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부터 지금까지 자립준비청년 당사자와 친구들 함께 미디어 패러디 프로젝트를 만들어왔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록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대중인 친구들이 미디어 속 고아캐릭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단순 미디어 패러디 일러스트를 넘어 프로젝트에 참여한 당사자 개개인을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겠는데? 괜찮을까?” 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걱정은커녕. 인터뷰를 하는 내내 자주 흥분했다. 누군가의 삶을 가까이에서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꽤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우린 모두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비슷한 생각을 할 수 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자립준비청년’ 이라는 당사자성을 넘은 개개인의 생생한 인터뷰를 그대로 담기로 결심했다. – 손자영 캠페이너 – |
미디어 인식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발견한 작은 변화는 스스로 가지고 있던 편견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드라마와 영화 속 고아 캐릭터를 모으고 모니터링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고아 설정이 사용되는구나.” 였다. 나중에는 ‘막장드라마’ 라고 검색했다. 그리고 드라마 등장인물 소개를 클릭했다. 그러면 고아캐릭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고아 캐릭터와 나의 삶을 연결해보니, 어떤 캐릭터는 나의 모습과 다르기도 했고 심하게 과장되기도 했다. 문득 사람들이 내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런 곳(보육원)에서 자란 것 같지 않다.” “보육원에서 자란 애들은 뭔가 결핍이 있을 것 같아.” “더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나 또한 그런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육원에서 자린 티를 내지 말아야지. 나는 애정 결핍이야. 난 환경도 안 좋은데 왜 더 악착같이 살지 못하는 걸까?’ 미디어인식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알아차림은 또 다른 당사자에게도 조금씩 번져갔다.
Q: 자기 소개 부탁해요.
A: 보호종료된지 9년차, 28세, 박현주(가명)
Q: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A: 나는 안정적인 미래를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이고, 미래가 안정적인 사람이 되면 좋겠어.
Q: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소개되기를 원하나요?
A: 밝은 사람? 글쎄…집에 혼자 있을 때 조용하고 말을 잘 안 해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많이 하게 돼. 그래서 그런지 밖에 있을 때와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달라. 친구들에게는 내가 밝은 사람으로 비춰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Q: 쉬는 날에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요?
A: 잠을 자. 집에서 밥도 거의 안 먹고. 아. 한끼 정도 잘 챙겨 먹는다. 그리고 침대에서 안 나가. 푹 쉬는 거지.
Q: 주로 어떤 것에 행복한 감정을 느끼나요?
A: 동물병원에서 일하면서 동물을 보거나 만질 때 행복함을 느껴. 내가 강아지나 고양이를 좋아해서 일하면서 행복함을 느낄 때가 많아.
Q: 주로 어떤 것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나요?
A: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계속 물어볼 때. 꼬치꼬치 물어볼 때 불편함을 느껴.
Q: 평소에 드라마나 웹툰, 영화를 즐겨 보나요?
A: 드라마는 거의 안 보고, 웹툰은 한 개 정도 봐. 그리고 유튜브를 많이 봐. 영화는 친구가 보자고 할 때만 보고. 내가 스스로 보고 싶어서 본적은 없는 것 같아.
Q: 좋아하고 많이 사용하는 미디어 매체는 무엇인가요?
A: 유튜브에서 주로 영화리뷰를 봐. 영화관은 러닝 시간이 너무 길어서, 유튜브 리뷰로 빠르게 추리가능한 것을 보는 편이야. 그리고 동물들 나오는 영상을 주로 즐겨봐.
Q: 자립준비청년으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차별이나 편견의 경험이 있을까요? (긍정적인 경험, 부정적인 경험인 모두 환영해요.)
A: 있어. 처음 취업을 나갔을 때 철저하게 숨겨야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어. 근데 첫 회사에서 바로 무너졌지 과장님이 첫 출근 했을 때 내가 이런 아이(보육원에서 자란아이)니, 잘 좀 돌봐라 라는 식으로 이야기 했어. 그 회사에는 나랑 같은 보육원을 나온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는 비밀로 했는지 가만히 있더라고. 아무튼 첫 회식을 하는데 사람들이 대놓고 ‘그런 곳(보육원)은 진짜 때리냐?’ 이렇게 물어봤어. 그때 그 상황 이랑 질문이 너무 민망했어. 내가 생각했을 때는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비춰진 모습에서 많이 영향을 받은 것 같은거야. 그래서 내가 미디어의 인식 영향인 것 같다고 말했어. 그리고 나는 잘 살았다고 이야기 했지. 근데 아무도 안 믿더라고. 같은 시설에서 자란 언니는 그냥 맞장구 치면서 웃고 있더라고 그래서 정말 어이가 없었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하는 것이 좀 그랬어.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언니도 엄청 노력했던 행동이었던 것 같아.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언니의 행동이 이해하기 힘들었어. 차별을 정말 확실하게 느꼈지. 사람들은 자기네들도 힘든 상황이면서 자기 보다 못한 상황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고 자신을 추켜세우고 나를 아래로 보더라고. 다수와 있을 때는 무시하는 행동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 경멸스럽기도 했어. 그땐 그랬지.
Q: 손자영 프로젝트에 함께하자고 연락 받았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A: 익명이 보장 될지 제일 걱정이었어. 또, 내가 제일 못하는게 그림인데 한번도 그려본 적이 없어서 정말 어렵고 걱정 됐어. 근데 해보고 싶었고 호기심도 생겼어.
Q: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과 마음이 들었 나요?
A: 사실은 아이들이 진짜 나라를 이끌어갈 미래인거잖아. 어른들의 무시와 편견 속에 스스로를 더 불쌍하게 여기면서 ‘도움을 주세요.’가 아니라 이 나라의 인재니깐 ‘필요한 도움을 당연히 주세요.’ 라고 바뀌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는 우리나라의 청년이고, 미래니깐. 동정과 도움은 정말 한 끗 차이 잖아. 불쌍한 사람의 시선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시선은 다르듯이.
Q: 일러스트 프로젝트에 참여한 후, 대중의 시각으로, 자립준비청년의 시각으로 변화한 생각이 있나요?
A: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웹툰도 많이 찾아 봤어. 아직도 미디어에서는 ‘고아’라는 단어를 쓰더라고. 난 ‘고아’라는 단어도 싫어. 그래서 단어도 바뀌었으면 좋겠어. 뭘 해도 ‘고아’라는 캐릭터는 한없이 작은 약자와 만만하게 봐도 되는 존재로 그려지더라고. 우리 주위에 잘 된 사람 들중에 보육원 출신이 없잖아. 정치인이나, 유명한 사람들 중에. 자기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단 한 명의 고아도 없잖아. ‘우리가 부끄러움에 너무 숨어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어. 한 명의 목소리만 내도 정말 변화할 수 있는 거잖아. 우리 소리가 너무 작고 사회가 주는 인식의 벽에 우리는 막혀 있어. 우리는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인데 인식의 벽이 너무 커서 그것을 못 뚫고 나오는 거지. 나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몰랐어. 노력도 없었고. 누군가 해주길 원했던거지. 각자의 벽이 존재하고 하지만 누군가 열어 주기만 하면 뭔가 변화가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Q: 모든 관련된 미디어 콘텐츠 제작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프로젝트 참가자로서 참여를 하는데, 프로젝트가 또 불쌍하게 표현 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있어. 프로젝트를 정말 좋게 잘 표현 되었으면 좋겠어. 동정의 프레임으로 아닌, 상처받는 사람들이 없게 변화했으면 좋겠고.
Q: 그 외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A: 온전한 나를 밝히지 못하는 거잖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꾸며낸 나를 보는 거니깐. 거기에 요새 회의감이 들어. 작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나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도움이 되었어. 정말 좋은 프로젝트인 것 같아.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해도 미디어 패러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현주의 말이 기억난다. 익명이 보장 되는지 걱정하면서도 당사자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거듭 이야기 했던 현주의 용기도. “차별 장면을 보면 고아 캐릭터는 한 없이 작은 약자와 만만하게 봐도 되는 존재로 그려지더라.” 그런 이유에서 였을까. 현주는 ‘나는 불쌍한 고아랍니다.’ 라고 동정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장면 대신에 ‘나는 우리 나라의 미래입니다.’로 장면을 바꾸어 그렸다. 그리고 우리는 소위 잘 된 사람들 중에 보육원 출신이 왜 없는지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했다. ‘성공을 했어도 자신의 환경을 이야기 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아니면 ‘우리는 실제로 성공하기 쉽지 않은 환경일 수도 있다.’ 이야기는 여전히 결론 짓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를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단편적인 장면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같았다. |