은 모습이다.
Q: 자기 소개 부탁해요.
A: 보호종료 된 지 9년 차, 29세, 한예지(가명)
Q: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A: 나는 현실적이지만 도전적이야. 도전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닥치는 걸 겁나 하지 않아. 적응력이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또, 나는 단순한 사람이야. 왜냐하면 쉽게 감정 소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계속 담아두고 곱 씹어서 생각하다 보면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스트레스 안 받고,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이야.
Q: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소개되기를 원해요?
A: 괜찮은 사람
Q: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A: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행복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기는 한데…내 기준에서 행복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은 것을 가는 거야. 소소하지만, 소소한 행복을 계속해서 느끼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Q: 쉬는 날에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요?
A: 보통은 친구들을 만나지. 지인들을 만나서 수다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술도 먹고 좋은 것도 보고 전시회 구경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아. 가끔 집에 있을 때는 종일 TV를 보면서 쉬기도 해.
Q: 주로 어떤 것에 행복한 감정을 느끼나요?
A: 나는 진짜 단순하다고 했잖아. 맛있는 것을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해. 그리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맥주 마실 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는 순간. 그 행복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 친한 사람이랑 술 한잔 할 때 “크으~ 내가 이맛에 산다.” 라고 자주 말하곤 해. (웃음)
Q: 주로 어떤 것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나요?
A: 음…약간 불합리한 상황이 생길 때. 불합리한 상황이 생기거나 부당한 상황이 생기면 참지 못하고 바로 말하는 스타일인데 바로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그럴 때 불편함을 느껴. 답답하기도 하고.
Q: 평소에 드라마나 웹툰, 영화를 즐겨 보나요?
A: 드라마나 영화는 진짜 많이 봐. 최근에는 사생활이라는 드라마를 정주행 하고 있어.
Q: 좋아하고, 많이 사용하는 미디어 매체는 무엇인가요?
A: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많이 사용해.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정보검색을 하거나 맛집도 많이 알아보고 사람들 일상도 보고 그래. 유튜브로는 단순하게 재밌는 것을 주로 보는 것 같고.
Q: 자립준비청년으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차별이나 편견의 경험이 있을까요? (긍정적인 경험, 부정적인 경험인 모두 환영해요.)
A: 차별은 없고 편견이라고 하면 편견인데 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네가 되게 밝고 성격도 좋고 즐거운 아이라서 유복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랐을 줄 알았다. 밝게 자랐구나.”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굳이 곱씹어 생각해보면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편견이 있는 거지. 자립준비청년이라면 뭔가 어둡고 좀 남들과 다른 부분이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이 기본적으로 조금은 있는 것 같아. 생각해보면 그런 부분이 편견 아닐까?
Q: 손자영 프로젝트에 함께하자고 연락 받았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A: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가 평소에도 많이 나눴잖아. 그래서 도움이 된다면 도움을 주고 싶었어.
Q: 그림과 메시지를 그리면서 어떤 생각과 마음이 들었나요?
A: 음… 그냥 그림 그대로 내 경험을 말하자면 환경을 이야기 했을 때 안 좋게 이야기 하는 친구들이 아무도 없었고 내가 사는 시설로 봉사활동을 오는 친구들도 있었거든. 근데 정말 아무렇지 않게 고등학교 친구로 잘 지낸거야. 맞잖아. 보육원에 산다고 해서 다르고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환경만 보육원인 것 뿐이지 우린 모두 비슷한 사람이란 말이야. 근데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거지.
Q: 일러스트 프로젝트에 참여한 후, 대중의 시각으로, 보호 종료 아동의 시각으로 변화한 생각이 있나요?
A: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이미지 중에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들이 많지만, 그 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나 영화인 것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 무의식적으로 고정관념이 생겨서 어둡게 보는 것도 있을 것이란 말이지. 근데 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나만 괜찮으면, 그것을 굳이 불편하게 봐야 되나 라는 생각도 들었어. 근데 생각보다 너무 많고, 진짜 좋게 설정 되어있는 캐릭터는 없더라고.
Q: ‘보호종료아동이 보호종료아동 캐릭터에게 전하는 위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세요!
A: “야 당당하게 살아. 기죽지마. 어깨 펴. 누가 뭐라고 한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떳떳하게 잘 살면 되는 거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너의 잘못도 아니고 굳이 다르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
Q: 모든 관련된 미디어 콘텐츠 제작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그냥 평범하게 보육원 아동 캐릭터를 만들어 주면 재밌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 우리가 보는 미디어 매체에서는 고아 캐릭터 설정이 정말 극과 극이 잖아. 오뚝이 같은 캐릭터이거나, 세상에 우울한 것들은 다 가진 채 상처를 떠 안고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 상황. 근데 우린 정말 평범하고 다를 것이 없으니까. 자극적으로 묘사하거나 만들지 않았으면 않았으면 좋겠어.
“미디어에서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고아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영화나 드라마인 것이 아닐까? 나만 괜찮으면 굳이 불편하게 봐야하나 라는 생각도 들어.”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사람들의 편견에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언니의 단단함이 내심 부러웠다. 그러나 언니에게도 의문이 들었던 문장은 존재했다. ‘밝게 자랐다.’ 그 말을 곱씹어 생각해보면 우리에 대한 편견이 묻어나왔다. “자립준비청년이라고 하면 뭔가 어둡고 남들과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는 것 같아. 생각해 보면 그런 부분이 편견이 아닐까?” 미디어 패러디 프로젝트를 참여한 이후에 언니에게서 종종 이런 연락이 왔다. 드라마에서 ‘보호종료아동’이라고 나온다고. 드라마를 좋아하는 언니는 나보다 더 빠르게 미디어 속 작은 변화를 발견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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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영 프로젝트] 당사자 인터뷰 ① “미역국이라도 같이 먹어주지….”
[손자영 프로젝트] 당사자 인터뷰 ② “그 장면을 볼 때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더라.”
[손자영 프로젝트] 당사자 인터뷰③ “뭐? 아직도 이런 대사를 쓰는 드라마가 있다고?”
[손자영 프로젝트] 당사자 인터뷰④ “결국 나도 나에게 편견이 있더라고”
[손자영 프로젝트] 당사자 인터뷰⑤ “어디까지나 드라마나 영화인 건 아닐까”
[손자영 프로젝트] 당사자 인터뷰⑥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잘난 고아는 왜 없어?”
[손자영 프로젝트] 당사자 인터뷰⑦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서로에게 위로라는 상처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